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학상/대산대학문학상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4. 4. 23. 23:33
728x90

 

 

다음날로 가는 새벽 / 김응규

 

모기향 위에 개미 한마리가 있었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잠을 이루지 못했고

천천히 타들어오는 불에

개미는 이따금 놀라했다

펜 끝으로 먹이를 나르는 새벽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활자들을 배열하는 일을 했다

혼자 불이 켜진 방에는

시간이 혼자서 앞서갔다

나는 가느다란 선을 따라서

개미굴을 구석구석 비집었고

혼자서 알을 낳고 있는 여왕에게

고통의 내용을 읊어주었다

깊고도 짧은 시간을 지나서

나는 먹이를 구하러 가는

일개미를 따라 굴 밖으로 나왔다

빛이 엷게 들어왔다

하얀 접시 위에는 모기향이

재가 되어 가지런히 가라앉아 있었고

개미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이대로 괜찮겠냐는

몽롱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종이에 적었다

 

 

 

-《창작과 비평》 2014년 봄호, 제12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시 중 1편

 

 

[심사평]

 

우리들은 투고된 700여명의 작품을 나누어 각 3편씩을 뽑아 모두 9편을 가지고 본격적인 논의를 하기로 하였다. 투고자의 정보를 알 수 없도록 이름과 주소, 학교명을 가린 채 진행한 이 첫 번째 작업에서 우리들은 우연히도 3편을 일치시킬 수 있었다. 시를 보는 눈이 서로 다를 줄 알았는데, 논의를 해갈수록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가운데 2명이 공동으로 뽑은 1편을 한 분이 추천하여 모두 4편을 가지고 최종 심의를 하였다.  

「우선 앵무새 혀 사용법」외 4편을 응모한 분의 표제시는 앵무새의 혀를 펜으로 전환하는 비유적 기법이 매혹적이었다. 한 사물을 다른 사물로 대체하는 시의 기본기를 잘 알고 있는 분이었다. 다른 시「말」에서도 “혀끝에 속력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건”이라는 느닷없는, 그러면서도 상상이 가능한 낯선 진술이 마음에 들었다. 긴 호흡을 통한 긴장의 유지와 균일한 작품성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인력」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시는 행간이 좋았다. 짧은 호흡의 시지만 언어가 행간을 신선하게 뛰어다닌다. 수준 높은 인식이 존재한다. “한 바퀴를 다 회전하는 손잡이는 없다 딱 반 바퀴 돌고 다시 반 바퀴를 되돌아 문이 열리면”이라는 식의 진술이 그렇다. 다른 시 「트랙」은 시간에 의해서 구축되는 인간의 운명을 비유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던진 것과 놓친 것에는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인식에 공감했다. 그러나 간혹 건너 뛴 행간을 되돌아 가야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다음날로 가는 새벽」외 4편을 응모한 분의 작품 가운데, 섬세한 요리의 상상력으로 죽음을 응시한 「동물적인 죽음-Melting pot」와 「가로등 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우선 이 분의 시는 잘 읽혔다. 시행을 따라가면서 심상이 그대로 떠올랐다. 그러면서도 은유가 깊었다. 특히 주목한 시는 「가로등 밑」이었다. 정황묘사가 세밀하고 트릭과 능청, 기대 배반의 말부림이 좋았다. 한마디로 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차에 치었는데/ 바나나껍질 옆으로 날아가 같은 포즈로 누었다”라는 표현들이 그랬다. 공부를 쉬지 않으면 대성할 분이다. 

공광규 ‧ 이수명 ‧ 이정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