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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철


몸과 마음을 단단히 여며도

당신은 아무도 모르게 습격당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전면적이어서

낮과 밤, 뼈와 살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은행알과 육삼빌딩과 깨진 돌과 핸들 꺽인

세발자전거와 지표를 뚫고 올라오는 지하철 탄 사내가 여자가 게릴라처럼 당신을 하얗게 습격해온다.

빈틈없는 생활

방심하지 않는다 해도

어느 틈엔가 당신에게 틈이 생기기 시작한다. 틈은

한껏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당신은

저항하다 기어이 붙들리고 만다.

그 틈으로 당신의 절반이 슬금슬금 빠져나간다.

틈은 꼭 그만큼만 나 있다.


틈은 처음에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나중에는

당신을 제 마음대로 관리한다.







철근 구부리는 사내


내 안에서 그가 기둥처럼 넘어진 후

여름내 열병을 앓았네, 종잇장처럼 들떠 다니다

한 사내를 보았지. 여름도

백 년 동안의 맹독을 뽑아내려는지

녹물 같은 열꽃들 지천으로 꽃잎을 터뜨릴 때마다

신도시 여기저기에서 실밥처럼 터지는 혈맥,

사내는 이 완강한 여름을 맨몸으로 맞대면하지.

왜에 그랴아? 난 에미 잡아먹구 애비도 쥑인 년이여어.

독주를 퍼붓는 사내에게 눈을 흘기는 공사장 밥집 여자와

불화살 속에서 ㄷ자로 철근만 구부리는.

활대 같은 허리를 펼 때마다 허공에 지글거리는 눈빛을 쏘아 올리는

사내, 그때마다 사내 옆에 나도 꼿꼿이 서 있고 싶었네,

한밤 돌아서는 사내의 검붉은 등 뒤로도

여름은 허리를 굽히지 않았지

여름 한복판에 난 상처는 기어이 여름마다 더 깊고 넓게 도진다네.

쩡 쩌엉 강바닥까지 울린다 해도

겨울 울음은 봉합일 뿐 다음 여름을 가만가만

건너갈 수는 없지. 열꽃,

지지 않겠지만

철근 구부리던 사내의 눈빛을 나 잊지 못하네

제 그림자 속으로도 몸을 숨기지 않는 사내가 있다네.






고요한 균열


금줄이 대문을 가로지르자

눈발에 푸른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마당 후박나무의 잔뼈까지 드러나는 새벽이어서

부정하거나 정한 것들도 쉬 드나들지 못했다


한 차례 더 늦겨울 폭설이 있었을 뿐 어둠도 가벼움도 바람도 정갈했다 눈 속에 동백이 피었다는 소문이 있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터의 무게중심이 대문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시작했다 집 벽에 굵은 금이 가로로 그리고 세로로도 지나갔다 몇 달만에 집은 붕괴되었다


집 없는 내 이마를 송곳처럼 파고들던 빗줄기와 햇살

그는 모자도 없이 먼 길을 떠났다


공터의 구석진 오후, 세발자전거의 꺾인 핸들 위로 덩굴풀이 마음대로 발을 얹고 있었다


길을 걷다가 무심코 옆에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거실이었고 마당이었고 드높은 옥상이었다

그 집에서 나는 천 년을 살았다


오늘 아침 그가 내 안으로 들어와 금줄을 쳤다 내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돌멩이의 시위


햇빛이 내시경처럼

머릿속까지 비집는 백주대낮,

4차선 고속도로를 달리던 덤프트럭에서

돌 하나가 갑자기 뛰어내린다. 깨진 머리로

도로 한 중앙에 버티고 앉아

입을 다문 채 눈알을 희번덕거리고 있다.


내 작은 머리통보다 더 작은 돌멩이의 어디에서

저토록 송두리째 몸을 내어던지는 맹랑한

배짱이 나오는 것일까.

두세 갈래로 찢어지는 단말마의 비명 자국과

끌끌거리는 욕설과 가래를

온몸으로 받고 있는 돌멩이.

트레일러가 짱짱한 서슬에 놀라 움찔,

허리를 비틀다가 중심을 놓친다.

버둥거리는 트레일러의 꽁무니에

연신 코를 뭉개는 갤로퍼와 소나타와 신형 프라이드


갈수록 핏대를 세우는 돌멩이

방음벽 귀마저 한 모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죽어라,

내 자동차 뒷범퍼에 다글다글 매달리는,

밖으로 튀어나가려는 소리들을 안으로 꽉꽉.

붙잡아맨 저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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