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학상/인제문협주최전국대학생문예작품공모

제6회 전국대학생 문예작품공모전 우수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2. 10. 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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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 장성진


빈 골목에 조등이 하나 내걸렸다

불빛이 어린 상주처럼 꾸벅꾸벅 존다

산 것은 잠들고 잠든 것은 승천하는 밤


조문을 끝내고

신발을 신다가 본다

끝까지 남아 밤새 화투를 쳐주는 먼 친척처럼

접이식천막도 치워 허허벌판인 하늘에

단풍잎 몇 개 엉덩이 붙이고 있다

댓돌 위에 배 까집고 뒤집어져 있는

뒤축부터 바싹 닳은 신발들마냥

영락없이 한 가계의 유전같다

때론 내색 않고 그저 버티어 주는 것들,

다 식은 파전이나 우물우물 씹으며

툭툭 내뱉는 되지도 않는 소리가

곡소리보다 더 든든할 때가 있다

속 편하게 취하고 또 익숙한 인기척 내주는

부좃돈처럼 고만고만한 저

마룻바닥 위의 존재감들이

제법 묵직한 이유다

바람이 차거나 말거나

상 물리고도 만면에 홍조를 띤 채

연신 패를 뒤집는

저 뚝심의 혈통

양말 벗은 발바닥까지 붉다

조등보다 붉다

 

 





민들레의 꿈 / 백현빈


수 일 전부터 포클레인의

요란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녹슨 철사줄이 끊어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자기들끼리 조각나 부딪칠 때


친구와 부르던 노래는

한 움큼씩 깨져나갔다.


추억의 흔적들을

흙먼지 속에 묻어두고

모두가 떠난 그 자리,


비뚤게 이어진 돌계단 틈에

한 송이 노란 민들레가

살며시 피어났다.


어두운 돌의 틈새에서

노란 빛을 비추며

사라져 가는 휘파람을 불러와

향기로운 화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몽실거리는 봄날의 음표가

하얀 구름 따라 함께 이어지며

조각난 노란 노래를

하나씩 붙여나갈 때


잃어버린 꿈 앞에

민들레 한 송이,

노래하는 입술로

오롯이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