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신인상/문학과사회신인상

제20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 당선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20. 8. 7.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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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CTAL / 장미도

 

바이닐은 붉은 색이다 너는 신중히 지문을 고른다 그때의 PRM은 33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겹겹이 두터운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날에는 45가 되기도 했다

 

바 자리에서는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

헤드 셸이 바이닐 위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것처럼

 

어떤 마음은 물속에 손을 넣어 물거품을 만지는 것 같다

 

통유리 창 안으로 햇빛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나날이 익어가는 얼굴이 앉아 있다

 

밤이 오면 산은 하늘보다 어두워진다 경계를 다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왜 여기와 저기가 나뉘는 걸까

너는 빈 의자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오래도록 바라보고 조심스럽게 만지면

무언가 생길 것 같은 예감

그런 것들은 오래전에 하수구 속으로 흘러 들어갔고

 

누군가는 수영을 한다 누군가는 뜰채로 죽은 벌레를 건져낸다

 빗방울이 수면을 뾰족하게 부수며 낙하한다

 

돌아오는 마음은 찾아가는 발걸음보다 빨랐다

옆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랑

폭이 좁은 허공에서는 왼발을 헛딛게 되고

붙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스스로 물속에 뛰어든 개미가 있을까

손이 허공을 휘저어도 밤은 무너짖 않고

 

음악은 뒷면에서도 가능했다

아주 천천히 개미는

앞면에서 앞면의 이쪽으로 이동한다

 

헤드셀은 늘 같은 부분에서 음 이탈을 했다

 

 

 

 

 

젤리의 사생활

 

포장지는 완성되었고 젤리는 불숙 끼어들었다

 

컨베이어 벨트처럼 이동하는 회색 구름

 

젤리는 그저 어느 날 툭 하고 나타난 것이다

영양 정보 설명서는 젤리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다

 

포장지 안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불필요한 긴장을 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유용하지만 젤리를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한다는 단점이 있다 한 철학자는 젤리에게 사회적인 성분이 함유되어 있음을 증명하고자 했으나 그 성분이 어떤 맛을 내는 알 수 없었다

 

젤리는 고체도 액체도 아니었으므로 누구에게도 해를 가하지 않았다

손가락은 말랑말랑한 젤리 사이에서 더 말랑말랑한 젤리를 고른다

 

젤리와 손가락을 햇볕에 전시해두면

방부 처리 되지 않은 손가락이 먼저 썩어갈 것이다

 

이것은 젤리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한다

 

젤리는 혓바닥을 파랗게 물들이거나 이빨의 틈새를 파고들 수도 있겠다 미각을 뒤엎은 젤리는 질리지도 않고 포장지와 함께 늙어갈 수도 있겠다

젤리는 모든 기대를 저버릴 수 있다

 

어제의 구름이 지나가고 오늘의 구름이 되돌아왔다

구름의 뒤통수가 같은 색이었던가 젤리는 알 수 없다

 

당신이 모르는 당신의 틈에서

젤리는 당신과 함께 썩어갈 것이다

젤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였다

 

 

 

 

 

델타의 방

 

0

삼가가형의 방 안에 D와 D'와 모르는 사람이 있다

 

0

나는 세 개의 꼭짓점 안에있다 D와 D'사이 기울어지는 선 안에

D는 의자에 앉아 있다

 

0

나는 세 개의 상상 속에 있다 어제의 밤도 휘어지는 새벽도

창밖에는 비가 온다고 하자 비가 내린다

 

0

D가 눈알을 굴린다 죽은 척을 하자 그날처럼 D의 칼끝이 심장을 찌르면 이미 찔렀다 하자 어쩌면 동공에 힘을 풀자 우리는 이미 사각형이라고 하자 D의 정수리에 칼끝을 찍어서 D'를 만든다 D''를 만들어 D와 엮는다 당신은 하나의 점이 된다고 하자

 

허공에 꼭짓점을 찍고 점과 점 사이를 접는다 방을 구긴다 우리는 방금 사랑했다고 하자 방은

 

0

45도 기울어 있다 파이프를 따라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듣는다 물은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0에서 델타로

 

해야 하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것이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 되도록

나는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타원형의 손잡이를 돌린다

 

0

또 다른 삼각형의 방에서

D는 의자에 앉아 있다 입을 반만 벌리고서

 

델타와 O사이에 D가 있다

 

0

벽을 부수자 파이프 속으로 도망가자 아래에서 O 위로 추락하는 원

 

1

거리를 걸을 때마다 세계를 거대한 방이라고 생각했다

빗소리가 거리에 무수한 꼭짓점을 찍고 있다

 

 

 

 

 

사이에 선

 

선은 사이에 있다 선은 선을 넘어 사이는 단발머리

 

나의 선은 노랑, 품 안에서 잠들고 멀리서 깬다 줄무늬를 삼키는 선, 어둡고 습한 탁자 밑에서 토악질을 한다

 

선은 제일 늦게 뽑힌다 머리를 넘기는 손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난다 아프지 않게 자를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아프지 않은 건 다 남의 것이다 주머니에 가위를 자기고 다닌다

 

초인종을 눌러도 대답 없는 시계는 나뭇잎을 떨구고 벌레는 동그란 허공을 먹고 몸에 동그라미를 새긴다 선은 서서 그네를 탄다 무릎을 굽히고 도약하는 자세가 된다 선은 뛰어오르고 몸은 남는다

 

모래로 만든 케이크에 나뭇가지가 꽂혀 있다 열은 부러지고 하나만 남는다 생일은 한 번 분이라서

 

손가락은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린다 동그라미는 지워지고 손가락은 몸으로 돌아온다 손가락을 자르려면 손가락이 필요해서 자르지 못한다

 

가을과 몸은 등을 돌리고 잔다 아무렇지 않게 전구를 갈고 쏟아지고 엎어진 것들을 주워 담는다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몸이 자란다 몸은 벽에 기대어 잠들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친다

 

죽은 것에는 다른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죽은 선을 죽은 선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오늘을 어제라고 부르듯이 손가락 끝에 동그라미가 남듯이

 

초가 타오르고 촛농이 남는다 왜 케이크에는 아무 향도 나지 않는 초를 꽂는 걸까 잘린 머리카락이 바닥에 흩어져 있다

 

뛰어오른 건 무엇일까 이번 생은 한 번뿐이어서 다행이야 그런 생각은 생일 전후에 떠오른다

 

바다에 가기로 했었잖아 속눈썹이 눈을 자른다

 

무기명으로 발소리가 도착한다

선, 안 밟았어

 

 

 

 

 

레이스와

 

호수는 얼어붙고 쉽게 한 방이 된다 열린 창문 안족에는 레이스 레이스 커튼, 커튼을 찢으며 햇빛이 들어온다

 

커튼을 뚫리는 벽 실금이 뿌리 내린 흰 벽에 커튼의 그림자가 인쇄된다 접을 수 없는 페이지 벽은

 

움직이지 않는 커튼 정지한 수면

창밖이 흔들리고 갓 태어난 그림자의 얼굴이 뒤섞인다 그림자는 아니 벽은 서늘해서

 

고양이가 고양이의 그림자를 깔고 앉아 있다 3시에는 없었고 방문까지 닿을 것 같다가, 벗어날 것 같다가, 4시에는 약간

 

어떻게 약간이 가능하니 약간은 숨을 쉬는 내가 말한다

고양이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림자는 거대해지고 고양이를 거대하게 삼키고 옷장을 거울을 씹어 먹는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림자의 눈은 심장에 붙어 있다 가장자리는 모두 이빨

방을 삼키고 굳은 벽을 핥아 먹는다 수평선 깊숙한 곳에서부터 탄생한 혀로,

 

벽에서는 폐허의 맛이 난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레이스

레이스는 쓸모없고 출구도 없이 쉽게 찢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