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전국대학생 문예작품공모전 우수상
단풍 / 장성진
빈 골목에 조등이 하나 내걸렸다
불빛이 어린 상주처럼 꾸벅꾸벅 존다
산 것은 잠들고 잠든 것은 승천하는 밤
조문을 끝내고
신발을 신다가 본다
끝까지 남아 밤새 화투를 쳐주는 먼 친척처럼
접이식천막도 치워 허허벌판인 하늘에
단풍잎 몇 개 엉덩이 붙이고 있다
댓돌 위에 배 까집고 뒤집어져 있는
뒤축부터 바싹 닳은 신발들마냥
영락없이 한 가계의 유전같다
때론 내색 않고 그저 버티어 주는 것들,
다 식은 파전이나 우물우물 씹으며
툭툭 내뱉는 되지도 않는 소리가
곡소리보다 더 든든할 때가 있다
속 편하게 취하고 또 익숙한 인기척 내주는
부좃돈처럼 고만고만한 저
마룻바닥 위의 존재감들이
제법 묵직한 이유다
바람이 차거나 말거나
상 물리고도 만면에 홍조를 띤 채
연신 패를 뒤집는
저 뚝심의 혈통
양말 벗은 발바닥까지 붉다
조등보다 붉다
민들레의 꿈 / 백현빈
수 일 전부터 포클레인의
요란한 소리가 가까워졌다.
녹슨 철사줄이 끊어지고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자기들끼리 조각나 부딪칠 때
친구와 부르던 노래는
한 움큼씩 깨져나갔다.
추억의 흔적들을
흙먼지 속에 묻어두고
모두가 떠난 그 자리,
비뚤게 이어진 돌계단 틈에
한 송이 노란 민들레가
살며시 피어났다.
어두운 돌의 틈새에서
노란 빛을 비추며
사라져 가는 휘파람을 불러와
향기로운 화음을 이어가고 있었다.
몽실거리는 봄날의 음표가
하얀 구름 따라 함께 이어지며
조각난 노란 노래를
하나씩 붙여나갈 때
잃어버린 꿈 앞에
민들레 한 송이,
노래하는 입술로
오롯이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