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길찾기 Ⅰ / 조대호(원광대, 국어국문학)
- 歸路
1
앞서가는 바람이 쉬이 무릎을 접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과거 속에서 흰 꽃송이가 나풀거렸다
길 잃은 새 한마리가 긴 숲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키가 큰 전나무들 때문에 자꾸 길어지는 그림자 위로
앵두같은 그리움을 토해내고 있었다
오랜 환청을 지우며 흘러가는 계곡물은
운명같은 첫사랑의 몫처럼 산모퉁이로 곧잘 숨어버렸다
나는 길치처럼 길을 잃고 있었다
2
바람이 迷路처럼 불어와서
어는 틈인가 솟아있던 생채기를
흠뻑 물빛으로 적셔두고
여러 길을 만들며 흩어져갔다
밟히는 돌들마다 세월의 상흔들이 남아
엎치락 뒷치락 사르고 있던 몸
깊숙히 숨겨온 소라껍질 같은 구멍을
채울 수 없을까 다스릴 수는 없을까 우리
귀납법으로 가는 길은 저만큼 있고
젖은 숨소리로 쓰러지는 길은 이만큼 있는데
그 가운데로 별만 총총 기다릴 수 없어 따라갈 수 없어
어제보다 오늘 더욱 저려오는 다리 이끌며
모질게 걸어가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흔들리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눈시울 적시며 아려오는 절망의 나날들이 아니라
예정된 약속 같은 것이라며
흰 두루미 날개를 접고
제 살붙이 그리움에 떨며
[심사평]
예선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57편의 작품을 숙독하며 선자의 눈길을 끈 작품들은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 ‘자동판매기에 대한 명상’, ‘우울한 벽화’, ‘꿈꾸는 留鳥 ’, ‘길찾기1’, ‘섬’ 등이었다. 이들 작품들은 대개 시에 대한 기본적 바탕이 갖추어져 있고 오랫동안 시에 대한 수련을 한 흔적이 돋보였다.
선자는 이들 작품들 중에서 고심끝에 일단 ‘자동판매기에 대한 명상’과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먼저 당선권에서 제외키로 했다. ‘자동판매기에 대한 명상’은 오늘날 대학생들의 일반적 고뇌를 문명비판적 시각으로 능숙하게 표현한 작품이나 최근 유행을 보이는 시단의 한 흐름에 개성 없이 추종하는 독창성의 부족이 아쉬움을 남겼다. 아울러 한편의 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담으려는 점도 결점이었다.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함께 응모한 작품들과 연관 지어 시에 대한 열정은 가장 돋보이나 아직 군데군데 적절치 못한 표현과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탐구가 부족하게 보였다.
나머지 네 작품들은 거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수작들이었다. 쓰고자 하는 주제를 능숙하게 표현한 능력도 뛰어나며 대학문학상의 당선권에 들만큼 시에 대한 간단치 않은 적공도 눈에 띄었다. 다만 일반적인 결점이라면 다변적인 수사가 전반적인 공통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나 이점 또한 문학에 대한 열정이라고 놓고 볼 때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았다.
선자는 이 네 편의 작품을 거듭 읽고 당선작으로 ‘길찾기1’, 가작으로 ‘섬’을 결정했다.
당선작 ‘길찾기1’은 내면적 고뇌를 능숙한 수사로 처리한 능력이 뛰어나며 삶을 관조하는 심안이 신뢰를 가져다 주었다. 이 점이 또한 몇 군데의 적절치 못한 직유와 시적대상을 너무 정적으로만 파악하려는 결점도 뛰어 넘었다.
가작으로 뽑힌 ‘섬’은 함께 보면 ‘江’등의 시들과 함께 놓고 볼 때, 가장 안정된 시적 역량을 보인 작품이어서 선자로서는 당선작 결정에 끝까지 고심한 작품이었다. 사물을 보는 만만치않은 능력이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재능을 보였다.
끝으로 남은 두 편의 시 ‘꿈꾸는 留鳥’와 ‘우울한 벽화’는 예사롭지 않은 시적재능으로 민족현실과 시대적 고뇌를 능숙하게 표현한 역작이나 전자는 너무 재주에만 의탁한 염려가, 후자는 현실문제를 너무 표피적으로 접근한 미진함이 선외가작으로 남는 아쉬움을 보였다. 모쪼록 재치와 기교보다는 온몸을 던지는 진지한 문학자세로 가일층 전진이 있기를 바란다.
김명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