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평사리문학상

[스크랩] 2015년 평사리문학대상 /조선수 시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7. 9. 2. 20:12
728x90

 

지구의 빨래방 외 4편

 

 

 

 

드럼통이 지구의다 기우뚱

기우뚱 축을 따라 도는 게 아니라

통통 떨어지는 동전들을 따라 돈다

대륙을 넘어온 황사와 남지나해의 수평선이

어깨를 겯고 소쿠라지는 빨래방

밤낮 세탁기 하나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우랄산맥과 치악산이 줄줄이 이어진다

갠지스 강변을 떠돌다 온 운동화도 꺼덕꺼덕

돌고 자전거 기름 묻은 청바지도

돌고 히말라야 물소리 스며든 네팔 티셔츠도

덜컹거리는 궤도를 따라 달리고 있다

위도와 경도가 마구 뒤섞이는 지구의

중국발 미세먼지 이동경로 영상이 실시간

거품을 물고 소쿠라진다

아무리 탈탈 털어도 마지막 체액 한 방울은

은근슬쩍 섞여 들 것만 같은,

여기는 원곡동 밤의 빨래터

, , 통 방 하나로 세상은 밤낮을 모르고 통한다

동전을 집어삼키느라 환하게

불 켜진 행성

 

 

    

 

 

 

 

나의 오른팔은 왼팔보다 향기롭다

 

 

 

 

고생대의 석회암 지대가 몸으로 흘러들었다

 

화산재 모래바람 속에 묻힌 화석처럼

줄기 속으로 광물질이 스며든,

꼭 나무 같았는데 만져보니 돌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석회가 뿌리내린 것 같다

진화에 진화를 거듭 마침내

화석 인간이 돼버린 건가

 

돌아 누울 때마다 동굴을 스치는 바람이 긴

신음을 끌며 가는

지층의 밤,

 

어깨에 불이 이는 듯 뼈들이 깨어나고 있다

제 상처를 핥는 짐승처럼 종순에서 떨어지는 뜨거운 소리

웅크린 바닥을 타고 흐른다

 

장례용으로 쓰인다는 생석회,

미리 흙에다 잘 섞어놓은 후 뿌려야 한다는데

 

나는 아플 때만 나를 들여다보는 습성이 있다

내가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펼쳐진 백야

어쩌면 내가 나를 미리 장례 중인지도 모를,

 

화석 인간이 고생대 지층에서 눈을 뜬다

 

 

 

 

 

 

 

웃음 가스

 

 

 

 

마시면 약한 히스테리 증상이 나타난다

고통에 대해 무감각, 더러

웃기까지 한다

 

스마트 폰에 엘리베이터 모니터에 지하철 스크린 광고판에 지치지도 않고 웃음이 폭발한다 웃음소리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일요일 밤 개그 콘서트에 붙들려 오징어를 질겅이며 웃는다 아래턱이 빠질까 감염된 몸은 좀체 다물어지지 않는데 홀몸노인 고독 사 사망 후 30일이 지나 발견. 6세 여아 혼자 집을 지키다 화재로 질식사. 압구정동 인질극, 40cm 흉기 들고 하단 뉴스 자막이 발 빠르게 지나간다

 

마취제로 사용하는 아산화질소, 장시간 흡입하면

웃다가 죽을지도 모르지

 

폭소와 신음 사이에서

마취 중 각성

환자처럼 연신,

실룩대는 얼굴

 

 

 

 

 

 

 

 

 

 

 

 

 

 

 

 

생일 케이크 촛불

 

 

 

 

산에 누가 불을 지폈나,

연기인가 했더니

백양나무다

백양나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스스로 연기가 되고 있다

다 태우고

뼈만 남았다

기억하느냐 오늘을

손뼉을 칠 이파리는 다 떨어졌지만

백양나무가

풀어지고 있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마술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오직, 벗어날 수 없는 몸을

피어오르고 있다

산능선을 넘어온 바람이

불어 끈 나무

흰 연기로 정지해 있다

 

누가,

나무 아래에 아길 묻고

생일 케이크

촛불을 켠다

 

 

 

 

 

 

 

 

 

봄 소리

 

 

 

 

농학교에서 나온 아이가 맹학교 쪽으로 간다

 

점자 벽화 앞에는 제 차림이 얼마나 어여쁜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소녀가

기다리고 있다

 

머리를 매만지고 수줍어하는 눈치를 보아

소풍이라도 가는 모양이다

 

택시를 잡고 있다

소년이 한 쪽 손을 들고 있다가 잡고 있던 손을 꼭 쥐면,

소녀가 여의도- 한다

 

윤중로에 벚꽃이 한창이겠다

향기가 예까지 퍼져오는 듯한데

택시는 그냥 지나간다

그래도 둘은 마냥 좋아 보인다

 

나무들 수화도 볼 수 없고,

바람에 꽃잎 날리는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출처 : 시 산 맥
글쓴이 : 시산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