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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인력시장에서 / 서상규

 

 

때 절은 호주머니 속 동전 몇 닢이

방울경쇠로 짤랑거린다

새벽 별이 핏발 선

눈망울을 굴리며 길을 밟는다

동틀 무렵 어둠의 갈피가 푸르러지며

코뚜레를 꿴 달빛이 고삐를 바짝 조인다

 

날빛에 목이 졸리기 직전의

창백한 수은등 아래

그림자에 묶인 소 떼가

흰 콧김을 내뿜으며 서성거리고 있다

온기 몇 점으로 온정을 나누는 드럼통 속

불길에서 파랗게 돋은 정맥을 끄집어낸다

산맥의 혈이 뻗어 내린

힘줄로 밭을 갈던 한 시절

꿈길을 되짚어 하루 노역을 점친다

 

거간꾼들이 나타날 때마다

저마다 앙상한 골격을 부풀리고

순한 이빨을 드러낸다

누구도 찌른 적이 없는 야성의 뿔을 들이밀며

복종의 표시로 한껏 머리를 숙이지만

풀빛 지폐 몇 장으로 벌이는

흥정은 튼실한 소에게로 향할 뿐이다

 

하루치의 건초에 행운을 되새기는

눈길이 발굽에 차인다

가스러진 터럭 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에

펄럭이는 살가죽을 여민 몸 속에서

운명을 삿대질하는

알싸한 공복을 다독거린다

 

연장가방에 단단히 물린 지퍼처럼

어금니를 질근질근 깨문다

손등을 짓찧는 망치질로 하루의 기둥을 세우고

시큰거리는 근육으로 시간을 톱질할 수 있다면

굳은살이 아픔 없이 뜯겨나가는 나날이다

 

아침 출근에 바쁜 사람들 틈에서

하루의 시간을 접으며

햇살에 축문 적은 소지를 사른다

생을 긍정하듯 고개를 끄덕끄덕

발뒤축을 좇는 그림자의 고삐를 끌며

햇무리에 방울소리를 감는다

 

 

 

철새의 일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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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어머니의 단층집 / 주영국

 


연립 한 칸을 얻어 이사하던 날
어머니는 토끼장 같다며
몇 번이나 옷소매를 들었다 놓으셨다

형이 월남에서 돌아오던 해
나는 사과상자로 층층이 집을 지어
토끼를 키우고 있었는데,
승리의 연호를 그리면서도 형은
몸 어딘가 자꾸만 가렵다고 했다
가끔은 맑은 날, 깨꽃처럼 충혈된 눈으로
남국行 비행운을 가리키며
이국의 방언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열병에는 토끼간이 좋다더라,
어머니는 토끼장을 기웃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셨다

토끼장이 텅 비자 형은 분가를 했다
간, 쓸개 다 잃은 토끼들을 따라
자신이 흙 한 삽 올리지 못한
낮선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때부터 오히려 맑은 날 많았는데도
남국으로 가는 비행운 보이지 않았다
뜻을 알아들을 것도 같은
낮선 방언은 어머니가 대신했다

-나는 단층집이 더 좋더라,
문패도 없는 형의 집을 손질하다
어머니, 花妬姸*에 날아온 꽃잎 하나를
다칠세라 서둘러 치마로 받으신다.

* 화투연: 봄에 꽃 피는 것을 시샘하여 아양을 피운다는 뜻의 꽃샘 추위

 

 

 

새점을 치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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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전태일의 정신을 현재적 의미로 되살리기

 

해를 거듭할수록 전태일문학상의 응모자 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인간을 억압하는 불의에 맞선 전태일의 정신이 자본주의가 횡행하는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고 있다고 믿고 싶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12명의 작품을 읽으며 심사자들은 전태일의 정신을 현재적 의미로 되살리는 방법은 무엇이며, 특히 그것을 문학의 언어로 드러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일까 하는 점을 고민했다.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심사자들만은 아닌 듯, 적지 않은 투고작들이 1970, 1980년대의 기억을 복원해내는 데 바쳐지고 있었다. 물론 그 과거형의 되새김질이 환기시키는 것은 결국 오늘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좀더 생생한 현재형의 질문들을 만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만 응모자들이 시를 쓰는 태도가 진지했고 성실성이 돋보여 우려보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서상규의 작품들은 현실에 대한 비판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적절한 비유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인력시장과 소시장(인력시장에서>), 농아부부의 수화와 곱사송어의 역류(<농아부부의 수화>), 노동자의 조끼 등판과 무당벌레의 경계색(<무당벌레의 경계색>) 등은 설득력 있는 유비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고른 점이 인정되지만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쓰려면 산문적인 느슨함이 엿보이는 대목들을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정진을 기대한다.

 

주영국의 <어머니의 단층집> <장마> <파장> <정읍을 지나며> <길만이> 등은 시적인 완결도가 높고 군더더기 없이 시어를 조직해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런데 그 유창함이 한편으로는 일정한 상투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집중도를 좀더 가지면 상당히 좋은 시를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김아름의 시편들은 유년의 기억을 섬세한 이미지의 직조를 통해 찬찬하게 그려내고 있다. <신림동, ><신림동, 여름><신림동, 겨울> 등은 일종의 연작처럼 읽히기도 하는데, 그것은 통일성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작품 사이의 변별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기도 하다. 기성 시인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정도로 지나치게 세공하다보면 오히려 시의 핵심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이외에도 장이권, 김훈희, 김 린 등의 작품이 일정한 성취와 개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앞으로 시를 놓지 않는다면 분명 좋은 작품을 쓸 것이라고 믿는다.

 

- 심사위원 나희덕 (시인)·맹문재 (시인)

 

 

 

기차, 언제나 빛을 향해 경적을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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