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지작품상/현대시학작품상

2009년 현대시학 작품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1. 8. 2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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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 위선환

 


  몸속에 가시뼈를 키우는 물고기가 자라나는 가시뼈에 속살이 찔리는 첫째 풍경 속에서는 


  몸속에 두 귀를 묻어버린 물고기의 몸속보다 깊은 적막을, 적막하므로 무한한 그 깊이를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눈 뜨고 처음 내다본 앞 바다에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둘째 풍경 속에서는


  야윈 손이 반음씩 낮은 음을 짚어가는 저녁 무렵에 어둑하게 어스름이 깔리는 音調를

 

  새들은 어둔 하늘로 날고 살 속에서는 신열을 앓는 뼈가 사뭇 떠는 오한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잠깐씩 돌아다본 들판에 돌아다볼 때마다 눈발이 굵어지는 셋째 풍경 속에서는


  눈까풀에 점점이 점 찍힌 점무늬 아래로 한없이 떨어져 내리는 반점들의 하염없는 나부낌을


  아득하게 깊어진 눈구멍 속에서 속날개를 털며 자잘하게 날갯짓도 하는 설렘을


  누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물굽이와 들판과 나를 덮고 묻는 눈발이 자욱하게 쏟아지는 마지막 풍경 속에서는


  천 마리씩 떨어지는 여러 무리 새떼들이 바짝 마른 가슴팍을 땅바닥에 부딪치며 몸 부수는 저것이


  폭설인 것을


  내리 꽂고 혹은 치솟는 만 마리 물고기들은 물고기들끼리 부딪쳐서 산산조각 나는 것 또한


  폭설인 것을


  따로 이름 지어 부르지 않았다. 깜깜하게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누구인가 그가!


  내 이름이라 지어 불렀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