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현대시학 작품상
나무인간2 / 권혁웅
방금 골목길을 돌아 나온 木皮를 보았다 유모차에 폐지를 싣고 가는 저 할머니, 나무가 되어가는 손으로 나무 아기를 거두신다 칭얼대던 2009년생 경향신문이 금세 얌전해진다 나무族들의 하루가 시작이다 햇빛의 삼투압은 여전해서 얼굴을 쓰다듬으면 혈관 있던 자리에서 펄떡이는 물관이 만져진다 옹이 같은 입은 걸친 게 없어서 깊고 다정한 소리를 낸다 버섯은 생목에서만 자라는 범, 검버섯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양지바른 곳으로 뿌리를 옮기는 데 75년이 걸렸구나 그래도 차들 무서운 줄은 알아서 할머니, 길을 건널 때만 엉금썰썰이다
―《문예연구》2010년 봄호
노모2
등잔 밑이 어두운 게 노안인데요, 어머니는 마루 불을 아끼려고 밤 열 시가 통성기도 시간입니다 그것은 하도 많이 들었어도 도무지 모르겠는 방언인데요, 케쎄라 마이테라 키테라 바이쎄라…… 경음과 격음들을 무진장 실어 나르는 게 이번엔 하느님께 아마 좀 따질 게 있나봅니다 한국에서는 제일 큰 고치가 아닐까 싶어요 어머니, 웅크렸다가 허리를 펴면서 날마다 거듭나는데요, 그 전에 직계와 방계를 아울러 긴 사설을 엮습니다 분가한 자식들은 혈압 약을 먹고요, 마흔이 넘은 막내아들만 옆방에서 책을 읽다가 눈살을 찌푸리는데요, 그건 다른 게 아니라 등잔 밑이 어두워서거든요 하늘 길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하도 많이 닮아서거든요 그 다음에야 격양가 소리가 이어집니다 아으 위 증즐가 태평성대……를 부르는 코는 참 크고 장해요 아직 어머니를 땅에 붙잡아두는 등잔 밑 부스럭거림이 아니라면 또 그건 무엇이겠습니까
―《문학들》2009년 겨울호
소오강호
―드라마 7
몸이 허공에 뜬 후에야 尹은 도를 알았다 첫 번째 걸음에 고장 난 브레이크와 생명보험의 관계를, 두 번째 걸음에 자기 앞에 어동육서, 좌포우혜를 펼칠 安의 심모원려를,
그리고 마지막 걸음에 조강지처인 자기 대신에 들어설 현모양처의 어렴풋한 윤곽을 알았다 윤은 허공답보의 초식을 깨쳤으나 그것을 시전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구사일생이란 꼭, 반드시, 살아난다는 뜻이다 주화입마를 극복하고 천신만고와 전신성형을 거쳐서 윤은 돌아왔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서 남이 된 여자가 여기에 있으니, 이것이 남비근성이다
윤은 환영대법을 펼쳤다 태양혈에 찍어둔 점 하나로 순식간에 안의 기를 빨아들였다 뜨거운 차 한 잔 마실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미혼산 없이도 안의 혼은 공사장의 비산먼지였다
금강불괴는 다진 고기가 되었고 만년한철은 녹은 봄눈이 되었다 안의 몸과 마음 얘기다 남이라는 글자에서 점 하나를 지워 님이 된 남자가 여기에 있으니, 이것이 님비현상이다
안이 현모양처를 버리고 조강지처에게 돌아온 그날 밤, 윤은 안의 귀에 대고 전음입밀의 수법으로 속삭였다 꿈에서 깨면 너는 날개 잘린 나비가 되어 있을 거야, 거기 잘린 장자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
윤이 안과 동귀어진 하려는 순간, 만년인형설삼을 닮은 아이 하나가 들어온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가 거기다 때 아닌 경극이지만, 윤의 단전에는 뜨겁게 치미는 게 있다 물론 안의 눈에서도
만천화우와 행운유수는 암기와 독수지만 엔딩 신으로도 상관은 없다 꽃비 아래서 윤과 안과 아이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화미소를 짓는다 남비와 님비 사이에서, 다들 비위도 좋다 참 좋다
―《시와 세계》2010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