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유심작품상 / 곽효환
마당을 건너다 / 곽효환
그 여름밤도 남자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여인들이 지키는 남쪽 지방도시 변두리 개량한옥
어둠을 밀고 온 저녁바람이 선선히 들고 나면
외등 밝힌 널찍한 마당 한편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저녁상을 물린 할머니를 따라
평상에 자리 잡은 누이와 나 그리고
막둥아! 하면 한사코 고개를 가로젓던 코흘리개 동생은
옥수수와 감자 혹은 수박을 베어 물고
입가에 흐르는 단물을 연신 팔뚝으로 훔쳐냈다
안개 같은 어둠이 짙어질수록 할머니는
그날도 마작판에 갔는지 작은댁에 갔는지 모를
조부를 기다리며 파란대문을 기웃거렸고
부엌과 평상을 오가는 어머니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어둠이 더 깊어지면 할머니는 두런두런
일 찾아 항구도시로 간 아버지 얘기를 했고
마당을 서성이던 어머니는 더 과묵해졌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달과 별과 호랑이, 고래와 바다를 두서없이 얘기하다
스러지듯 평상 위에 잠든 아이들을
할머니와 어머니는 하나씩 들쳐 업고
별빛 가득한 마당을 건너 그늘 깊은 방에 들었다
그런 밤이면 변소 옆 장독대 항아리 고인 물에
기다림에 지친 별똥별 하나 떨어져 웅숭깊게 자고 갔다
시부문 심사평
곽효환의 시 <마당 건너다>를 읽으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열손끝을 저리게한다. 아슴하게 잊은 마음벽에 붙은 그림을 너무나 선명하게 눈앞에 펼쳐놓고있기 때문이다. 어느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이며 어느 누구나에게 마음 어느 벽에 붙어있는 그림이다.
그런데 이 그림이 왜 이렇게 가슴저린가. 곽효환의 “마당 건너다”에는 남자가 없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여자들..그리고 철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과장도 부족함도 없는 이 단순한 그림은 그 옛날 한국의 가정에 빈번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던 저녁그림인 것이다. 여름이고 마당엔 평상이있고 그 평상위의 가족들속의 여자들은 대문의 기척을 살핀다. 기다림은 더 단단해지고 아이들을 안고 마당을 건너는 그림에는 하늘의 별빛을 땅의 어둠을 가로지르는 무거운 침묵이있다.
곽효환시인의 시가 시적 사유와 시적 완성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일상적이기 가지한 흔한 그림을 “별똥별하나를 제 3의 사물로 가지고와서 웅숭깊게 자고 가게 한 기지가 시를 더 웅숭깊게 만들어 낸 것이다. 별똥별의 기다림은 아이들을 안고가는 여자들의 기다림을 더 한층 무겁고 현실화의 밑그림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루의 가사노동보다 저녁의 기다림이 더 무겁고 벅찬 여자들의 느린 움직임이 이 시전편에 흐르고 독자들은 그 느린 움직임을 따라가며 자신의 어린과거로 돌아가 얼굴에 별똥별이라도 안으려는 기척의 어머니 할머니를 바로 앞에서 본다.
하루의 노동은 끝났고 피붙이를 잠자리에 눕히는 일에도 손을 떼었을지라도 감정의 노동은 딱 이때부터라는 그 시절 그 여자들의 순연한 슬픔은 악다구니없는 침묵에 있는 것이다.
이 침묵은 물에 빠진 솜처럼 무겁고 속으로 빨려가는 불렉홀처럼 어둡다.
그래서 이 침묵은 자기착취와 자기 소비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보호방법으로 유지되어 가는 단단한 삶을 보는 일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귀는 밥마다 커져 기다림에 익숙하지만 결국 자기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삶을 이어가는 생이 거기 있는 것이다.
근대 여성 사회적 발언에서는 그 침묵에 화살을 겨누겠지만 왜 나는 곽효환의 마당을 건너는 어머니와 할머니의 고된 침묵에 두 손을 얹고 기도를 하고 싶은 것일까. 유심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유심 작품상의 올해 수상자가 발표됐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5월 23일 “14회 유심작품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곽효환(시인) △시조 부문에 김호길(시조시인) △학술 부문에 이도흠(한양대 교수) △특별상 부문에 이영춘(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시 부문에 선정된 곽효환 시인의 수상작은 ‘마당 건너다’로 그 옛날 한국의 가정에 빈번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유지해 왔던 저녁 그림을 미려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조 부문의 김호길 시조시인은 ‘모든 길이 꽃길이었네’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심사위원단은 김호길 시인의 시조에 대해 “우리는 ‘지나온 모든 길이 아름다운 꽃길’이라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것”이라면서 “척박하고 비정하고 사악하기까지 한 환경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감회가 순화와 승화의 시간을 건너 응결된 사리 같은 잠언시”라고 평했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로 학술 부문 수상자가 됐다. 올해 원효학술상 특별상에 이은 쾌거다.
심사위원단은 “마르크스가 주로 사회구조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원효는 일심(一心)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마음에서 출발해 사회를 구원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면서 “이 교수는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와 사회를 온몸으로 껴안고자 하는 실천적 지성의 모형을 학자적 삶의 영역에서 시도하고 있다”고 수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된 이영춘 시인은 후학 양성과 지역 문단 활성화에 앞장 선 공로를 인정받았다.
심사위원단은 “이영춘 시인은 문학의 불모지였던 춘천에서 1974년부터 <삼악시>동인의 창립 맴버로 그 지역에 문학의 혼불을 지피는 역할을 했다”면서 “이 시인은 개인의 시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단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부단히 헌신하고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작품상 수상자에게는 15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은 오는 8월 11일 만해축전 기간에 이뤄질 예정이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http://www.hyunbul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