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학상/대산대학문학상

2015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8. 7. 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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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 / 장성호

 

우리는 기다렸다

 

이 길을 통해 그들이 곧 지나갈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다 총신을 겨눈 채로 우리는 말이 없고 이따금 수풀이 조금 흔들리는 것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기로 하면서

 

그들은 언제 올까 묻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매복이었으니까 정적 속에서 새떼가 날아올랐다 평소 같았으면 새를 쏘고 박수를 쳤겠지 새를 맞추지는 않았지만 같이 박수를 치자 말하고 싶었지만 매복이었으니까 우리는 점점 우리라는 보호색을 가진 혼자가 되고

 

빈 길을 응시했다

본 적 없는 그들의 모습을 만들었다 지우면서

본 적 없는 그들의 머리에 아는 얼굴을 붙이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상상을 하면

우리는 모두 죽었던 적이 있는 사람들

 

총신을 겨눈 채로 해가 졌다 그들이 곧 올 것이라고 말해 준 이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바람이 불었고 수풀이 흔들렸다 이제 돌아가자, 말하려고 옆을 봤는데 어둠 속에는 가득한 얼굴들 돌아가자, 돌아가자 중얼거렸는데

 

총성이 울렸다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총을 쏘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너무 쉽게 그들이 되고

 

전추 속에서 밤이 지났다 햇빛이 들기 시작한 숲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새들이 가득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박수를 치면서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텅 빈 숲이었는데 행군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