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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 김해선


 내 팔목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어요 나뭇가지 위에는 올빼미가 눈을 뜨고 앉아 있어요 올빼미는 몸에 새겨진 나뭇가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줘요 문을 지나야 신에게 갈 수 있어요 그 나무가 없으면 절벽 밑으로 밀어버려요 나는 나무에 새겨진 이야기를 믿으며 뿌리마다 짙은 녹색을 새기고 있어요


 안에는 날카로운 모서리와 각이 너무 많아요, 밖이 좋아요 안에서 이미 자리 잡은 입술들의 소리


 나무도 종말을 믿는다고 해요 수십 개의 목을 흔들며 신의 소리를 흉내 내며 선명해지는 흉터를 돌아봐요


 내게 뻗어와요 가슴을 지나 목을 움켜쥐고 서서히 몸을 빨아들여요 올빼미가 노란 불을 켜고 구석구석 비추고 있어요 더 많은 나무들을 불러줘요 등 뒤에 숨어 있는 것은 비겁해요


 지워지길 기다리며 문이 굴러가요 시간을 놓치고 붉은 독 안에서 숨어 있는 씨앗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색상을 따라 바다가 짙어가요 며칠째 죽어 있다 일어났어요
신들이 녹아요







일몰


  눈동자 속으로 밤과 낮이 들락거려요 틈을 밀고 들어오는 찬바람을 채우고 파도 소리를 끼워보고 얼어붙은 길바닥을 비춰봐요 어둠속을 뚫고 내려가면 일몰의 빛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그 빛을 잡고 있는 손자국들이 쌓여 무엇을 말하는지 놓쳐버린 기차 시간이 손자국 아래서 내려오고 있어요 가까이 갈 수 없어요 만지면 이글거려요 불꽃으로 가득 찬 구멍들 목이 없는 동그라미 안으로 빨려들어 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리가 모두 친근해요 날카롭지 않아요


  눈동자는 어디에 있나요...... 가시처럼 뾰족한 꽃들이 말을 걸어요 남아 있는 김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으며 실크 코끼리를 만들고 있어요 붉은 천으로 코끼리 긴 코를 감고 네 개의 다리에는 초록 천으로 신발은 은박으로 씌울 거예요 우리는 가고 있어요 깊은 바다를 건너 처음으로 땅을 밟고 신맛이 돌아요







이미테이션 게임*


  스무 살이 되기 며칠 전 거짓말처럼 나를 낳았다는 남자가 말을 해요 내가 울 때마다 작은 발을 간질이면 ‘사과 견디기 사과 견디기’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웃었다고 해요


  남자는 어린 나에게 매일 ‘사과 던지기 게임’을 보여주고 가르쳤어요 나의 작은 손과 발이 마구마구 사과 던지기 판을 두드렸다고 해요 게임은 무럭무럭 자라나 사과 속에서 싹을 틔우고 기지개를 켜며 사과 향기로 누구를 낳을까 망설이다 ‘사과 견디기’ 오타가 났다고 해요


  나는 스무 살이 되기 며칠 전 긴 머리카락을 사과처럼 돌돌 말아, 사과로 태어난 듯 머리 던지기를 반복했어요 구름 위에 누워 거짓말 단검을 어디에 놔둘까** 고민하다 친구들이 지루하다고 모두 가버렸어요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않아요 나는 지나가요 눈을 감고 있는 눈꺼풀 속에서 작은 심장들이 굴러 나와요 물방울 같아요 서로 부딪쳐요 보이지 않아요 바람이 분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 영화 제목.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더빙


  점점 어두워져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나는 나무 밑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말을 해요 나무속으로 새들이 내려오면 몇 번이나 인사를 해야 하나요 예절을 알고 싶어요 나무 안에서 작은 사람이 빠져나와요 우리는 멈추지 않아요 거울이 되든지 애벌레로 변하든지 상관없어요 반딧불처럼 깜박거리며 농구대 밑에는 아직도 눈이 얼어 있어요 아이들이 신문지에 불을 붙여 겨울 놀이를 해요 서로에게 불을 던지며 여자가 되고 형이 되고 군산을 찾아요 검은 나무에게 한꺼번에 꽃망울을 터뜨려요 그 소리를 입고 싶어요 길을 놓치고 건널목을 몇 개나 지나왔는지 신호를 못 봤어요 우리는 눈 밑에 쌓여 있어요 지금도 자고 있나요 삼킬 수 없어요 어디가 시작인가요 마른 바람 위에 군산을 덧입히는 소리 납작해지지 않아요 등도 달아나지 않아요







가리옷 유다의 변명


  그것은 너의 말이다, 마지막 빵조각을 입에 넣는 나를 보고 느닷없이 말하는 너, 혀 밑으로 숨긴 말 목젖 아래로 밀어 넣는 나의 배반을 알아차린 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그 거짓말 뒤에 숨어 있다 입술 위에 검은 점 하나 붙이고 새 옷으로 바꿔 입는다 오지 않는 너 사라진 너를 찾기 위해 매일 옷깃을 세우고 창문을 닦는다 이 또한 거짓말이다 머리는 빗지 않고 창문엔 먼지가 쌓여 있다 나는 너를 태워서 화장시켰다 흰 단지에 담긴 너를 목젖 밑으로 밀어 넣는다 매일매일 밥을 삼키며 새 옷을 입고 새 옷을 찢어버리는 시간을 밀어 넣는다 나무들도 창문을 뚫고 들어오고 싶어 한다 불빛과 함께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많이 놀 수 있다


  봐, 봐, 나였던 너는 어디에 있는 거니*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팔목에 그림을 그리는 너 생전에는 무덤을 파는 사람, 꿈속에서 팔지를 주워 담는다 천으로 문지를수록 작은 소리가 난다 새들이 박혀 있는 팔지를 옮겨 그린다 너의 팔목은 수시로 나타난다 나를 감는다


  늪이 버려진다


  식탁 위에 가득 쌓인다


* 파블로 네루다의 시.






[당선소감]


  6월의 태양은 뜨거웠다. 길었다. 밤 열 시가 지나도 저녁 빛이 남아 있는 스페인 산골을 걷고, 먹고, 자고 그다음 날 새벽부터 걷고, 먹고, 자고 반복하는 40여 일 산티아고 여정이 나에겐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뙤약볕을 걸으면서 나를 버리기, 내 안의 것을 비우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는 소망들이 탁탁 찍는 스틱 소리와 함께 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이 글에 대한 절망과 대면해보고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없는 나의 글,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나의 글쓰기와 동행하며 걷고 싶었다.
  어느 날 이름이 긴 스페인 산골 마을 가게에서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나오다 큰 나무 뒤에 있는 낡은 성당과 마주쳤다. 문을 열고 기웃거리다 슬그머니 들어갔다. 금이 간 천장에 흰 회(灰)가 칠해져 있었고 낡은 의자와 습기 찬 바닥에 찬기가 돌았다. 반백의 노수사님과 파란 눈의 젊은 수사님이 알 수 없는 기도문을 반복해서 바치고 있었다. 깊은 산골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일하고...... 저녁 기도를 매일 바치는 수도자들처럼, 나의 글쓰기도 남들이 내 글을 읽어주든 안 읽어주든 그런 관심사에서 벗어나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바나나 두 개, 청사과 한 알, 생수병이 든 비닐봉지를 만지작거렸다.
  오후 아홉 시 삼십오 분, 긴 해가 사그라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실천문학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아이들 문자가 여러 개 와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서운함도 절망도 모두 녹아서 하얗게 변한 한 조각 밀떡의 형상이 나의 왼 손바닥 안에 멈춰 있었다. 계속 걷기만 하는 단순함에서 그런 모습이 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절망의 끝자락에서 만난 작은 조각 혀에 닿으면 핏방울이 될 것 같은 형상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
  나보다 더 많이 나를 이해해주시고 끝없이 기다려주시고 용기를 주신 이원 선생님과 이승하 선생님, 최정례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내 친구 안희연, 김기형, 서기원 신부님과 까미노 위에서 만난 토론토 조지환 베드로 학사님께도 깊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너는 늦었어, 이제 그만해’ 내 안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를 영원히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깊이 감사드린다.






[심사평] 


  ‘실천문학’ 시와 ‘신인상’ 시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을 끄집어낸다. 실천문학의 시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한국 시의 영토 어떤 부분을 개척하고 탐사했는가. 또한 실천문학 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아니 어떤 모습일 필요가 있는가. 이와 같은 고민이 2015 실천문학 신인상 시를 선정하는 데 고려되기를 기대하며 투고작들과 마주했다.
 170여 분이 보내준 원고가 모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렸으나 대개의 시 안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이 담겨 있었다. 시의 말들은 성향에 따라 그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었다. 쉽고 편해 보이는 말은 없었다. 선자들은 선정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데에 먼저 합의했다.
  집중적으로 논의한 원고는 세 분의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 <장화홍련뎐> 외 9편, <문신> 외 10편. 이들 원고에는 허투루 쓴 말이 없었으며 따라서 쉽게 지나칠 말이 없었다. 심사자들의 뜻이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견해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세 분에 대한 시각은 비슷했다. 문제는 시 세계가 모두 다르고 그것들이 각자 귀 기울일 만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데에 있었다.
  어렵게 한 분의 시편들에 대한 논의를 멈추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은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했다. 언어가 이룬 세계는 정교하면서도 섬세했다. 그런데 그 세계와 다른 세계의 통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실천문학의 시가 필요한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 아닐까.
  <장화홍련뎐> 외 9편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간혹 들렸다. 그러나 다양한 체험과 유연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넓히려 한 점이 돋보였다. <문신> 외 10편에서는 ‘시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집요한 내면의 탐사와 미지를 향한 모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심사자들은 고민했다. 상반된 개성을 지닌 두 세계 중 어느 하나를 쉽게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실천문학이 선보여야 하는 세계 아닌가. 두 분 모두를 선정했다.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 심사위원 : 김근. 김종훈.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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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홍련뎐 / 안은숙


  빵틀 없이도 구울 수 있는 빵은
  삼단으로 나뉘어 땋은 할라빵


  권선징악은 틀이 아니라 맛의 미담(美談)이므로 선과 악은 발효의 차이다. 미지근한 물에 밀가루와 이스트로 스펀지 반죽을 하면 장화가 부풀고 첨가물이 필요한 넌 아직 홍련.


  한 어머니가 두 딸의 머리를 땋고 있다. 머리를 엉켜놓는다. 엉킨 머리카락은 발효된 반죽 같다. 숨죽인 장화와 홍련은 아빠가 오길 기다린다.


  털이 있는 곳마다 부푼다.


  여섯 갈래 반죽이 된 친절과 성숙은 여섯 갈래 밧줄처럼 갈라진다. 가운데 머리를 잡고 오른편 머리채를 왼편으로 넘기면 왼편 머리채는 오른쪽으로 넘어간다. 이불 속에선 다리 잘린 쥐가 꼬리를 찾고.


  머리채 어디에 저렇게 봉긋 솟은 발효가 들어 있었을까. 치렁치렁한 머리채가 부푸는 나이, 엇갈린 정리에 연못이 자라고 있다.

 

  홍련과 장화는 꿈의 자매,
  쥐가 머리채를 타고 오르내린다.


  할라빵이 끊임없이 구워져 나오는 연못, 미지근한 물살에 누군가
  알람을 던지면 묶여 있는 머리채가 파문으로 풀어진다.


  권선징악, 동화는 노릇하게 구워진다.
  흉담은 겉장을 찢고 나오고 미담은 여전히 책 속에 있다.








별지


  얇은 별지 한 장,


  어디에 붙일까 고민하는 동안 날짜는 고정되어가
  주소들은 고딕체가 되어가지


  처음에 생기는 감정은 어느 곳에건 붙일 수 있는 감정, 쉽게 뜯어질 수도 쉽게 구겨질 수도 있는 감정

 

  점력(粘力)은 감정의 별지다
  그러므로
  굳이 본문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골라낸 말들로 멋을 낸
  꼬리 잘린 연애의 문장들


  본문의 글자들을 피해 만들어낸 글자들로 읽을 것, 한 번도 지은적 없는 표정으로 읽을 것

 

  별도의 감정은 재질부터 다르다
  제일 먼저 물드는 잎은 별지이고,
  가장 늦게 물드는 잎도 별지다
  두 장 이상이면 넘기는 침이 묻는다


  뒤가 생긴다
  뒤가 생긴다는 것은 비밀을 뒤에 둔다는 것이고
  눈속임을 두어 장 더 끼워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별지의 답장은 별지이고
  숨어서 가는 한때이다.








빨간 서재


  가지런히 벗어놓은 옷들보다 헝클어진 일기가 좋아. 황급한 방, 서재의 책들을 파르륵 넘기다 떨어진 몇 개의 글자들로 야설의 제목을 정해도 좋아. 빈방이지만 두근거리는 거주가 있어 좋아.


  우리는 설레는 촌수. 언니의 방향은 남남이고 어느 방향은 부정이 되는 관계. 아무도 모르는 촌수.

 

  누군가 훔쳐보고 간 제목들. 겉장의 빗장을 열어두고 가는 내용들엔 꼴깍, 침이 넘어가는 대목이 참 많아 한 며칠 그곳에서 살고 싶기도 하고 설령, 접혀 있는 페이지가 많은 책 속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등장인물로 갇히고도 싶은 책.

 

  책갈피에 숨겨둔 사진, 질투에 여러 권의 책에 꽂기도 해. 나는 긴 머리카락을 가진 빨간 다리의 바깥 여자. 짧은 은밀함과 긴 귀가로 비틀거리는 거짓을 연출하기도 하는 당신의 촌수.


  어느 집이건 빨간 촌수는 있고


  문 안쪽이 바깥이 되는 바깥의 방, 밧장은 안쪽이 되고 자물쇠는 바깥이 되는 곳. 언니를 지나면 열리는 빨간 서재.








바람은 가르마를 잘 타지


바람은 가르마를 능숙하게 잘 타지
풀밭 가르마를 타는 바람


나는 풀밭의 태생
나는 가르마를 잘 못 타는
엄마의 딸
당신의 결정을 한 번도 머리에 얹은 적 없지


머리카락의 경도
바람이 머리를 잘 땋는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
밀반죽 여섯 갈래를 땋고 있는 빵집 주인
할라빵을 내어놓고 있지
머리카락은 언제나 발효되어 있지


나의 유희는 나누어진 중간에 있지
나는 뛰면서 나의 반을 확인해
중심에서 기우뚱거리려 노력해, 나는
바람은 중심을 알려주지


우리는 나누어진 사이를 반드시 만들려고 하지
이것은 가장 안락한 형태
당신은 나의 찡그린 한쪽으로 들어와
그 후로 당신은 나를 늘 찡그리게 만들었지
당신이 반으로 갈라지고 싶거든
바람에게 청탁해


우리 동네 미장원 언니 가르마를 잘 타지만 이혼을 했지
바람이 안 생기는 가르마가 두피를 버리고
머릿속으로 숨어버렸지


아이들은 가르마에서 태어나지
정확하게 반이 나뉘어져 있나요?
내가 처음으로 들은 엄마의 말이었지.









인형양초 공장 아가씨


  성탄절을 떠올리거나 촛대를 떠올리는 옷차림의 아가씨가 있었어요. 흔한 일은 아니죠. 해가 기울면 목을 심지처럼 세우고 골목을 지나 양초 공장으로 출근을 했죠. 앞모습은 밝고 뒤태는 흔들거렸죠. 계집아이들은 인형양초의 틀이 되고 싶어 했죠.

 

  설레는 심지는 불꽃을 흔들며 타오르죠. 아가씨의 발밑은 늘 주름치마처럼 흘러내린 촛농으로 가득했어요. 갈래갈래 흘린 웃음으로 바닥이 미끄러웠죠. 오빠들은 저녁 무렵이 되면 안달이 났어요. 성냥불처럼 들떴지요

 

  정전이 잦은 변두리 동네, 그런 날이면 그녀는 더욱 불꽃을 살랑거렸죠. 원래 소문은 흔들리며 타는 촛불 같겠죠. 우리는 그 소문을 흠모했지요. 뜨거운 체온의 아가씨가 노크를 하면 자취방 문이 열리고, 남자들은 녹아 사라진다는 빨간 표지를 한 얇은 소문.

 

  아가씨가 사라질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오빠들. 골목은 아가씨가 녹인 흔적으로 미끄러웠지요. 가연성 아가씨, 인형양초처럼 녹아내리고 싶던 아가씨. 말랑말랑한 마음을 굳힌 파라핀 같은 남자가 있었지만 소문은 너무 발화성이 짙고. 달이 반쯤 녹은 날, 순식간에 불에 타고 말았지요. 아가씨가 심지처럼 그 속에서 같이 타고 있었을까요?

 

  흘러내리는 방식으로 아름다웠던 아가씨, 양초는 불빛이 꺼져도 흔적은 남아 있지요. 지금은 마을마저도 흔적만 남았지만요.









[당선소감]


  내겐 내 편의 엄마가 없다. 계모들에겐 미워서 더 예쁜 딸들이 있고 그 둘은 한편이지만 미워하는 엄마도 예뻐하는 엄마도 없는 나는 옹호받는 생이 아니다. 권선징악, 선한 것들은 혼자이고 죽을힘을 다해 죽지 않고 살아난다.

  장화는 오래전에 버린 내 편. 언제부터인지 혼자인 장화보다는 내 편이 많은 악인이 더 좋았다.

  제대로 갖춘 것이 없어 딱히 내세울 것이 없다. 나는 비평과 비판이 넘치는 창작실 출신, 한낱 소아병적 시를 썼던 기능공에 불과했다. 혐오의 문장들을 지적받고 비판받는 합평이 시를 앙다물게 했다. 모두 버리라고 했던 악역들이 결국, 내 편이 되어주었다.

  열어젖히고 나가면 언제나 변방이었다. 자주 주춤거렸고 주춤거려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갖고 싶은 것들은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놓아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더 달콤했다.

  어디쯤, 얼마만큼, 어느 언저리에 서 있는 걸까. 나는 늘 나를 의심했다. 그래서 쓴다. 나의 심장이 어떠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내 안에 갇혀 있던 이 팽팽한 긴장과 무수한 언어의 속성들이 휴경(休耕)에서 벗어나 밖으로 튀어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는 기다린다. 독사과를 들고 찾아올 왕비를, 구멍 난 독에 하루 종일 물을 붓게 할 계모를, 부엌 아궁이 앞에서 일만 해야 나를 인정해줄 새엄마를. 그러나 내겐 아직 씻지 않은 발을 찾아올 왕자도, 유리 구두도 없다.

  실천문학사와 김근, 김종훈, 황규관 심사위원님께 감사를 드린다. 글을 쓰는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존경하는 스승님들, 함께 창작 활동을 했던 승희 님과 두두팀, 혜순, 순영, 금화, 미선, 해정에게 고마운 마음을, 마지막으로 성현 님을 비롯한 건대 대학원 친구들, 고대 CarPe Diem 멤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딸들, 하영이와 하린이, 장화 같은 하은이와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나의 악역을 맡은 김상근 씨, Good luck! 나는 악역들을 사랑했고 사랑하려 한다.







[심사평] 


  ‘실천문학’ 시와 ‘신인상’ 시는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을 끄집어낸다. 실천문학의 시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한국 시의 영토 어떤 부분을 개척하고 탐사했는가. 또한 실천문학 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아니 어떤 모습일 필요가 있는가. 이와 같은 고민이 2015 실천문학 신인상 시를 선정하는 데 고려되기를 기대하며 투고작들과 마주했다.
 170여 분이 보내준 원고가 모였다.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렸으나 대개의 시 안에는 저마다 다른 개성이 담겨 있었다. 시의 말들은 성향에 따라 그 세계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주었다. 쉽고 편해 보이는 말은 없었다. 선자들은 선정 과정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데에 먼저 합의했다.
  집중적으로 논의한 원고는 세 분의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 <장화홍련뎐> 외 9편, <문신> 외 10편. 이들 원고에는 허투루 쓴 말이 없었으며 따라서 쉽게 지나칠 말이 없었다. 심사자들의 뜻이 쉽게 모이지 않았다. 견해가 달라서가 아니었다. 세 분에 대한 시각은 비슷했다. 문제는 시 세계가 모두 다르고 그것들이 각자 귀 기울일 만한 목소리를 들려준다는 데에 있었다.
  어렵게 한 분의 시편들에 대한 논의를 멈추었다. <피할 수 없는 공> 외 9편은 감각적인 언어를 구사했다. 언어가 이룬 세계는 정교하면서도 섬세했다. 그런데 그 세계와 다른 세계의 통로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지금 실천문학의 시가 필요한 것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모험이 아닐까.
  <장화홍련뎐> 외 9편에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간혹 들렸다. 그러나 다양한 체험과 유연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넓히려 한 점이 돋보였다. <문신> 외 10편에서는 ‘시적인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단조로워 보였다. 그러나 집요한 내면의 탐사와 미지를 향한 모험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주었다. 심사자들은 고민했다. 상반된 개성을 지닌 두 세계 중 어느 하나를 쉽게 선택하기 힘들었다. 그러다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둘 다 실천문학이 선보여야 하는 세계 아닌가. 두 분 모두를 선정했다.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 심사위원 : 김근. 김종훈.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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