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학상/한국방송대문학상

제38회 방송대문학상 당선작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5. 7. 2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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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냄새 / 전영아

 

엄마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계시다 가셨다

집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코를 싸쥐고

지나가며 우리 집에서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너무나 가까운 일상이어서 나는 그 냄새를 전혀 구분하지 못했다

엄마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젊디젊은 나이에 방바닥을 짊어지고 있으라는 형벌을 받으신 걸까

내장이 서로 다 통해버려 끊임없이 밑으로 오물이 흘러나왔다

몸은 말할 수 없이 망가졌어도 정신만은 초롱같아서

자리 밑에 비닐을 덧씌우고 당신 손수 기저귀를 갈아 받치면서도

한 번도 내게 몸을 보이지 않으셨던

엄마

 

유방과 자궁이 온전해야 여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인데

딸은 엄마의 유전자를 빼닮는다는데

엄마가 겪은 그런 고통은 결코 겪지 않으려고

조그만 근종 하나에 나는 지레 겁을 먹고 여자를 버리고 말았다

저승은 몸이 망가져야만 갈 수 있는 곳일까

 

어젯밤 꿈엔

담벼락에 기대서서 엄마를 기다리며 웅크리고 섰던 어린 내가

저만치서 다라이를 이고 오는 엄마를 보고 쪼르르 달려가고

삼랑진 오일장 초라한 생선장수 좌판에서 허옇게 소금에 절여진 엄마를 만났다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꿈에서 깨어난 아침

냉장고에서

사다 놓은 지 한참 지나 살이 물러 물컹거리며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생선 한 토막을 발견했다

삼십 년 전에 엄마에게서 났던 그 냄새를 만났다

지독한 냄새는 길잡이인양 죽음을 데려왔다

 

 

 

 

 

 

[당선소감] 내 삶의 슬픔이 내게 詩를 쓰게 합니다

 

어제는 대설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대설은 첫눈을 선물로 가져와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어 놓았더군요.

눈을 치우느라 반나절을 땀을 흘리고 잠시 따사로워진 햇살아래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당선전화를 받았습니다.

오후 내내 가슴이 두근거려 진정이 되지 않더군요.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벌써 하늘나라 가신지 삼십년도 더 지났고 내가 엄마 보다 더 나이를 먹었네요.

시인이라는 슬픈 이름표를 달겠노라고 스승을 모신지 올해로 십 년째입니다.

혹독하게 혹평을 하시며 첨삭지도를 해주신 황봉학 시인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시인님은 그동안 제 글을 보아 주실 때마다

이것도 빼고 저것도 빼라고 하시며 다 사족이라며 지우곤 하셨지요.

그러면 끝내는 단 한 줄이 남기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그럴 때마다 글이 되지 않는 내 자신이 안타까워 울곤 하였어요.

서로 어깨를 겯고 이 길을 걸으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작가사상』 문우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함께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아직 설익은 작품에 눈맞춤 해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또 詩가 나를 부릅니다.

오늘밤을 또 꼬박 셀 것만 같습니다.

 

 

 

 

[심사평] 

 

제38회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의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었다. 시 창작의 경험이 많지 않은 분도 있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단련된 분도 있었다. 좋은 시는 과연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인가를 새삼스레 생각해보았다. 아마도 좋은 시는 열어젖히고 확장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닐까한다. 뭉클한 감동을 통해서나 분열 혹은 충격을 통해서 좋은 시는 이러한 일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열어젖히고 확장한다는 것은 한 편의 시 속에서 시상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움직인다는 뜻이다. 움직인다는 것은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시는 시상의 율동을 통해 이 세계를 다른 위치에 옮겨놓는 것이 아닐까 한다. 마치 물건을 들어 다른 곳에 내려놓듯이. 시를 창작할 때 이점을 유의했으면 한다.

마지막까지 경합한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6월14일」외 4편은 자신만의 독특한 생각의 끈을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이 좋았다. 발상도 신선했다. 다만 시「6월14일」은 직유의 과잉을 제한하고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고백체로 일관해서 쓸 필요가 있었을까도 싶었다.

「여름」외 6편은 상큼하고 발랄한 언어 감각과 시상의 전개를 자랑하는 작품들이었다. 생각의 탄력도 좋았다. 사색의 통로를 따라가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여러 곳에서 감정의 노출이 과도하게 있었다. 일상의 입말과 대화가 시구로 그대로 활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신중한 판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기우제」외 4편은 시행이 진행되면서 가장 고조되는 지점이 뚜렷하지 않아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다만 시 「하이테크빌딩 복도에서」는 여러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개인과 개인의 단절과 불통의 초상을 자연물을 빌려 발언하는 수사가 새롭고 산뜻했다. 가령 “우연히 눈길이 부딪치면 벌레가 떨어진 듯 소스라친다”와 같은 시구가 그러했다. 이러한 장점을 계속 이어가길 바란다.

고심 끝에 제38회 방송대문학상 시 부문 당선작으로 전영아 님의 「죽음의 냄새」를 선정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의 수준도 고르고 안정적이었다. 특히 시「죽음의 냄새」는 체험의 몸이 실려 있어서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엄마’의 늙고 병든 몸을 일상으로 바라보는 시적 화자의 슬픔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특히 “삼랑진 오일장 초라한 생선장수 좌판에서/ 허옇게 소금에 절여진 엄마를 만났다”는 대목에서는 생전 엄마의 퇴모한 몸이 함께 겹쳐지면서 비통에 빠지게 했다. 수상을 축하드리며 앞으로의 정진을 당부 드린다.

-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