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근로자문화예술제
제23회 근로문화예술제 문학부문 당선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20. 3. 1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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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겨울공단 / 임재동
겨울 해는
애인과의 약속을 기다리는 여공처럼
일이 끝나기 무섭게
재빨리 퇴근해 버렸다
종종종
교대 근무를 위해
어둠,
겨울엔 일이 많아
하루에 서너 시간씩 꼭 잔업을 해야 했다
지금 막
교대를 마친
가로등이
일제히 야간 작업에 들어간다
거리를 따라
실직자들처럼 고개 숙인 나무들
정리 해고 당한 낙엽들이
호호 입김 불며
구인 광고 앞을 서성이다 사라진다
이번 달엔
밀린 임금이나마 받을 수 있을런지
주택 부금이며
아이들 학비며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 짓는
공장의 굴뚝들
오랜 철야 작업으로
뿌옇게 시력을 잃은 가로등 하나가
깜빡깜빡
흐린 눈을 부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