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계명문화상 당선작
고양이 / 서귀옥
안전제일, 팻말 앞에서
고양이가 죽어가고 있었다
등허리의 벽돌무늬 내려놓을 새 없이
아직도 계단을 오르는 중인지 허공에 발을 내딛고 있었다
바람의 층수가 한 층 더 높아졌다
그 사이 몸은 저물어
옆구리에서 붉은 저녁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잠시 쉬려고 내려놓은 몸
제 그림자를 짚고 일어서다 풀썩, 무게를 놓쳐버린 고양이가
슬픈 옆구리에 머리를 박고 이아옹 이아옹
인간 남자의 목소리로 울었다
어깨를 짓누르고 열 손가락을 등 허리께에 돌려 묶어놓고
불타는 무늬를 새겨 넣을 때
몸을 찢고 나오던 소리였다
흰 실밥 부스스 풀린 등이 낡은 작업복처럼 펄럭일 때까지도
무늬는 깨지지 않았다
내가 발로 툭 치자
크게 요동치던 무늬, 안쪽에서 뼈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상처를 묶은 매듭, 무늬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고양이는 담장을 넘듯 가볍게 생의 자세를 바꾸었다
세상의 담벼락을 허문 것이
뿔이 아니라 뾰족한 울음이었을까
생의 얼룩 벗을 새 없이
쥐 오줌 얼룩진 천장을 덮고 잠들었던
주름무늬 인간도 저렇게 바닥을 건넜을까
고양이가 스며든 바닥이 캄캄해졌다
●제32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 심사평(장옥관 님)
예심 없이 투고작 500여 편을 모두 읽었다. 오늘날과 같은 속된 시류 속에서도 시를 쓰고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크게 위안을 얻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느낌이다. 투고작의 대부분이 자신과 세계에 대한 열정적인 탐구보다는 사적인 감정 피력이나 공소한 언어놀이,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었다. 젊은이라면 생에 대한 좀 더 진지하고도 패기 넘치는 탐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동행』(외 7편)과 『우물이 사는 집』(외 2편), 『소리의 정원』(외 3편), 『고양이』(외 3편) 등이었다. 이 네 명의 작품은 기본기가 탄탄하게 갖춰져 있었다. 습작기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의 과잉이나 과장된 포즈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시 속으로 끌어들여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 우선 반가웠다. 『동행』(외 7편)은 아픈 가족사를 바탕으로 우리 삶이 숨기고 있는 허구성을 핍진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의도한 전언이 너무 바깥으로 드러나 독자들의 시 읽는 즐거움을 빼앗는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우물이 사는 집』(외 2편)은 시어를 부리는 솜씨가 뛰어나고 시상을 엮어가는 구성력이 돋보인다. 허나 사적인 감정의 잔재가 남아 있고 기성의 틀에 크게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다. 『소리의 정원』(외 3편)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시를 낚아내는 능력이 돋보였다. 반면 젊은이다운 패기와 집요함이 느껴지지 않아 미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당선의 영예는 『고양이』(외 3편)를 쓴 투고자에게로 돌아갔다. 이 투고자의 장점은 응모했던 작품이 두루 수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풀이, 쪼다』와 『드라이플라워』, 『꽃 피는 손톱』이 모두 당선의 범위에 들어 있어서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할 것인가 고민하게 만들었다. 진지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리듬을 구사해나가는 능력, 어조의 활달한 운용을 보여주는 언어감각, 시상을 무리없이 전개해나가는 구성력 할 것 없이 여러 방면에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오랜 기간 시를 매만져본 솜씨를 엿보게 만들었다.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거듭 정진하여 큰시인이 되길 기원한다.
- 심사위원: 장옥관 시인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겸 시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대표적인 시집으로 《황금 연못》, 《바퀴소리를 듣는다》, 《하늘 우물》,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등이, 동시집은 《내 배꼽을 만져보았다》 등을 펴냈다.
그동안 ‘현장비평가가 뽑은 2012 올해의 시 선정(죽음에 뚫은 구멍)’, ‘김달진 문학상’, ‘일연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