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젊은 시인 리오만의 죽음을 비유로 한 비가 / 진용선(인하대, 독어독문학)
<Ⅰ>
젊은 시인 리오만이
이디오피아 어느 길목에서
굶어 죽었다는
석간신문 외진 구석에서
우리는 안다.
살아 있으면서 살지못해
고통의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어둠속에 쓰러지는
크고 작은 아라비아 숫자엔
더 이상 아랑곳 없는
허기진 눈동자를
우리는 안다.
리오만의 뼈 끝까지 파고간 죽음과
인도양을 날으는 흰 갈매기들의
쉬어가지 못하는
지친 날개짓도 안다.
지금도 어둠내린 곳곳마다엔
몸으로 우는 사람이 있어
둥둥 북소리 낮게 이어지는
이디오피아, 고요한 땅엔
말할 수 없는 죽음만 펼쳐져
어디에선가 날아온 갈매기
하얗게 울다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Ⅱ>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
산 것은 모두 죽어가고
리오만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
끝맺지 못한 시 마지막 행엔
갈매기 울음만 잠들어
밤은 아직 멀기만 한데
먼동조차 지팡이처럼 땅에 떨어져
동동 발을 구르다가
떨리는 손끝으로
아득히 다가오는
낯선 별무리 헤아리는 밤
힘에 겨운 북소린 점점 낮아지고
어두운 길목에
희미한 별빛 하나 둘씩 내릴때면
우리는 안다
리오만의 목소리가 사라진
그 길목에서
산 것은
이제
더 이상 죽지 않는다는 것을
한 마리 갈매기도 울고 간
이디오피아, 고요한 땅에
밤은 아직 멀기만 한데
[심사평] 뽑고나서 지나치게 「응모」를 의식, 모방하는 경향 나타나
선자에게 주어진 20명의 응모자 작품 약 60편을 읽고, 그 가운데서 다음 시를 쓴 5명을 뽑았다.
(A)우리 시대의 그리움
(B)개나리
(C)예성강
(D)낙동강
(E)젊은 시인 리오만의 죽음을 비유로한 비가
모두가 공들여 쓴 작품들이고 상당한 수준을 보여 주었다. 간단히 언급해 보면, 장시의 불륨을 가진 (A)는 긴 호흡으로 활달한 수사학을 구사했는데, 정작 「우리 시대의 그리움」을 구체적으로 전달하는 힘이 부족했다. (B)는 4편의 시가 모두 민중의 혼을 노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양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산만한 푸념에 머무르고 만 느낌이다. 국토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C)는 그 절실한 의도가 추상적 고백을 넘어서지 못했다. (D)는 낙동강 칠백리를 역사의 힘줄로 보고 아주 짧고 건강하게 노래하는 데 성공 했으므로 가작에 넣었다. (E)는 오늘의 암울한 세계 현실을 폭넓은 상상력으로 파악하여 정직하게 형상화했다. 동봉한 3작품도 응모자의 고른 솜씨를 보여 주고 있어 당선작으로 뽑았다. 다만 제목은 「젊은 시인 리오만의 죽음」으로 족할 것을 공연히 멋을 부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번 응모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작품으로서의 「시」자체보다 「응모」라는 취지를 너무 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요즘 신춘문예 시처럼 역사적 인물이나 사실을 즐겨 도입한다든지, 별다른 필연성도 없이 시를 길게 쓰려는 경향이 현저하다. 이미 다른 사람이 한 짓을 흉내내는 것은 창작의 본질에 어긋난다. 특정한 기성시인의 작품을 애써 모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다운 개성이 표현된 작품을 쓰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쓸데없는 한자(어)를 피하라는 것도 간절히 부탁해두고 싶다.
김광규〈시인 ․ 한양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