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윤동주 시문학상 당선작
* 당선작
화석의 시제 / 김성태(성균관대학교 소비자가족학 3년)
풍경을 송출한다.
소금기 빠진 화석의 윤곽이다.
코끼리 무덤처럼 가스통이 뭉쳐있는 동네. 산
란하지 못한 물고기 정액이 수초를 묶는다.
기와지붕엔 수렵의 흔적이 묻어있다. 순록의
뜯긴 등 같다. 잠자리 한 마리가 햇살을 털고
날아간다. 개들이 목청을 돋궈 짖기 시작한다.
분리수거함에서 해골이 떨어진다. 사과 한 알
이 웃다가 트럭에 밟힌다. 수류탄만한 모과
두 알이 포탄 향을 뿜는다. 철조망의 임파선
을 따라 아찔하게 담쟁이가 매달려있다. 지친
경주마의 그것처럼 서 있는 공장의 굴뚝 위
로, 노동자의 입김이 힘없이 떠오른다. 불임의
구름을 만든다. 교수대처럼 서 있는 나무 끝
에서 까치 한 마리가 솟구친다. 잎맥만 남은
잎사귀가 허공에서 출렁거린다.
꽃잎들이 쓰러지고 있다.
골목의 수명을 수첩에 적는다.
* 가작
둥근 잔 / 임상훈(우석대학교 문예창작 4년)
할머니의 스무 번째 제삿날
손끝으로 둥근 잔의 테두리를 쓰다듬는다
입술로 빚어진 휑한 눈구멍이다.
청주가 담긴 사기(砂器)잔을 홀짝 빨다
내 등골이 싸늘해진다
녹차를 곧잘 따라 마시던 잔에서
뒤집힌 봉분이 보인 까닭
씻긴 목기들이 선반에서 마르는 동안
엎어진 목기처럼 내 속으로 어둠이 찾아온다
무덤 속에서 눈알부터 비워버린
할머니는 눈앞이 컴컴해
넘칠 듯 찰방거리는 둥근 잔
향 태우는 연기가 소복자락처럼 구겨진다
아버지와 삼촌은 서둘러 잠들지 못하고
어린 사촌들은 제사상 앞에서 소란스럽다
할머니의 대접 같은 젖꽃판에서 비릿한 젖이
암흑이, 줄줄 흘러나오는 시간
내 둥근 잔의 텅 빈 눈구멍에서부터
독주가 천천히 차오른다
할머니는 몇 년째 입이 없어 상을 물리는데
찬찬히 제삿밥을 오물거리는 하현달
* 가작
폐점 / 박혜란(경희대학교 국어국문 3년)
상점 앞에서 개가 운다.
밤중에 셔터를 내리고 내 뺀 사람은 더 이상 개의 울음이 아니고
옭아맨 쇠줄에 대하여 생각할 여력도 개의 것은 아니라서
털이 삐쭉 세우고 짖다가 말뚝을 핥고 모가지를 길게 뺀다.
손전등을 든 관리는 개의 동공 속에 다녀가는 잔상.
울다가 밥그릇을 엎고 얼마 남지 않는 물이 개의 앞다리를 적시고
두리번거리던 손전등의 빛도 남 일인 양, 길 끝으로 멀어져 갈 때
사나운 시절 흔들던 꼬리에는 단단하게 자물쇠가 걸리고
밤중에 함구한 셔터는 휑한 개의 눈동자만 곱씹는 중이다.
리어카는 새벽을 깨며 개의 울음을 줍고
경계하는 노파의 발걸음에는 잔망스럽게 입을 차는 소리.
아스팔트에 끌려올라오는 진창에 물 고이는 소리.
고름 냄새를 기필코 피우는 저 언청이 울음.
이렇게 우는 개를 보고 있으면
개의 울음은 개주인의 것이라는 생각만 나곤 한다.
상점 앞에서 개가 악을 쓰며 성성하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시는, 10명의 작품들이었다. 비교적 정확하고 안정적인 언어 구사와 시적 감각을 보여준 작품들이 적지 않았고,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언어를 다루고 시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일정한 단계에 올라와 있는 작품들이 발견되었지만, 비슷한 소재와 이미지를 구사하는 측면들이 있어 아쉬웠다. 시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와 감정을 표현하기 보다는, 아직 표현된 적이 없는 미지의 언어와 감각을 발굴하는 작업이다. 그런 측면에서 젊은 문학도들은 자기 언어를 찾아내는 작업에 열정을 집중하기를 바란다.
당선작이 된 「화석의 시제」는 풍경과 이미지를 구축하고 묘사하는 방식에 있어서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풍경'을 "소금기 빠진 화석의 윤곽"으로 설정하는 발상 자체가 감각적이었고, 그 풍경의 내부를 은유적인 방식이 아니라, 환유적인 방식으로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언어들이 신선함을 주었다. 각각의 이미지들이 특정한 관념에 묶여있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감을 스스로 가지면서 '화석의 윤곽'과 '골목의 수명'이라는 시간적인 이미지로 연결되어 있는 점이 시적 성취로 이어졌다.
가작이 된 「둥근 잔」의 경우는 '둥근 잔'이라고 하는 전통적인 이미지에 할머니의 제삿날의 느낌을 적절하게 배합하고 있다. 특히 그 '둥근 잔'으로부터 "뒤집힌 봉분"과 "할머니의 대접 같은 젖꽃판" "내 둥근 잔의 텅 빈 눈구멍"으로 이미지가 전이되면서, '나'의 실존적 깊이가 심화되는 양상이 흥미로웠다.
가작이 된「폐점」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건조하고 밀도 있게 묘사하는 감각이 인정할 만 했다. 특히 암울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기묘한 소리의 이미지들로 풀어내는 방식이, 그 풍경에 어두운 심도를 부여하고 공간적 감각에 다른 차원을 부여하는 효과를 내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심사위원 : 정현종, 정과리, 이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