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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주체사상

 


  (1) 형성과정

  북한에서‘주체’라는 용어가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1955년 12월 28일 개최된 당 선전선동원대회에서 한 ‘사상 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김일성의 연설에서이다. 당시 김일성이 당 사업에서 주체 확립의 필요성을 제기한 데에는 북한전역에 소련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미치고 있어 이로부터의 독자성을 어느 정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 연설에서 ‘주체’는 당면한 사상사업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쳤다. 그러나 김일성이 당내의 여러 파벌에 대한 숙청을 계속하면서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 등 다른 분야로 확대 적용되었다. 그리고 중·소간 이념분쟁의 격화로 국제공산주의운동 대열에서 현대 수정주의에 관한 시비가 벌어지자 대외정치 명분으로까지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주체’가 ‘주체사상’으로 된 것은 김일성의 1인 지배권력 강화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김일성의 절대 권력이 확고해지고 김일성에 대한 개인숭배화가 대대적으로 추진된 것은 1967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김일성 우상화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당의 ‘유일사상체계’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의 확립을 위해서는 주체사상에 기초한 정치 사상적 통일이 필요하다고 강조되었다. 따라서 ‘주체사상’의 등장은 김일성의 1인 지배 강화 ‘유일사상체계’ 확립과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은 1970년대에 들어서자 당의 유일한 이념으로서 혁명과 건설의 지도적 지침으로 표방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 제5차 당 대회에서 주체사상을 당 이념으로 공식화하여 당 규약에 명문화하였다. 1972년에 제정된 헌법은 주체사상을 공식 통치이데올로기로 규정하였다.

  김정일은 당 중앙위 제5기 제8차 전원회의(1974.2.12)에서 후계자로 결정된 후 ‘전국 당 선전 일군 강습회’(1974.2.19)에서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였다. 북한은 ‘김일성주의’를 “주체시대의 요구를 반영하고 나온 새롭고 독창적인 혁명사상”으로서 “주체의 사상, 리론 및 방법의 체계”라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구별 지었다. 한편 1974년4월에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 10대 원칙’을 발표하였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이후에는 주체사상을 ‘현시대 로동계급의 영생불멸의 지도이념’이라고 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우월한 사상으로 그 지위를 격상시켰다. 1982년 이후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를 지도적 원칙의 한 부분으로 구성하는 등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였고, 1986년 이후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놓았다.

  이와 같이 북한은 1950년대 중반에‘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1970년대에 와서 주체사상을 확립하였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1930년 6월 말, 중국 만주의 장춘현 ‘카륜’에서 열린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 창시를 선포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일성이 1930년대에는 중국공산당의 무장부대인 동북항일연군에서, 그리고 1940년대 초반에는 소련군의 정찰부대인 88특별여단에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그가 1930년에 주체사상을 창시하였다는 김정일의 주장은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2) 기능과 내용

  북한에서는 주체사상이 정치체제와 주민생활 그리고 대외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유일한 지도이념으로 된다. 김일성 사후에 발표된 김정일의 논문들도 ‘주체사상에 기초한 우리식 사회주의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노동당과 국가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기능하고 있다. 당 규약 전문에는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되어 있으며, 1998년 9월 개정된 사회주의 헌법 제3조는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의 주민들도 교양과 학습과정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체사상 교양에는 원리교양, 충실성 교양, 김일성·김정일의 혁명역사·전통 교양, 당 정책 교양, 계급교양 등이 주종을 이룬다. 주체사상은 북한 주민들의 삶 자체를 규정짓는 하나의 준거틀이라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은 대외면에서 자주노선의 추구라는 명분하에 폐쇄체제를 합리화하는 준거로서 이용되고 있으며, 대남면에서는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을 해석하는 기준으로, 남조선혁명 및 공산화통일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대내외 정세변화에 부응하여 그 내용도 새로운 면들을 보충하면서 변화를 거듭해 왔다. 북한은 주체사상이란 말을 처음 사용할 때, 그 내용에 대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한 사상이라 했다. 여기서 사람이란 집체적 용어인 인민대중을 의미한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이란 한마디로 말하여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이다”라고 말했다.

  주체사상은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자기 운명을 자주적·창조적으로 개척해 가는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사람의 자주성·창조성·의식성 개념에는 하나의 중요한 전제가 붙는다. 그것은 ‘혁명적 수령관’이다. 인

민 대중이 역사의 주체이지만 아무 조건 없이 자기 운명을 자주적·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인민대중이 역사의 주체로서 역할을 다하자면 반드시 수령의 올바른 영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령의 지도가 주체 확립에서 핵이 되는 셈이다. 이 점에서 주체사상에서의 수령의 역할과 지위는 그 기원과 종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1986년에는 ‘수령·당·대중’이 수령을 뇌수(腦髓)로 하는 하나의 유기체적 통일체이며, 이들은 하나의 운명공동체라는 점을 강조한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을 그 내용에 추가하였다. 김정일은 “인민대중은 당의 령도 밑에 수령을 중심으로 조직 사상적으로 결속됨으로써 영생하는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룰 때 역사의 자주적인 주체가 된다”고 하여 ‘수령론’에서 더 나아가 ‘사회정치적 생명체’란 개념을 제시하였다.

  사회정치적 생명체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혁명적 수령관은 최상의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혁명의 주체는 다름 아닌 수령, 당, 대중의 통일체”이며 “수령, 당, 대중은 하나의 생명체로서 생사 운명을 같이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로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사회정치적 생명체 이론은 곧바로 ‘혈연론’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것은 인민대중이 혁명위업을 승리의 한 길로 이끌어 주는 ‘어버이 수령’으로부터 영생하는 생명을 받았다는 데에 근거하고 있다. 김정일은 “온 사회가 하나의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루고 개인과 집단의 자주성이 다 같이 실현되는 완전한 집단주의적 사회관계”로 되어간다고 강조한다. 북한은 이와 같은 주체사상의 혈연론으로 세습체제의 정당성을 설명하고 있다.


  (3) 최근 위상 변화

  주체사상이 지닌 북한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절대적이었으나, 1990년대 중반 이래 지속되는 경제난 속에 그 실천적 유용성이 저하되면서 강조빈도가 점차 낮아지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이후 ‘붉은기 사상’, ‘강성대국론’, ‘선군정치론’등 경제난국에 대처하고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행동 강령적 성격의 슬로건들이 주체사상을 대신하여 정치적 기치로 활용되고 있다.

  유일한 최고지도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의 공식적 위상과는 별개로 실질적 정책지침으로서의 실효성은 최근 다소 감소한다는 평가가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체사상이 지배이념으로서 자리를 내놓았다는 것은 아니며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한 이후 정세에 따른 하위 실천이념들의 부각 필요에 의해 그 강조의 수위를 낮추었다고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1. 주체사상의 변화과정과 시대별 특징


  주체사상은 북한의 핵심 통치이념으로서, 북한 정치체제의 규범적 지침이자 지도적 강령으로 기능한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주민가치 및 생활영역에 이르기까지 전 국가적 영역에서 영향력을 파급시킨다. 조선노동당 규약의 전문은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해 지도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1998년 개정헌법은 제3조에서 “주체사상을 자기 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북한에서 주체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중반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 ‘사상에서의 주체’를 시작으로, 1956년 ‘경제에서의 자립’, 1957년 ‘정치(내정)에서의 자주’, 1962년 ‘국방에서의 자위’, 그리고 1966년 ‘정치(외교)에서의 자주’를 표명하면서 주체사상은 그 이론적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주체사상이라는 명칭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에 접어들면서이며, 1970년 조선노동당 제5차 당대회를 통해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동등한 위상을 점하며 조선노동당의 공식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10년 후인 1980년 제6차 당대회에서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떨쳐내고 독자적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주체사상은 초기 북한정권의 이념적 강령인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의 부분적 이탈을 의미한다. 사회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적 시각을 수정함으로써 주체사상은 상부구조의 주요 구성체인 인간 의식이 사회변화와 역사전이의 과정에서 능동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강조한다. 즉, 주체사상은 경제적 생산관계가 그 안에서 활동하는 행위자들의 의식과 행동을 주도적으로 결정한다는 견해를 수정하면서, 인간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사고와 행위에 의해 경제구조와 사회와 역사가 변화한다는 논리를 제시한다.

  그러나 주체사상의 본질을 분석해 보면 여전히 전통적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토대 위에 일국사회주의와 일인독재 지배체제를 용해시킨 스탈린주의적 특성이 현저하게 부각된다. 주체사상의 귀결점은 북한 주민들의 주체의식을 주도하는 수령의 리더십이고, 이 리더십 행사의 양태는 스탈린식 독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단지, 스탈린식 일국사회주의가 다민족국가인 소련을 배경으로 구성된 반면, 북한식 사회주의는 단일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주체사상에 민족주의적 유산이 깊게 투영된 요인으로는 일제 식민지 시대의 경험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에 대한 공포와 반감, 그리고 소련과 중국 등 거대 우방국과의 비대칭적인 협력관계의 불편함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들 요인들은 상호 복합적으로 기능하면서 북한 지도부로 하여금 자신들이 실제적 혹은 잠재적 적국들에게 둘러싸여 끊임없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이른바 ‘포위 피해의식’(siege mentality)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식의 반작용이 바로 주체사상 내의 민족주의 강조로 이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민족주의와 더불어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이탈시키는 또 다른 결정적 변수는 유교적 사상의 투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래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유교적 전통은 강력한 절대 권력의 통치자에 의한 후원주의적(paternalistic) 통치체제가 북한에 정립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유교적 전통은 스탈린주의의 특성과는 다소 다른 형태로 절대 권력의 일인통치를 지원하는 주체사상의 문화적 하부구조를 북한사회에 생성시키고 있다.

  주체사상을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차별화시키는 추가적 요인으로는 유기체론적 사회 및 국가구성을 강조하는 유기체적 전체주의와 인간 의식이 사회와 역사를 주도한다는 유심론의 도입일 것이다. ‘사회주의 대가정론’ 등으로 일컬어지는 유기체적 전체주의는 유교적 사상의 전통과 더불어 북한의 가부장적 일인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사상적 토대로 기능한다. 또한 인간의 의식적이고 주체적인 행위를 강조하는 유심론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유물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결국 주체사상은 다양한 사상들의 지속적 혼합을 통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변형시키는 복합적 사고틀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논리적 일체성에 있어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주체사상의 형성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초기에는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의 침투에 대한 민족주의적 대응의 성격을 강하게 표출하여 북한주민의 대외적 주체의식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편, 정치적으로는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이 구소련 및 중국 내 수정주의자들에 의한 일인독재 지배체제 비판을 촉발함에 따라, 이 같은 비판의 유입을 대내적으로 절연시키며 북한의 독재지배체제를 옹호하는 데 주력한다. 대외적으로는 중·소 간 교조주의자 대 수정주의자의 이념분쟁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독자적 생존을 위해 중·소 사이에서 중립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외교 전략적 대응이 정치 이념적으로 표출된 측면도 있다.

  1960년대 이후 북한은 김일성 개인우상화에 치중하며 주체사상의 ‘김일성주의’로의 이론적 변환작업을 시도하였다. 주체형의 공산주의자들이 따라 배워야 할 모범적 인간형으로 김일성의 소년시절이 제시되는가 하면, 인간에게 육체적 생명보다 더 중요한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는 존재가 바로 김일성이라는 우상화 논리가 전개되었다. 혁명과 건설을 추진하는 주체인 인민대중의 정점에 수령이 존재하며, 수령은 인민대중을 인도하는 지적 영도자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이른바 ‘수령론’은 김일성 개인 우상화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수령론’의 내용은 인민대중들이 개별적 이해관계의 차이를 상호 극복하는 데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수령의 올바른 지도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공식 후계자로 등장한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세습수령에 대한 지속적 충성심을 강조하는 작업이 더해진다. 주체의 위업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만큼 대를 이어가며 주체의 위업이 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권 내에서도 유례가 없는 부자세습의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습 전제왕조에 대한 기존의 비판적 시각까지도 바꿔놓은 것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동구 사회주의권과 소련이 연속적으로 붕괴함에 따라 북한은 체제 존속에 위협을 느끼고 주체사상의 논리적 보강을 통해 북한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자 노력하였다.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기치를 전면에 내건 북한의 주체사상은 북한식 사회주의가 이미 붕괴한 동구권 사회주의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설명하고 북한 사회주의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였다.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래 주체사상의 ‘김정일주의’로의 전환을 부분적으로 시도하였다. 1996년 이래 간행되고 있는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의 사상이론’시리즈는 주체사상의 김정일주의화 작업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이후 심각한 경제난을 극복해야 하는 현실적 난제에 직면하면서 북한사회는 실리적 사고의 확대를 경험하게 되며, 이는 이념적 지배력을 수행하는 주체사상의 위력을 약화시키고 주체사상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주체사상에 대한 논의는 더욱 위축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선군정치의 기치가 북한정치의 전면에 부상함에 따라 주체사상의 사회적 구속력이 저하되는 현상이 표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주체사상이 북한사회의 이념적 지주로서의 기능을 포기하고 고사(枯死)의 과정을 밟아갈 것이라고 예단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내외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내용을 끊임없이 재구성해 온 주체사상이 향후 어떠한 형태로 변화를 도모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 주체사상의 실효성과 한계


  북한의 주민들은 학습과 교화 과정을 통하여 주체사상을 일상화하는 삶을 영위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이야말로 혁명적 사회건설의 기초를 이루며, 주체사상의 일상화는 어떠한 난관도 극복하여 궁극적으로‘우리식 사회주의’의 승리를 가져올 토대라고 주창한다. 주체사상은 “민족해방, 계급해방, 인간해방에 관한 이론과 사회개조, 자연개조, 인간개조에 관한 이론이 전면적으로 체계화되고 완성된 공산주의 혁명이론이며 무오류의 사상으로서 그 현실적 실천성을 확보한 사상”임을 강조한다.

  주체사상이 지닌 북한사회에 대한 지배력은 실로 절대적이고도 전범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체사상도 1990년대 중반 이래 지속되는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그 실천적 유용성이 저하되면서 언급의 빈도가 축소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이후 ‘붉은 기 사상’, ‘사회주의 강성대국건설(강성대국론)’, ‘선군정치론’ 등 경제난국에 대처하고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한 행동 강령적 성격의 슬로건들이 주체사상을 대신하여 정치적 기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주체사상이 유일한 최고지도 이념이라는 공식적 위상과는 별도로 실질적 정책지침으로서의 실효성을 상실하였고, 이에 따라 사회적 영향력도 저하되었다는 평가가 이루어지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극심한 경제난이 장기화되면서 북한 주민들의 주체사상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간혹 사회주의 국가의 생필품 수급체계에서 사실상 소외된 개인들이 나름대로 자기생존의 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자기정당화 논리로 주체의 의미를 활용하는 풍조도 북한사회 내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주체의 기치가 내실없는 외형적 슬로건으로만 지속되는 상황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불신과 비판의 대두는 불가피할 것이다. ‘우리식사회주의’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수사가 북한의 붕괴 우려에 대한 효율적 대응기제로 작동하는 데 한계를 지니는 것은 명백하다.

  주체사상에 대한 비판은 다양한 시각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우선 이론적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지의 절대성과 유물론적 경제결정주의가 공존하는 이론 구성에서 과연 논리적 일체성이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간의 불명확한 상호 연계성도 추가적 논란을 구성한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국제 연대주의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간의 논리적 상충 여부 등 주체사상을 둘러싼 여러 이론적 질문들은 체계적 설명을 요구하고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민족주의, 유교사상, 유기체적 전체주의, 인간 중심의 유심론 등 상충될 수 있는 이념들의 난삽한 집산체로 구성된 주체사상에 대해 명쾌한 논리적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주체사상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비판은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기치가 사실상 개인의 권력 독점 및 우상화를 위한 정략적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북한이 직면한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외교적 위기에서 인민대중을 혁명의 주체로 확인시키고 이들의 사고와 행동을 독려함으로써 위기의 극복을 시도하는 주체사상이 일인지배체제 강화와 우상화라는 왜곡된 용도로 차용되면서 주체사상은 그 진실성과 일관성을 상실하고 있다. ‘수령론’의 근저에서 인민대중은 주체가 상징하는 진정한 주인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하고 수령의 지도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수동적 객체로 전락하고 있다. 사회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부자세습화를 추구하면서 주체사상은 주인 잃은 의식과 행동의 강령으로 표류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운 초법적 통치이념의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신격화된 김일성에 의해 창시된 것으로서 그간 북한체제의 존립 자체를 대변하는 이념체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체사상이 내적 논리상의 오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외적 변화에 대응하는 데 지나치게 경직적이라는 내외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이다.

  21세기의 급변하는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며 자국의 이익을 지켜가는 국가이념 체계로서의 주체사상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북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근원적 해법은 북한사회에 내재하는 총체적 경직성의 탈피일 것이다. 그 같은 경직성 탈피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과제를 구성하는 것은 결국 주체사상의 해체뿐이다.


 

 

 

출처 : 경남대학교 철학인들의 모임
글쓴이 : 권수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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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선군정치 사상

 

 

1. 선군정치 사상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 체제의 본격적인 가동이 준비되던 1995년 초에 처음 논의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에 북한의 핵심적 통치 기치로 정착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하며 북한사회의 발전적 추동력을 제공하는 군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군정치는 군의 영향력을 정치 및 경제뿐만 아니라 교육,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북한사회의 전 영역에 투영시키고 있다. 선군정치 하에서 군은 당을 제치고 지도자와 사회주의 체제의 옹호를 위한 중심 기구로의 위상 제고를 꾀하게 되었다. 군 인사의 정치참여를 공식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등 군을 정치의 전면으로 대두시키는 선군정치는 북한식 군국주의 정치의 대두를 주도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제기된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김일성 사후 지속되는 경제난 속에서 김정일 정권이 생존을 위해 권력의 근간을 당보다는 군에 의존하게 된 대내적 환경이다.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은 당이 인민에게 기본적 삶의 조건을 제공하고 인민은 정권에 대한 지지 및 정통성을 부여해 왔던 사회주의적 후원주의 체제를 와해시켰다. 선군정치는 군이 가진 자원과 역량을 활용함으로써 인민경제의 회복을 꾀하는 한편, 당의 저하된 사회통제 기능을 군 조직을 통해 보완하고 또한 당의 역할까지 대체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주의의 내적 정통성을 제공하는 당의 기능 약화에 직면하여, 군의 위상과 역할을 재정립하는 북한식 군국주의를 통해 체제적 위기를 극복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만회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선군정치는 군의 확대된 역할을 통해 군을 인민의 삶 속에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면서 군에 대한 인민의 의존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기구가 아닌 군이 사회 내의 방대한 연결 고리를 토대로 다각적 사회통제를 시도하는 당의 기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과제로 남아 있다. 군과 인민의 일원화를 추구한다는 기치에도 불구하고, 선군정치는 지도자와 인민 사이에 사회 외부적 조직인 거대한 군이 개입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선군정치가 당에 의한 군의 통제를 통해 인민 우위를 정립시키는 정통 사회주의의 통치 방식을 포기하고 정권 유지를 위해 북한식 군국주의로 이행한다는 비판을 회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군정치의 또 다른 배경은 악화되는 외교적 고립으로부터 초래되는 대외적 안보위협에 대한 북한의 증대된 불안이다. 동구 사회주의권과 구소련의 붕괴 이후 북한의 외교적 고립은 가속화되어 왔고, 최근 수년 동안 부시 행정부와의 대결적 구도는 자위적 군사력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제고시켜 왔다. 오랜 기간 축적된 거대한 군 조직의 존재와 북한사회에 내재된 군국주의 성향 등은 선군정치의 발현을 후원하는 국내적 요인들이다. 이미 주도권을 상실하고 있는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보존하고 있는 군사부문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 또한 북한이 선군정치를 지향하게 된 배경 요인이다.

  경제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정권의 정통성 결여에 직면하고 외교적 고립 속에서 자기존립에 대한 위협을 경험하는 김정일 정권에게 선군정치는 정권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선군정치는 산적한 대내외적 문제들 속에서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감을 지닌 김정일 정권이 체제 안정화를 도모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난국과 외교 고립의 두 핵심 난제가 해소되어 체제 안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북한은 선군정치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선군정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선군정치사상이 주체사상을 대체하여 김정일 시대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부상할 것인가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선군정치 사상은 주체사상에 대응할 수 있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김정일 정권의 통치 방식을 정당화하는 정치 슬로건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선군정치사상이 독자성을 확보하는 통치이념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이론적 구성과 내용 등의 측면에서 현저한 진화를 필요로 하지만, 그 성공 가능성은 거의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2. 선군정치론


  1995년 이후 김정일 정치의 특징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 이른바 선군정치이다. ‘선군정치’라는 용어는 1997년 12월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나, 군 중시의 정치방식은 김일성 사후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 사업을 힘 있게 밀고 나가는 특유의 정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군사선행, 군 중시’의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은 “독창적인 위대한 선군정치로 인민군대를 주체혁명의 기둥으로 부강조국 건설의 주력군”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경제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며 총대가 강하면 강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선군정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국방공업은 나라의 부강 번영과 인민의 행복, 혁명의 승리적 전진을 담보하는 국가정치의 첫째가는 중대사”라고 함으로써 다른 어느 분야보다 국방력의 강화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였다.

  또한 북한은 선군사상이 주체사상에 기초하였고 새로운 시대상황에 맞게 정립된 것으로 주체사상은 선군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론적 지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이 추구하는 국가의 자주성을 수호하는 것은 선군정치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하여 선군정치가 주체사상을 현실적으로 가장 잘 구현하는 정치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는 이른바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시기에 군의 정치·경제·사회적 선도역할을 통해 대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선군정치는 군 중시의 정치로서 “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군력강화에 나라의 총력을 기울이는 군사선행의 정치”로 규정된다.

  또한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를 핵심으로 하여 혁명대오를 튼튼히 꾸리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무기로 하여 사회주의 건설을 밀고 나가는 것”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북한은 이러한 군 중시 정치를 “김정일 동지의 기상이자 우리 당의 기질이고 김정일 동지식이자 우리 당의 혁명방식”이라고 하는가 하면 “군대는 곧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라는 데까지 확대 해석하고 있다. 군 중시 사상을 반영한 국방위주의 정치라고 규정하고 있는 이 선군정치론은 오늘날 김정일 체제 유지의 독창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통치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북한당국은 이와 같은 군 우선의 의지를 수시로 표현해 왔다. 1997년 신년 공동사설은“인민군대의 총창우에 사회주의의 운명과 부강조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1997년 2월 15일 김정일의 55회 생일을 축하하여 정권기관들이 보낸 축하문에는 “군대가 혁명주체의 핵심역량, 주력군을 이루며 군대는 곧 인민이고 국가”라고 강조했다. 1998년 3월 9일 노동신문은“군대를 기둥으로 하여 혁명을 완성해 나가야 하며 군대를 본보기로 온 사회와 혁명대군을 정예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 고위간부들의 권력핵심의 인사에서도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김정일 자신이 1998년 9월에 이어 2003년 9월, 2009년 4월에도 국가 최고의 직책인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었다. 2003년 9월 최고인민회의 제11기 제1차 회의에서 혁명1세대인 이을설, 백학림 등 군부

원로들이 일선에서 퇴진하였지만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 개최 이후에도 군부 실세인 조명록, 김영춘, 김일철, 이용무 등 핵심계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1996년에는 4월 25일 인민군창건일과 7월 27일 ‘조국해방전쟁 승리 기념일’(정전협정 체결일) 등 군관련 기념일을 공휴일이자 ‘국가명절’로 지정하였다.

  선군정치의 표방으로 군부의 역할도 확대되었다. 2003년 3월 노동신문에서 “인민군대는 혁명의 주력군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류다리, 금릉동굴, 금강산 발전소, 문화유적지 건설 등 대부분의 중요 경제건설 사업과 각종 우상화 선전물을 군 인력으로 건설했다. 그 밖에도 군대는 무역회사와 공장, 기업소, 광산, 협동농장 등을 포함하는 방대한 ‘제2경제’를 운영하고 있으며 심지어 농사와 철도운행, 중요 치안업무 등에도 간여하고 있다.

  1998년 신년 공동사설에서 “인민군대가 창조한 정신과 도덕, 문화와 생활기풍을 사업과 생활에 철저히 구현해 나가야 한다”며 사회가 군을 따라 배울 것을 독려하였다. 또한 ‘군민일치 모범군 쟁취운’, ‘우리초소 우리학교 운동’을 벌여 군과 사회의 일체화를 꾀하고, 2002년부터는 군민일치 ‧ 관병일치 ‧ 군정배합의 실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1월 이후 선군사상을 전체사회에 일색화하려는 ‘선군사상 일색화’를 주창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선군사상의 핵심인 혁명의 수뇌부 결사옹위정신을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전 인민들을 체제보위를 위한 전사로 만들고, 혁명적 군인정신을 전 사회에 보급함으로써 모든 사업을 군대식 사업방식으로 추진하여 경제회생의 추동력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출처 : 경남대학교 철학인들의 모임
글쓴이 : 권수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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