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보훈문예공모

2003년 보훈문예 일반부 최우수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2. 10. 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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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철

 

손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인 소녀가

활시위처럼 수틀을 잡아당겨

한 뜸 한 뜸 백일홍을 수놓는다.


바늘이 명중한 자리마다

선연한 핏빛 꽃잎들이 번져 나온다.


전쟁터에 나간 아버지는

소식이 없다.


수틀 가득 백일홍이 피어오르면

아버지가 돌아올 수 있을까


끊어진 실들을 이은 자리가

수틀 아래에 멍울처럼 아물어 있다.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려면

옹이진 상처들을 묻어두어야 한다.


바늘 귀 만한 차이로

수틀 뒤에 묻힌 상처들이

환한 꽃망울을 밀어 올린다.


얇은 수틀 위에서

상처를 딛고

한 송이씩 피어나는 백일홍


한 여자의 삶이

지는가 하면 다시 피고

지는가 하면

진저리치듯 또 다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