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계명문화상 시부문 당선작
종이비행기 / 박상봉(계명대, 영어영문학)
어머니 치마폭에 쌓여있던 내 일곱살적 꿈 몇장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색색(色色)의 비행기들은 마을을 지나
민들레 꽃씨처럼 날아다니고
키를 넘어 나뭇가지 사이로
노랗게 물든 잎사귀를 흔들며 달아나는
바람을 뛰쫓다가 돌아와 논바닥에 쓰러지는
아버지의 출혈(出血)을 보았다.
휠씬 뒤의 일이지만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면
성경책 한권을 모두 찢어서
교회당 지붕 위로 날려 보냈다.
내가 날려 보낸 종이 비행기
십자가(十字架)의 중심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까닭없이 눈물 흘리시던 어머니
예수처럼 말씀하셨지.
저 산을 넘어 가거라
산을 넘으면 물이 있으리라
물을 따라 흐르다가 흐르다가
바다에 가 닿으리라
바다에 나가면 섬을 보게 되리라.
네가 다스릴 너의 나라 찾게 되리라.
내 몸이 점점 가벼워져서
빈 집들만 남은 마을을 버리고 활주(滑走)하였을 때
나는 보았다.
아버지의 출혈이 바다보다 더 큰
강물로 흐르고 있는 마을.
장엄한 물무늬의 곡류(曲流)
어머니, 어머니 눈물의 논밭
그 아래로 단풍잎같이 떨어져 쌓이는
내 일생(一生)의 종이 비행기들.
[심사평]
예선을 거쳐 넘어온 작품은 모두 43편이었다. 그 수준은 모두 엇비슷하여 버리는 작품은 남은 작품 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른 수준을 보면 문득 높은 평준화 현상이 느껴지고, 우리 시(時)의 앞날이 무척 밝다는 희망에서 신바람이 났다. 이들이 우리 시의 장래를 짊어진 얼굴들이라고 느끼면서 햇병아리의 맑은 음성을 불빛 속에 떠올려 봤다. 싱싱하게 자라나는 성장을 부추기면서-
당선작으로 뽑은 「종이 비행기」는 추억의 세계와 환상의 세계를 묘하게 얽어 실감있게 형상화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이렇게 순탄하게 얽히면서 공감(共感)에 스파크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의연(義捐) 한 무게를 가졌으면서도 작은 디테일까지도 살린 빛나는 수확이라고 말하고 싶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당선작에 비해 결코 뒤지는 편은 아니었다. 시(時)를 얽어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균형으로 볼 때 약간 뒤졌다. 그리고 가다간 상식적인 처리가 옥(玉)에 티였다. 「유산(遺産)이란 표현은 두번씩이나 사용할 당위성이 없었다.
선외가작으로 뽑은 「풀꽃에 대하여」는 어떤 시인의 작품 영향인듯 존재론적 표정에 심각성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인정하겠으나 보다 창의적인 자기의 목소리가 아쉬었다. 좋은 자질을 더 잘 살리기를 당부한다.
「꽃잎」은 결구(結構) 능력이나 언어를 천착하는 힘이 뛰어나지만, 그러나 독자의 이해를 획득하는데 약하다. 그리고 응분의 멋도 살렸으나, 그 멋에 지나치게 치중한 느낌이다. 보다 신중한 배려 속에서 작품을 엮었더라면 싶다.
「저녁강, 우리는 물리 되어 걸어가고」는 유니크하고 발랄한 이미지를 캐는데 싱싱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말을 반죽하는데, 그 뒤를 대주지 못한 느낌이다. 이미지가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탄력 있는 언어가 질서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박재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