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거제도 / 최동섭(계명대, 국어국문학)
야야
한 많은 한반도 남녘 바다
여기에는 사연도 많데이
왕조시대 일찍이
입바른 휜 수염 어른들이
척왜의 붉은 목청 생키며
베옷입고 침묵을 갈던 곳 아이가
그 빽다구가 대나무에 배겨 뿌리로
뿌리로 유전하면서
느그 알라들 핏줄을 타고 안 흐르나
정갱이까지만 걷어올려 식민의 몸통은 가라삐고
대륙붕 낮은 바다 위를 철벙철벙 건너왔던
제국주윈가 뭔가 하는 놈이
느그 할배 배문서 빼뜰어 갔을 때
대륙으로 독립군 갔던 느그 아제
살점 발키묵은 생선빼맨치로 땡그라이
한만 건너왔던 바다였제.
그라고 피 붉은 사변 때 맹근 포로감옥소 안 있나
그 이념의 경계선도 마 단층매로 무너져 삐고
육중한 석벽을 보듬고
푸르게 푸르게 하늘로 손 뻗는
담쟁이들이 무성한기라.
야야
옛날에 출어 때는
충신의 바다 열사의 바다 화합의 바다바다바다
그물마다 그 찬란한 바다를 건져올렸지만도
언제부턴가
흰 수염 파도처럼 밀려갔뿌고 언제부턴가
물질숭배주의 이기주의 외국제일의 사대주의
고놈의 요새판 식민주의
사방팔방으로 앵겨드는 나불에
그물도 째지고 어장도 베리뿌고
웬수 같은 흉물덩거리 ‘주의주의주의’ 귀신 원망하다가
육자배기 신세타령 데불고 해걸음을 오르는기라
빈 그물에 한 비린내만 까득 채워서 말다.
수협공판장에 느그 애비애미
조개 까며 가난을 까며
품을 팔아도 부끄럽지 않은 거는
성을 쌓고 성을 쌓으며 성을 쌓는
바다에
느그 알라들 튼튼한 함성이 있기 때문이제
그 함성 무럭무럭 자라서
충신이 되고 열사가 되어
깜깜한 지층 속에 대를 물려온
한을 출어줄끼라 믿는 기라.
야야
느그들 혈청 속에는
흰 수염 어른의 피가 흐르고 있데이
충신의 바다 열사의 바다 화합의 바다
그 빛나는 바다가
숨쉬고 있다말다.
[심사평]
선자의 손에서 마지막까지 버틴 작품은 「이주의 꿈」, 「돌맹이론」, 「걸립패의 지신밟기」, 「변방 하늘」, 「교생일기」, 「문패를 달면서」, 「거제도」등 7편이었다.
예심을 거쳐 넘어온 작품이 100여편 이었으니 당선의 권역을 향해 그만큼 좁혀진 셈이다. 그러나 심사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이 좀 야박스럽게 트집을 잡아서 그 일곱편 중에서도 다시 한편 한편을 밀어내야만 했는데 제일 먼저 밀려난 작품이 「교생일기」였다. 「마지막 자연 학습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로 간다/벗은 신발을 나무그늘에 묻어 놓고/아이들은 오종종 어깨 기대고 앉아/작고 여린 날개의 끝만 살짝/적셨다 말린다」와 같은 빛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전편이 너무 여린 감성에만 의지하고 있었다. 「변방 하늘」은 하늘을 나는 기러기떼와 연병장에서 「데모대」를 진압하기 위한 끝없는 「충정훈련」에 빠진 한무리의 「워카집단」을 대비하여 이 시대의 심상치 않은 정경을 묘사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인 제재에 비해 구성이 너무 산만하고 언어의 밀도가 약했다. 다음은 「돌멩이론」강바닥에 뒹구는 돌의 형상화를 통해 견고한 사물의 다이나믹한 질서를 드러내 보려고 했는데 끝부분에 가서 너무 상투적인 표현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상투화란 세계를 보는 자아의 눈이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 빠져드는 예술의 늪이다. 「걸립패의 지신밟기」는 우리 전통의 마을굿 형태인 지신밟기 놀이를 통해 신명과 함께 삶의 한마당 굿판을 벌이고 있으나 오늘의 시점이 빠져 있고 농촌 묘사도 너무 복고적이다. 「이주의 꿈」은 매끄럽게 쏙 빠진 작품이다. 솜씨가 뛰어나기로는 이번 응모작들 중 으뜸이다.
다음과 같은 귀절을 보자 『착한 여자와 살고 싶어 낙동강 하구쯤 아니면/제주도 애월읍 부근이면 어떨까∥그곳엔 갈대들끼리 몸서걱이며/청징한 바람들이 숲을 이루어 자주 머릴 헹군다지∥청미같은 눈썹을 지닌/다리가 길고 흰 물새 두 마리』 누군들 그 아름다운 곳을 그리워하지 않으랴! 그러나 그러한 상상의 고향은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이 빠진 대신 상상의 아름다움만이 빛을 뿜는 이 작품을 두고 선자는 많이 망설였으나 너무 일직 늙어버리려고 하는 이 젊은 시인의 발을 현실속에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서라도 선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아까운 재능이다.
「문패를 달면서」와 「거제도」는 같은 사람의 각기 다른 작품이면서도 하나는 산뜻하면서도 뜨거운 뭉클함이(하나는 치열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이성이 배어 있다.
모두 작품의 우열을 가리기도 힘들 만큼 두편 공히 꽉 짜여 있어 어느 한편을 밀어내기엔 실로 아깝다. 이 두 작품은 대학문학상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고 생각한다. 심사하는 사람 특유의 트집의 눈으로 아무리 뜯어보아도 「문패를 달면서」에서 가감할 귀절이 하나도 없었다. 『전세 살던 산동네/은박지 같은 기억이 새롭게 빛난다』이 두 행 속에 이 작가의 재능이 남김없이 숨어 빛나고 있으며『우리 호야 데불고 문패를 달면서/인자 집에서는 이름표 달지 말그래이』와 같은 곳에서 이 시대의 모든 가난한 삶을 뛰어넘는 뭉클한 감동을 만난다. 이것이 진정한 시적 감동이다.
「거제도」는 기성시단을 포함하여 역사를 시 속에 소화하고자 하는 이 시대의 모든 표현들에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적어도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 역사가 시 속에 녹아 흘러야 참다운 현실발언의 시가 된다. 거제도의 「검푸른 바다」를 「숨쉬는 바다」로 끌어올린 이 뛰어난 젊은 시인을 만난 선자의 기쁨은 크다. 그의 시가 차돌처럼 더 단단해져 어두운 시대의 구비마다에 광막한 빛을 뿜기를 기대한다.
이시영<시인․창비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