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소월시문학상

제7회 소월시문학상 / 김명인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1. 7. 2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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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에 오르다 / 김명인

 


어제 하루는 화엄 경내에서 쉬었으나
꿈이 들끓어 노고단을 오르는 아침 길이 마냥
바위를 뚫는
천공 같다, 돌다리 두드리며 잠긴
山門을 밀치고 올라서면 저 천연한
수목 속에서도 안 보이는
하늘의 雲板을 힘겹게 미는 바람소리 들린다
간밤에는 비가 왔으나, 아직 안개가
앞선 사람의 자취를 지운다, 마음이 九折羊腸인 듯
길을 뚫는다는 것은
그렇다, 언제나 처음인 막막한 저 낯선 흡입
묵묵히 앞사람의 행로를 따라가지만
찾아내는 것은 이미 그의 뒷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무엇이 이 산을 힘들게 오르게 하는가
길은, 누군들에게 물음이
아니랴, 저기 산모롱이 이정표를 돌아
의문부호로 꼬부라져 羽化登仙해 버린 듯 앞선 일행은
꼬리가 없다, 떨어져도 떠도는 산울림처럼
이 허방 허우적거리며 여기까지 좇아와서도
나는 정작 내 발의 티눈에 새삼스럽게 혼자 아픈가
길섶 풀물에 든
낡은 經소리 한 구절 내내 떨쳐 버리지 못해
시큰대는 발자국마다 마음 질척거리는데
화엄은 화음 속에 얼굴을 감추고 하루종일
굴참나무 잔가지에 얹히는 經典을 들어 나를 후려친다

 

 

여행자 나무

 

nefing.com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7회 소월시문학상에 시인 김명인 씨(46. 경기대 교수)가 선정됐다. 수상작은 <화엄에 오르다> 10편이다. 김 씨는 경북 울진 태생으로 지난 73<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출항제>가 당선돼 등단하였고, <반시> 동인으로 활동하며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등의 시집을 발표했다.

 

김명인은 1973년에 등단하여 그동안 `동두천` `유다시편` 등의 연작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깊이 있게 천착하였다. 인간에 대한 그의 따뜻한 사랑과 신뢰는 남다른 그의 문학적 형상력에 힘입어 우리를 감동케 한 바 컸다.

 

- 7회 소월시문학상 선정 이유서 중에서

 

 

김명인 시인의 시는 그 표상에 등가물의 진실이 수반되어 있다 하겠고, 이것은 그의 존재(사물)에 대한 인식 추구의 치열성과 그 체험의 부피를 말해 주는 것이다구상

 

김명인은 누구보다도 시는 서정의 토대 위에서 씌어진다는 사실을 잘 아는 시인이어령

 

나는 김명인 작품에 적지 않은 매력을 느꼈다. 그에게 소재들은 상당히 기능적으로 정서가 되어 나타난다 김용직

 

삶의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근원적인 적막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 이형기

 

시의 사상적 깊이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그의 시의 이 같은 모색을 우리는 가치 있게 평가하고 싶다 오세영

 

- 심사평 중에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혼의 지형도이제 제게 주어지는 이 상은 이미 달성된 시인에게 주는 상이 아니라, 열심히 시를 쓰고자 애쓰는, 그러기에 그 노력을 격려하기 위한 상이라고 제 나름대로 규정하고 나니, 한결 홀가분해집니다. 그리고 책임 또한 무거워짐을 느낍니다. 스스로 바라건대 저는 완성보다는 과정에 치열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수상소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