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회 근로문화예술제 문학부문 당선작
[국무총리상] 지게 / 김기호
이제 지게는 없다
풀벌레 낮밤으로 타전하는 헛간에도
이젠 지게는 없다
지게를 밀고 당기던 옛 산길 동무도 없다
날이 새면 몸을 맡겼던 논도 밭도 더 이상
지게를 부르지 않아
해 떨어지기 오래 전 지게는 도회를 떠났다
지게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랑이 봉천답 같은
도회의 계단만 오르내리는 것
팬보다 강한 노동의 어깨를 찾아 다니다
바람 무 같은 몸 타박타박 끌고 돌아와
나뭇단 묶듯 주발만 여섯 꿰고
외진 농업박물관에 갇혀버린 지게
다가가 몸 구부려 흙에서 잔뼈가 굵어진
내 어깨로 멩빵을 멜라치면
두 다리 힘줄이 불끈 돋을 것 같은 지게
먼저 온 쇠스랑이랑 쟁기랑 낫들 없이
걸어 나갈 수 없음을 알고도
마디마디 뼈마디 남은 힘주어
담벽을 움켜 잡고 부르르 떨고 있는 지게
창백한 달, 숨 몰아 쉬고 있는 갈 감나무 아래
이 땅 한번도 제대로 서 보지 못한 아버지
별밭으로 슬슬 쓸고 가다 구름 걷히자
들킨 듯 가볍게 날아가는 감잎들, 잎들
[은상] 엉킴에 대하여 / 김성현
발 밑 한번 내려보지 못하고
무엇을 위해 바쁘게 걸었을까
집에 이르러서야
구두끈이 엉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구두도 주인을 닮나보다
진실을 얘기해도 믿지 않는 어른들을 위해
거짓말을 배우던 유년시절부터
나는 엉켜가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엉켜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바르고 곧아서
만지면 소리내어 우는
현악기의 멜로디를 들으면
엉켜있는 자신이 부끄러워
절망의 칼로 잘라 버리는 이도 있었다
엉켜있는 것을 애써 풀려고 하기에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다
엉켜있는 것을 슬퍼하지 말자
엉켜보지 않고서야
엉켜있는 것은 엉켜있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없듯이
풀리지 않는 것도 없다는
먼저 간 사람들의 노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으리오
아직 엉키지 않은 것들이 엉키지 않도록
진심으로 안아 느껴야지
엉키지 않은 것들의 맑은 소리가 가장 소중하고
우리가 만든 것은 하늘이 아니라
엉키지 않은 것임을
눈이 마주쳐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방긋이 웃는 아이들을 보면 꿈이 생긴다
[동상] 별 / 이성제
낮에 잃은 브로치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아내를 따라 베란다로 나갔더니
그래, 어서 브로치를 보여 달랬더니
아내는 가만히 손을 들어
어둔 하늘 한켠을 가리켰다
오우, 카시오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