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방언학 시간 ․ 2 / 안치숙 (충북대, 국어국문학)
스무 해 앓아온 말들이
분필가루 날리며 흩어지고 있다
늦은 교정에는
냉이와 나생이의 차이
너와 나의 긴 차이를 엎으며
눈이 내리고
지나는 발걸음에 남겨진
사는 일의 슬픔과 노여움 위에도
눈이 쌓여서
평등하게 고요한 방언학 시간
가슴 속에 숨쉬는 생각들은
언 땅 밑 뿌리 웅크리어
말발굽 소리를 내며 뚜 ․ 가 ․ 닥 ․ 뚜 ․ 가 ․ 닥
맥박을 뛰게 하고 맥박이 뛰어
너의 가슴 속으로 달리게 하고
냉이 나생이 나싱갱이와 혹시 먼조상들이
그렇게 불렀을 이름에
파릇한 옴이 돋아나게 한다
분필가루 쌓인 노트 위
라인, 템즈, 세느 혹은 내가 사는 무심천
뿌리 내린 뚝길에
스무해 처음으로 내딛는 눈
[심사평]
젊은 시절이라는 게 영향받기 쉬운 시절이어서 소리 높은 주장이라든지 떠들썩한 무슨 경향에 좌우되기 쉽지만, 문학이란 무슨 유행도 아니며 일제히 따라야 할 무슨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상투적인 소재나 표현, 포즈나 어투 같은 것은 혐오감을 일으키기 쉽다. 예술이란 무엇보다도 상투성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의 조건을 한 두 마디로 얘기할 수 없지만, 자기의 생활반경 속에서 건진 작품에는 우선 호감이 간다. 이것은 특히 대학생 작품에 해당하는 말이겠지만, 일반적으로도 자기가 잘 아는 일 (이것을 체험이라고 하고 절실함이라고도 하며 또는 억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을 다루는 것이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한 우선적인 조건이라고 하겠다.
「방언학 시간․2」를 당선작으로 뽑는 까닭도 위와 같은 관점에 있다. 캠퍼스라는 생활공간,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대학시절이 배경이 되고 있는 이 작품은 아울러 그 처지에 걸맞는 발상과 표현과 어투를 보여준다. 따라서 나쁜 과장이 없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캠퍼스를 넘어서 퍼져나간다. 게다가 「방언학 시간․2」에 있는 구절 <냉이 나생이 나싱갱이와 혹시 먼 조상들이 / 그렇게 불렀을 이름에 / 파릇한 움이 돋아나게 한다>에서 보는 감수성의 질은 작자에게 시적 자질이 잇음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빛이라고 부르는 어떤 상태, 또는 생명감이야말로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자질이기 때문이다.
「휴어기의 달」, 「작도(作圖)」 등을 응모한 학생의 작품도 위와 같은 범주에 속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작도(作圖)」는 발상이 독특하기는 해도 작위(作爲)가, 선명치 않아서 「휴어기의 달」을 가작으로 뽑는다.
「겨울 내재율(內在律)」 중의 첫 번째 것인 「꽃」은 1언과 4언의 첫 3줄 같은 좋은 부분이 있으나 좀 겉늙어 보이는게 흠이고 주제의 일관성이나 선명함에 있어서도 결함이 있다.
「채송화의 노래」와 「두더지의 노래」는 어느정도 슬프고 또 온당하게 보이는 다짐으로 차 있는 진솔한 작품이지만 장차 감정적, 지적으로 좀더 성숙하기를 바라고 싶고 「한국사 강의 노트」는 「우금치에서」와 더불어 한국사에 대한 진지한 인식을 담고 있으나 너무나 많이들 쓰는 상투적인 소재이고 또 너무 심각하다.
정현종(시인․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