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김수영문학상 / 이기철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1 / 이기철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한 번도 바라보지 못한
짐승들이 즐거워질까
어떤 노래를 부르면 내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도, 까치도 즐거워질까
급히 달려와 내 등 뒤에 연좌連坐한 시간들과
노동으로 부은 소의 발등을 위해
이 세상 가장 청정한 언어를 빌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날(日)을 노래하고 싶다
나이 들기 전에 늙어버린 단풍잎들은 내 가슴팍을 한 번 때리고
곧 땅 속으로 묻힌다
죽기 전에 나무둥치를 감고 타오르는 저녁놀은
지상의 죽음이 저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치는 걸까
살이 연한 능금과 배들은 태어나 첫 번째 베어무는
어린 아이의 갓 돋은 치아의 기쁨을 위해 제 살을 바치고
군집으로 몰려오는 어둠은 제 깊은 속에다
아직 밤길에 서툰 새끼 짐승들을 위해
군데군데 별들을박아놓았다
우리가 아무리 높이 올라도
검은 새가 나는 하늘을 밟을 수는 없고
우리가 아무리 정밀을 향해 손짓해도
정적으로 날아간 흰 나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햇빛을 몰아내는 밤은 늘 기슭에서부터 몰려와
대지의 중심을 덮고
고갈되기 전에 바다에 닿아야 하는 물들은
쉬지 않고 하류로 내려간다
병病들도 친숙해지면 우리의 외로움 덮어주는
이불이 된다
산과 들판에 집 없이도 잠드는 목숨을 위해
거칠고 무딘 것들을 달래는 것이
지혜의 첫 걸음이다
달콤하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발 시린 짐승의 무릎을 덮는 짚이기만 하다면,
향기롭지 않아도 된다, 내 부르는 노래가
이슬 한 방울에도 온몸이 젖는 풀벌레의 날개를 가릴 수 있는
둥글고 넓은 나뭇잎이기만 하다면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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