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보훈문예공모

2005년 보훈문예 일반부 우수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3. 4. 20.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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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의 목발 / 정해미

 

외갓집에 창고에 목발 하나 있다.

 

칭칭 감은 헝겊에 때가 묻고

목발의 끝부분이 축축할 정도로

땀이 베인 외할아버지의 목발 하나,

외삼촌도 돌아가시고

아무도 쓸 일이 없는

나무지게와 함께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왔는지

발뒤꿈치처럼 닳아진 목발의 끝과

비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몸의 중심을

잡아주기 위해 겨드랑이에 끼고

다닌 손잡이가 반들반들 한 목발 하나,

어둑어둑한 창고 안에서

더 녹이 슬어가는 것들과 함께

먼지 앉아가도 식지않고

아직도 외할아버지의

채취가 풍기는 목발 하나,

온 동네 대소사며 고샅길 너머

동사무소에까지도 절뚝거리며

걸어 다니던 할아버지의

건강한 목소리도 들려오는 목발 하나,

할아버지의 젊은 날의 뛰는 혈관처럼

아직도 그렇게 아킬레스가 꿈틀거리는

외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오동나무로 만든 반질반질한

손때 묻은 목발 하나

고향 집 헛간을 지키며 있다.

 

 

 

 

 

푸른 잎 / 배재형

 

마당 한 편 나뭇가지처럼

아버지 허리 굽었다.

겨우내 선잠 자던 햇살이

푸른 잎 앞자락 끌어내리며

봉긋한 허리에 앉아 안마하면

따뜻한 봄 손길 따뜻하신지

6.25전쟁의 참전용사셨던 아버지

일생동안 처마 끝 깊은 제비집처럼

좁고 누추한 마당을 빌려

한 그루 나무에 푸른 잎 기르셨다.

분단의 긴 어둠 속에 서 계셨던 아버지

 

푸른잎 딱딱한 눈 속 하얀 화석이 될 즈음

퇴근길에 소문도 없이 잎들을 문상하고서는

전쟁 때 돌아가신 어머니 차가운 사진에

따뜻한 입김을 불고 계셨다.

비라도 연신 내리는 날엔

오래된 추억이라도 묻어

가지 끝 간신히 살아있는 푸른 잎사귀

작은 상처 틈에다가 발라주셨다.

 

창 열어 슬쩍 들이마신 온기

가슴에 온전히 돌아

봄 나무 앞에서 허리 굽을 때

잎들마다 가는 혈관 따뜻한 피가

낮은 뿌리 제자리까지 돌아가는 중

허리 편 지아비 통일의 꿈은 돠살아나지 않을까.

 

아버지 전쟁 같은 허리 두드려 드리면

봄 나무 가장 아끼시는

푸른 잎 속에 남기신 어머니의 유언을

더 단단한 흙 밟으며 듣고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