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교단문예상 수상작
과녁 / 이동호
나뭇잎 하나 수면에 날아와 박힌 자리에
둥그런 과녁이 생겨난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마다 수면은 기꺼이 물의 중심을 내어준다
물잠자리가 날아와 여린 꽁지로 살짝 건드려도
수면은 기꺼이 목표물이 되어준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후두둑후두둑
가랑비가 저수지 위로 떨어진다
아무리 많은 빗방울이 떨어지더라도 저수지는
단 한 방울도 과녁의 중심 밖으로 빠뜨리지 않는다.
저 물의 포용과 관용을 나무들은
오래 전부터 익혀왔던 것일까
잘린 나무 등걸 위에 앉아본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된다
나무속에도 과녁이 있어 그 깊은 심연 속으로
무거운 몸이 영영 가라앉을 것 같은,
나무는 과녁 하나를 만들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한자리에 죽은 듯 서서
줄곧 저수지처럼 수위를 올려왔던 것이다.
화살처럼 뾰족한 부리의 새들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가 나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것은, 명중시켜야 할 제 과녁이
나무속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작년 빚쟁이를 피해 우리 동네 정씨 아저씨가
화살촉이 되어 저수지의 과녁 속으로 숨어들었다
올해 초 부모의 심한 반대로 이웃마을 총각과
야반도주 했다던 동네 처녀가
축 늘어진 유턴표시 화살표처럼
낚시바늘에 걸려 올라왔다
얼마나 많은 실패들이 절망을 표적으로 날아가 박혔던가
눈물이 된 것들을 위해
가슴은 또 기꺼이 슬픔의 중심을 내어준다
죽음은 늘 백발백중이다.
[수상소감]
퇴근길에 어둠을 돌아왔다. 서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촛불들을 보았다. 촛불들이 거대한 불빛으로 모여 어둠을 태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이 켠 촛불이었지만, 이제 촛불이 사람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이 촛불의 심지 같았다. 무엇이 사람들을 촛불 속으로 들어가게 만든 것일까? 무엇이 사람들을 활활 타오르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서민들의 두 눈에서 맑은 촛농이 뚝뚝 떨어지게 만들었을까? 나는 촛불이 사방에 밝혀놓은 길을 따라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이틀 전에 내게 촛불 같은 환한 소식이 왔다. 나는 하루 종일 그 소식을 주머니 속에 넣고 만지작거리며 지냈다. 사실 한 사람의 교사로서 늘 교단문예상에 욕심을 내었었다. 글 잘 쓰는 교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시를 써오면서 많은 상을 받았지만, 어떤 상보다도 이 교단문예상은 나와 잘 어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상금은 고스란히 가계에 보탬이 될 터이니, 나는 내 수업을 듣는 아이들에게 큰 자랑거리가 하나 생겨 좋다. 아이들은 기꺼이 내 기쁨에 동조해줄 것이다. 그것만으로 족하다. 자신들의 수업을 맡고 있는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왜냐하면 나는 교사니까. 사실 당선 소식 온 그날 바로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자랑했다. 아이들은 내 기대 이상으로 즐거워해 주었다.
졸시 ‘과녁’은 번호 3번까지 붙어있는 연작으로 작년 가을에 탈고한 시다. 당선 시는 같은 제목의 첫 번째 시이다. 또 ‘죽음’을 소재로 했다. 죽음과 아픔을 소재로 한 시를 쓰면 시인도 아프다.
남편이 시에 아파있는 동안 아내는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이율배반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턴 아내를 위해 아내를 닮은 시를 쓰겠다. 아내가 나를 위해, 두 아이를 위해 정성을 다 하는 것처럼 시를 쓰겠다. 시는 쓰면 쓸수록 어렵다는 것을 요즘 자주 깨닫는다. 그 어려움을 나와 함께 견디는 <난시동인>들께 감사드리고, 기꺼이 내 첫 번째 독자가 되어 지도해주시고 격려해 주신 본교의 전연희 교장선생님과 내 성화에 못 이겨 열심히 시집을 주문하시는 도서실 담당 민현주 선생께도 감사드린다.
부족한 시를 선뜻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리는 길은 한가지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내 시가 이 시대를 밝히는 촛불이 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시의 심지를 돋우겠다. 그러므로 이제 누가 내게 라이터를 켜다오.
나는 그에게로 가서 꺼지지 않는
시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