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의정부문학공모전
[금상] 참새와 경비 / 송호준
화학공장 넓은 뜰 안에 참새 한 마리 살고 있다
낱 알갱이 물 한 모금 없는 아스콘 포장 위를 안방처럼 들락거린다
모인 줄 알고 부러진 이쑤시개를 물었다 뱉기를 반복하다
괜한 히스테리를 보이기도 하지만
경비실 문 앞까지 기웃거리며 짹짹 즐겁다
이른 아침에는 졸고 있는 그를 깨우며
상큼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는데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아도 곁에 놀아주는 녀석이 정겹다
굳은 날 마다않고 부지런한 출근을 해대지만
휴일은 쉴 줄도 아는 걸 보니 참새백서를 따로 써야 할 판
주변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급 반응하는 것이 서로 닮았는데
어쩌면 상시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경비의 반응지수가 더 빠르다 해야 할 것이다
녀석은 채울 주머니 없어 자유로움 위에 즐겁지만
제도적 보장이 없는 사각지대에서 삶이 허기져 가는 그는
새장 속에 갇힌 늙은 관상조 같다
앞마당 뒤뜰에, 학교 가는 숲길에 함께 놀던 동심이
꿈을 모아 여기까지 왔지만
평생이 사무치던 가슴앓이 눈물 깊은 예가 꿈의 끝은 아닐 것이라고,
아닐 것이라고 되뇌며 무거운 일상을 받든다
세상의 무게 버거워도 생은 깃털처럼 가벼웠기에
꽃그림 장식한 세상도 더는 낙원이 될 수 없었을 터
잃고 내어 주기만 하던 손끝
처음부터 빈손이었음을 증명해 보이듯 맑아 있어도
맺고 풀 것도 없는 허한 속 찬바람 뒷골목이다
눈감아도 그리움 보이지 않을 때
휑한 가슴 아무것도 들어서 있지 않을 때처럼
그렇게 마르고 있었지만
언제나 숲이고 싶었던 소망은
즐거움 불러 싱그러움 노래하고 싶었을 게다
밭두렁 잡초 되어 살았어도 살 같은 세월 헤아릴 줄 아는 지금
또 다른 내일 추구하며 행복을 표현하고픈 간절함 남아 있다
따뜻한 곁자리 만들어 참새의 즐거움 함께 놀아 주었듯
귀여움 총총 물오른 몸짓으로
이젠 허수아비 들녘 같은 그를 반겨주고 있다
희망을 그려내고 있다
일반부
은상 김은혜(인천광역시 구월동, 보일러 외 2편)
동상 두동원(전북대 국어국문학과3년, 나를 웃긴 죽음)
장려 황치복(서울 강북구, 겨울 산)
고성조(육군 중위, 하얀 동화)
황은정(의정부 신곡동, 초가을 비)
김윤정(충북 충주시 호암동, 초록에 기대어)
최병학(서울 구로구, 그리움에 떨고 있는 섬)
차리라(의정부 의정부동, 라면 한 봉지)
[심사평] 덜 익은 낱말이 오래 남을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접근
2007년에 출간된 오세영 외 10인이 저술한 한국현대시사(민음사)에서는 2000년대 한국 시단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2000년대의 한국 시단은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이라는 기존의 이분법적 구분이 상당히 와해된 상황이다. 신자유주의 체제를 내세운 거대 자본이 사회의 전역을 지배하게 되자 문학 분야 또한 영향 받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해 문화 영역 전체가 산업 가치로 전환되었듯이 문학 역시 예외 없이 가치의 변화를 겪었다. 역사나 국가, 민족, 민중, 계급, 해방 등과 같은 거시 담론의 가치들은 축소 내지 폐기되었고, 대신 일상, 개인, 욕망, 몸, 탈중심 등과 같은 미시 담론의 가치들이 대두되었다. 그동안 문학이 고유하게 견지해온 정신 가치는 더 이상 지배적인 요소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감각과 시각적인 효과가 중요하게 인식된 것이다. (맹문재, 시인, 안양대교수)’
심사평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교만이다. 두려움이다. 어떤 말로 입상과 노작(勞作)임에도 불구하고 탈락한 많은 학생, 일반인 응모자 분들에게 부족하더라도 적절한 인사가 될까 늘 고민이다.
힘들게 찾아낸 낱말이 학생부에서는 ‘덜 익은 낱말’과 일반부에서는 ‘낱말의 구사’였다.
덜 익은 낱말이 일구어가는 시 밭은 넉넉함이 잘 드러나고 맛이 좋은 편이다. 초등부 저학년 입상작에 오른 전대진(목포 북교초3)의 ‘번개 치는 날’과 한상우(의정부 경의초3) ‘꼭’은 어린이들만이 내놓을 수 있는 덜 익은 낱말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렇게 덜 익은 낱말을 키워 가면 고학년에 오면 제법 시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입상작 중 최욱진(의정부 경의초6)의 ‘가을 풀잎은’ 끝부분에서 ‘가을 풀잎은 대답을 삼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라고 말하여 제법 시적 여운도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 중등부이다. 우수한 작품은 제쳐 놓고 응모 편수가 전체 33편에 불과하였다. 우리나라 글쓰기 현장의 아픔이다. 고등학교는 대입 등으로 많이 살아난 편이다. 그래도 박지혜(서울 상경중3)의 ‘묘지’ 외 2편은 수작이다. 시작이 좋다. 덜 익었지만 과감하다. ‘웃자란 잡풀 죽은 이의 더부룩한 머리카락이다.’ ‘포구’에서는 ‘내일을 건지는 어부 뱃머리에 몰아치는 풍랑을 살아낸다.’ 이 구절도 넉넉하게 좋다. 김영우(충북 충주중2) 군은 작년보다 시를 길러주지를 못하였다. 재능도 돋보인다. 정진을 바란다.
고등부 입상작 및 탈락 작품들 중 나이와 습작 연한을 미루어 볼 때 낱말이 너무 익었고 드러내기에 조급한 부분이 보여 아쉬운 작품들이 있었다. 재능도 뛰어나고 문학을 삶의 길로 정한 학생들이라고 짐작할 때 선외로 두어 미안하기만 하였다. 우수작으로 덜 익은 낱말 쪽에서 찾아 김선옥(의정부 의정부여고1)의 ‘목어’를 올렸다. 덜 익은 낱말들이었지만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한 것이 매우 좋았다. ‘그는 허공에 매여 있었다. 길게 뻗은 등 위로 묵은 세월이 겹겹이 내려앉고, 그는 내게 바다를 아느냐고 나는 바다가 그립다고 물었다.’ 고등학교 1학년답지 않은 부분이다. 유병현(안양 안양예고2)의 ‘희미한 사진첩’은 시적 완성도 면에서 앞선다. 그러나 너무 익으면 나중에 힘겨울 때가 있다. ‘이음새가 뜨는 가난의 국경선 안쪽에서는 잉크가 부족해’로 이어지는 부분은 조급하다. 간결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상위 입상한 학생들 모두 대성할 가능성이 보이고 야윈 한국 시단에 시원한 징소리로 들린다.
일반부는 송호준(울산광역시 태화동)님의 ‘참새와 경비’외 2편을 모두 올렸다. 기성 시인들을 가르치는 낱말의 구사이고 쉽지 않은 소재를 잘 어울려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화학공장 넓은 뜰 안에 참새 한 마리 살고 있다. 모인 줄 알고 이쑤시개를 물었다 뱉기를 반복하다 약간의 히스테리도 보이지만... 삶의 무게 버거워도 생은 깃털처럼 가벼웠기에 ’ 시작부터 집중하게 만들고 낱말의 시원한 구사에 급한 숨으로 쿵쿵 거린다. 작은 것에 대해 몰입하는 시심이 너무 아프다. ‘참새와 경비’, 아득한 노래였던 참새와 허수아비도 작은 것에 대한 배려의 노래로 아팠던 기억이 있다. 김은혜(인천광역시 구월동)님의 ‘보일러’ 외 2편도 낱말 구사가 좋고 시적 완성도가 돋보인다. ‘비 오는 밤 낡은 보일러실 안에는 무명시인 하나 세들어 살고 있다. 문 틈으로 새어든 바람은 파이프 속 밤새 얼어 하얀 척추를 만든다.’ 송호준 님도 그렇고 김은혜 님도 공통점을 지녔다. 2000년대 시의 공통점인 개인과 일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상위 입상자 분들 외에 입상자 모든 분들이 사는 지역에서 기성시인의 꿈을 이루기를 소망하겠습니다. 응모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작년 12회대회에서 학생부 경기도 교육감상이 신설되고 난 후부터 전국 각지에서 의정부문학공모전에 응모하는 작품이 넘치고 우수 작품이 응모되어 의정부 문학을 일구어가는 문학인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창작에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심사위원 : 초등부 저학년(시인 임경자), 고학년(시인 김생자),
중등부(시인 허은주),고등부 (시인 안태현), 일반부(시인 신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