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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근로문화예술제 문학부문 당선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9. 6. 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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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상] 점자도서관에서2 / 정애자


누가 마음의 등불 하나 밝혔는가,

창문이 반쯤 닫힌 북구 점자 도서관

책속에 얻은 길은 모두 잃어버리고

보이지않는 세상의 길을 헤매다 돌아온 나,

점자 하나 열손가락으로 살결처럼 더듬더니

모래결위로 찰싹거리는 파도소리 만져진다

은빛비늘이 돋은 바람이

목덜미를 감고 지나간다

낮달을 끌며 쟁기를 허리에 매고

밭을 매는 늙은 맨발의 아버지가 보인다

보이는 세상속에 보이지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두 눈을 감고 살아온 것처럼

어둡고 가난한 날들의

새털보다 야들야들한 페이지마다

누군가 살속에 깊이 새기고 간 지문도 보인다

커피 방울, 빗방울 튄 얼룩진 산길도 보인다

물방울 하나로 수천 수만의 물소리를

철필로 쿡쿡 눌러 새긴 점자책,

저 물소리를 따라 걸어들어가면

나이테를 감고 돌아 나오는

고향집, 한 센티 허리가 넉넉해진

감나무에 조등 하나 환하게 걸어두고,

돌아오지 않는 저녁귀가 길을

한 땀 한 땀, 새벽까지 깁고깁는

노모가 어렴풋이 보인다







[입선] 용접작업을 하며 / 문경철


단단한 각질로 제 몸 지탱한 모재는

자기 방어 관성으로 냉기류의 흰피톨을 꿈틀거린다

홀더를 잡은 손

주체하기 힘들었던 이력을 서둘러 감추고

차광 유리의 헬멧을 들 섞여 완전 무장을 한다

탱탱한 바람이 들어찬 심호흡 뒤에

직수굿 끈기를 익히던 피올리 몰려나와

아메바 아니면 히드라로

지능 없는 촉수가 스멀거렸다

사마귀 앞다리 부벼대듯 바둥거리다

산업전사로 산화하는 탄소봉

헛구역질 내지르며 발효딘 화약내가

날개 없이 등천하여 꽃구름을 피웠다


물큰물큰 분출된 마그마

지독한 채근질로 틈새를 자꾸 비집고 들어온다

깊숙한 속살까지 움캬쥔 비이드

오돌톨한 이음 골서 몸살 앓다가

관절과 신경, 혈관의 피돌기까지

복원하는 산고

노루핏빛 찍힌 환청이 얹혀지고

체온의 한계를 점령당한다

아픈 이름 뱃속에 넣고

부르튼 이불에 부스럼딱지가 돋을 즈음

분노 절규 포기 녹아내리지 않던

생의 불필요한 단어들이

모조리 살해되었다


차가운 것끼리 뜨겁게 몸 섞어

끝끝내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야 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