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보훈문예공모

2006년 보훈문예 일반부 우수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3. 4. 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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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룩이는 봄비 / 송지수

 

어제부터 내린 봄비는

휴전선을 넘어서 온다.

탁탁탁! 강낭콩 붉은 콩알처럼

튀는 진달래 꽃비는

3․8선의 경계를 지우며

화약내를 푹푹 풍기며

녹슨 철모를 뒤집어쓰고

비무장 지대를 포복해 넘어온다

개나리․진달래․찔레꽃․연상홍 만발한

통일 전망대에서 두 정상이 만나듯이

세상의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며 내리는 봄비.

 

콸콸콸! 임진강 상류에서 손을 맞잡고

도도하게 한강 이남으로 내려온다.

의용군에 끌려가서 부역하던

우리 누이와 탄피 줍던 추억도

타다다닥 연발탄 터지는 소리를 내면

절룩 잘룩 지뢰밭을 밟으며 건너온다.

1․4 후퇴 때 피난 보따리 끌어안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할머니와

소백산 철쭉 군락지에서 가만히 엎드려

숨죽이며 듣던 기관총 소리처럼

타다다닥 꽃망울 터트리며 흥건하게

가슴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봄비.

하얀 붕대를 발목에 아지랑이처럼 감고

절룩거리며 南下하고 있다.

 

 

 

 

 

아버지의 군화 / 조명수

 

평생 직업군인으로 살아오신

돌아가신 아버지의 군화,

이제는 우리 집 가훈처럼

높은 시렁 위에 태극훈장처럼 모셔져 있다.

반짝반짝 윤이 나는 거울 속 같이

해가 뜨고 달이 지던, 아버지의 힘들고 고된

병영 생활이 환히 보인다.

 

뒤축이 닳고 징처럼 잔돌이 박힌

아버지의 낡은 군화, 아직도 닦으면

어떤 금메달보다 광이 난다.

어린시절 오랜만에 휴가 받아 돌아오시면

왜 나는 그렇게 군화가 군함같이 멋져 보이던지

아버지 몰래 동구 밖까지 끌고나가서

놀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

 

저벅저벅 씩씩한 아버지의 발소리에

제일 먼저 우리 집 강아지가 꼬리 치며

반기던 아버지의 군화, 통풍이 잘 되지 않아

열개의 발가락이 모두 무좀으로 썩어가도,

한번 군인은 영원한 군인이라고

평생 군복을 벗지 않고 직업군인으로 살아오신 아버지,

가끔씩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워

오래된 먼지를 털고 광을 내면

아직도 짭쪼롬한 갯내음처럼

발 고린내 나는 군화에서

어느 외진 해안 초소의

시원한 파도소리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