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작품상/사이펀우수작품상
제1회 사이펀 우수작품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9. 6. 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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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수 무덤 / 이중기
기룡산 아래, 낙락장송으로 병풍을 친 곳
어느 문중 산소 아흔아홉 풍광 압권은 따로 있다
일찍이 내가 노래하다말고 악보를 찢어버렸던
그 시총詩塚* 아래
노비,
억수 무덤 있다
홍진에 죽은 아이 애장 터 만한 거기
굳이 '충노억수지묘忠奴億壽之墓'라고 새긴 빗돌이 좀 생뚱맞다
한심한 임금 몽진할 때 영천성 탈환하고
경주성 되찾으로 간 의병장 아들 몸종으로 갔다가
전사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한 노비
시신, 애써 거두어 왔다는 사실
압권이다
시신 아예 찾을 길 없는 의병장 아들은
그가 입던 옷 들고 가 훠이, 훠어이 초혼을 하고
여기저기 유림에 시문을 받아
그 문장 태운 재로 만든 시총 아래
억수 무덤,
400년 지나 조악한 빗돌 하나 세웠다
억수는 그 선비 후손들 술잔에 큰절도 받을까?
무엇보다 그거 억수 무덤 맞아?
* 임진왜란 때 영천성을 수복하고 경주전투에 나간 의병장 정세아(鄭世雅) 아들 정의번(鄭宜藩) 시신을 못 찾아 선비들의 시문을 받아 묻은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