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박인환문학상 / 오은
미시감(未視感, jamais vu)* / 오은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 울며불며 매달린다
여기 있습니다
사람이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없던 법이 생기던 순간,
몸이 무너졌다
마음이 무너졌다
폭삭
억장이 무너졌다
여기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단 한 번도 여기에 속한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처음처럼 한결같이 서툴렀다
사람이 사람을 에워싼다
둘러싸는 사람과 둘러싸이는 사람이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어색해한다
사람인데 사람인 게 어색하다
여기서 울던 사람이
길에 매달려 가까스로 걷는다
집이 이 근처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집에 가는 길에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
익숙한 냄새가 난다
안녕
어떤 말들은 안녕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
속이 상한 것은
겉은 멀쩡하기 위한 거지
겨우내 겨우 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봄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푹푹 꺼지는 땅 위에 사람이 서 있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이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을 겁니다
* 기시감(旣視感, deja vu)과 대조적인 개념으로 실제로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처음 경험하는 듯이 느끼는 기억 착각을 의미한다.
유에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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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오은 시인(32)이 선정됐다.
박인환문학상은 시전문 계간지 '시현실'(발행인 원탁희)에서 1999년 제정해 올해로 15회 수상자를 배출했다. 수상 작품은 '미시감(jamais vu)'이다.
강동우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오은 시인은 언어에 대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연금술적 기술과 다채로운 어조를 바탕으로 세계와 존재의 이면을 투시하는 시선과 포착된 대상의 특질을 다양한 각도에서 부각시킬 줄 아는 구성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무겁지 않으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삶과 존재에 대한 성찰의 무게를 곁들이고 있다"고 평했다.
오은 시인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를 출간했다.
시상식은 11월 14일 오후 6시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