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중봉조헌문학상

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 당선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20. 6. 6.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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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팔월의 당신 / 최형만

 

서쪽 하늘이 한 시절 떨어드려도

눕지 못한 갈대처럼

활을 잡으면 팽팽해지는 불꽃

팔월의 꽃도 몽땅 붉어지고 있다

 

발목부터 올라온 뿌리의 함성은

어디로 갔을까

붉은 깃발에 꽃잎 날리면

꽃대 밀어 올린 그 힘으로 돌아오라고

사람들은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친다

 

밭을 일구던 어미의 가슴이 납작해질 때

갓난이도 칼날 같은 허기를 견뎠을까

한 번의 옹알이도 없는 밤마다

오래된 길목에 서면

무명으로 살다간 한때가 보인다

 

비린 땅을 지키러 눈 뜨면

초록으로 일어서던 임진의 여름

 

칼의 무게를 견딘 계절이 지던 날

투구와 휘장은 어느 고개를 넘어갔을까

피 냄새를 맡던 새들의 날갯짓도

숨은 바람에 만장처럼 펄럭이고 있다

 

허공을 달군 쇳내에 버려지는 팔월

그을린 당신이 먼빛으로 오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