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 남진우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아이는 방바닥에 엎드린 채 산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복잡한 수식이 적힌 노트를 들여다보며 아이는 중력 암흑물질 벌레구멍 따위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 천장의 사방연속무늬를 헤아리고 있었다. 소년의 머릿속 은하계 저편에서 죽어가는 별이 다른 우주로 건너가기 위해 마지막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천년은 욕실의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세면대에 한 방울씩 수돗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그는 언젠가 교수대 위에서 자기 목을 죄어들어오던 밧줄의 섬뜩한 촉감을 기억해냈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주름진 손으로 백지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사막을 가로질러온 바람이 허공에 모래먼지를 뿌리고 지나갔다. 이내 그가 적은 말들이 바람에 불려 쓸려나갔다.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붙박이장을 열고 두터운 옷들을 헤치고 들어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았다. 멀리서 비상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고 비행기 편대가 날아와 공습을 시작했다. 개가 짖어댔고 고양이가 담벼락 너머로 사라졌고 전선 위의 새들이 깃을 치며 날아올랐고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 그는 밤샘 작업을 마치고 잠을 자기 위해 힘겹게 침대를 향해 가다가 거실 벽에 걸린 전신거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을 보았다. 중력 암흑물질 벌레 구멍 같은 말들이 빠르게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어둑한 방 한가운데 먼 혹성에서 온 노인이 불길한 미소를 띤 채 아득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풀어야 할 마지막 문제였다.
김종삼 시문학상 운영위원회(회장 이숭원)는 ‘제4회 김종삼 시문학상’에 시집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문학동네)의 남진우 시인을 선정했다.
김종삼 시문학상은 김종삼(1921~1984) 시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대진대학교와 ‘김종삼 시인 기념사업회’에서 2017년에 제정했다. 등단한 지 10년이 넘은 시인이 전년도에 발간한 시집 중 김종삼 시 정신에 부합하는 작품을 선정한다.
시집 <나는 어둡고 적막한 집에 홀로 있었다>는 남진우 시인이 2009년 <사랑의 어두운 저편>을 낸 이후 11년 만에 선보인 신작으로 지난해 출간됐다. 수록된 작품은 모두 산문시로 총 68편이 4부로 나뉘어 담겼다.
남진우 시인은 전북 전주 출생으로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시집 <깊은 곳에 그물을 드리우라>,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타오르는 책>, 평론집 <신성한 숲>, <바벨탑의 언어>, <숲으로 된 성벽>, <그리고 신은 시인을 창조했다>, 산문집 <올페는 죽을 때 나의 작업은 시라고 하였다> 등이 있다. 대한민국 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김종삼 시문학상’ 시상식은 다음 달 5일 열릴 예정이며, 상금은 1000만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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