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회 충대문학상 입상작
중풍(中風) / 배민애
용서해다오, 나의 잠 속에는
아직도 수천 마리 나비떼가 창백하게 날아다닌다.
기억의 중추가 마비된 채로
아버지의 해마는 과거와 현재 사이를 절뚝거린다.
혈관을 타고 도는 바람 가는 곳마다
우울증의 촉수를 키워내는 합병증을 만들고
밥숟가락 하나 드는 일이 당신에게는
일생을 일으키는 일과도 같아
끼니마다 L-튜브로 공급되는 것은 여분의 그리움
위를 채우고 나면 요관에 꽂은 줄로
방광에 차 있는 희망을 말끔히 비워줘야 한다
조금만 늦게 빼줘도 해독되지 않기에 희망은 치명적이다
댁네의 인생 손상률은 몇 퍼센트인가요,
평생 불구를 선고받은 꿈이
궁지에 몰린 얼굴로 말을 걸다 입이 돌아간다
용서해다오,
네 탓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버지가 헛손질을 한다
창 밖으로 붉은 달이 돌고
가습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고단함에
침상 머리맡마다 놓인 간병인이 머릴 꾸벅거린다
늘 바람처럼 흔들리며 살아왔던 당신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은 채로 침대 속에 고여 있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불어와 당신의 몸 속으로 들어간다
두개골 속에 갇혔던 나비떼가
바람과 함께 요관을 타고 빠져나온다
다 용서했다는 말은 거짓말이에요,
울면서 차례대로 제 날개를 떼어낸다
생의 도난율이 높을수록
기다리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고 아버지
육신을 신전 삼아 풍장되고 있었다
[심사평]
충대문학상의 연륜이 깊어지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시의 유형이 다양해지고 상상력 또한 심화되거나 확장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또한 기성시들이 지닌 유형화에서 벗어나 각기 자신들만의 개성을 담고 있었다.
세 사람의 선자가 짧은 시간 안에 합의를 볼 수 있을 만큼 당선작 <중풍>은 독창적인 시세계를 이루고 있다. 중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소재로 하면서도 냉정하리만치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기법을 보여 준다. 아버지와 나를 연결해주는 수천 마리 나비떼의 이미지도 개성적이지만 ‘L-튜브로 공급되는 것은 여분의 그리움’이라거나 ‘방광에 차있는 희망’ 등의 표현은 그 시력(詩歷)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최종심에 올라온 <횡단보도에도 봄이 머문다>와 <케르베로스> <막차>는 어느 한 편도 버리기 아까운 역작들이었으며. 마지막까지 남아 경합한 <숲 속, 떨림>은 섬세한 서정성과 선 굵은 시상 전개가 돋보이는 수작이었다.
대학문학상이 기성 시단으로 나아가는 문학지망생들의 한 관문이라면, 금년의 충대문학상 시부문은 기성 시단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금년 한 해의 것이 아니길 빌며 응모자 모든 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 심사위원 국어국문학과 손종호 교수(시인), 회계학과 이동규 교수 (시인), 영어 영문학과 박영원 부교수
[수상소감]
어디인지 모르는 바다에 배를 띄운 기분이었습니다. 이 배가 어디로 가는지 지금 가는 이 길이 맞기는 한 것인지 늘 두렵고 막막했습니다. 어두운 항구에서 몇 해를 정박하기도 했습니다. 그 사이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계절이 바뀌고 사람들이 오고 갔습니다. 내내 바다를 보는 마음이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소망하는 것처럼 애틋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답을 알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선뜻 다시 배를 띄우지 못한 날들. 그보다 힘들었던 것은 주위에 어떤 배도 드나들지 않는 창백한 정적이었습니다.
어두운 달밤을 함께 항해할 이도 정박할 이도 없이,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말해주지 않으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그저 덩그러니 정박하고 있을 뿐인 한 채의 배. 그 백지같은 시간이 막막하게 쌓여가는 동안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그저 오래된 집착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애착인지 집착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와중에 그래도 한번 도전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을 받고자 함이 아닌, 그보다 더 절박한 심정으로 내가 맞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확인받고 싶음이었습니다. 헛방다리 짚듯 위태위태하게 걷던 이 길에 손을 잡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부족한지 스스로 더 잘 알고 있기에 손을 더듬으며 걷는 이 길에 한 걸음 더 보태라고 주신 격려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다시 배가 새로운 돛을 달았습니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항구에도 새 바람이 부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