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 신인상/김유정신인문학상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 / 어향숙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7. 9. 7.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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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상의 봄 / 어향숙

 

 

어린 날의 보물창고 필순이네 고물상

 

마당에는 꿈을 재던 커다란 저울이 있고, 그 옆 벽에는 깨진 거울이 걸려있어 곧잘 우리의 마음을 들키곤 했다 버려진 뾰족구두에 헐렁한 원피스를 걸치고 절뚝거리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볕이 잘 드는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배는 부르지 않아도 빈 깡통들이 차려주는 밥상을 소리 내어 맛있게 먹었다 가끔 엿을 고던 가마솥을 빡빡 긁어 입천장에 붙이고 그 달콤한 맛에 찐득이는 손으로 자주 솥뚜껑을 열었다

 

양손에 빈병 하나씩 들고 아이들이 코를 훌쩍이며 뛰어왔다 담 밑에서 별꽃들이 눈을 반짝이며 기다려주었다 훌쩍 자란 우리 키 만큼 나팔꽃이 담벼락을 타고 올랐다

 

고철더미에 엉덩이를 걸친 금성흑백 텔레비 위에서 겉표지가 떨어져 나간 순정만화를 읽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던 캔디와 나의 첫사랑 테리우스를 만났다

 

마당가 민들레꽃은 자꾸 결말을 재촉했다

 

납작 엎드려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가슴이 부풀 때마다 푸른 하늘로 꽃씨를 날려 보냈다 그 꽃씨를 따라 우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당선소감] “시인·독자 즐길 수 있는 시 쓰고 싶어

 

가끔 시간을 가로질러 어린 날의 필순이네 고물상에 가곤 합니다. 그곳은 지금도 내 상상력의 놀이터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늘 생생한 모습으로 있어서 좋습니다. 신나게 놀다 보면 창문으로 새벽이 들어와 옆에 서있을 때가 많습니다. 힘들지만 즐거운 일입니다. 앞으로 시인도, 독자도 함께 공감하며 즐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심사평]

 

 

 

문학은 대체적으로 인간과 그 삶을 표현하고자 한다.그러나 대부분의 응모작들에게서 사람의 체취와 삶의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있다 하여도 피상적이거나 어설픈 수사에 불과할 뿐. 이를테면 살아가는 일에 대한 사랑이나 그리움은 보이지 않았다.

 

로댕의 의자는 언어에 대한 단련이 상당했으나 여타 작품들이 그것을 도와주지 못했다.당선작인 고물상의 봄은 어떤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으나 사물들이 환기시켜주는 삶의 구체성이 돋보였다. 다만 추억과 그리움에만 머문 생각을 좀 더 확장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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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창조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전공을 졸업한 어향숙(사진, 11학번)씨가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에서 시 부문('고물상의 봄')으로 수상했다.

 

서울 동대문구에서 10여 년 동안 약사로 일해 온 그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 이전에도 대한약사회의 '제3회 이가탄 한국약사문학상'과 서울시약사회의 '제1회 한독문학상'에서 수상할 만큼 탁월한 시적 재능을 드러냈다.

 

수상소감으로 그는 "사람들에게 효험을 주는 시를 쓰고 싶다. '생각한 대로 길을 걸어가라'고 북돋아주는 것 같아 무척 기쁘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시인 가스통 바슐라르가 '시는 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독자와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수상작인 '고물상의 봄'이라는 시는 어린 시절 단짝 친구 명숙이네 고물상집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때의 추억을 담았다. 미디어문예창작전공을 졸업하기 전까지 어향숙 졸업생은 약 100편의 시를 써놓았다. 그동안 써온 시로 문학상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고, 올해 김유정 신인문학상 수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약사로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고 지쳤을 때, 시를 쓰게 됐다"며 "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라고 말했다.

 

시를 쓰면서 시를 좀 더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약사로 일을 하면서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희사이버대 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전공에 입학했다"고 입학한 배경을 밝혔다.

 

미디어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나서 어씨는 사람과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김기택·이봉일·홍용희 교수 등에게서 문학 전반에 관한 깊이 있는 강의를 들을 수 있었고, 온·오프라인 세미나 역시 실력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됐다.

 

졸업 후에도 전공의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해온 그는 교수진의 첨삭 지도를 받으며 '2016년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준비할 수 있었다. 전공 스터디 모임인 '서지', '수다예찬'에서 졸업 후에도 꾸준히 참여해 재학생·졸업생들과 교류하며, 서로 다독이면서 시를 써나갈 수 있었다.

 

좋아하는 작가와 책으로 프랑시스 퐁주의 '테이블', 조광제의 '주름진 작은 몸들로 된 몸',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 허연의 '오십미터'·'불온한 검은 피'를 꼽은 어씨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시 창작에 열중할 것이다. 약사들을 위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싶다. 기회가 되면 독자들과 시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