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문학상/산림문화작품공모전

제10회 산림문화작품공모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1. 7. 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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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사다리병창 / 고은희


세렴폭포 환하게 열리고

치악산 무지개 생강나무 가지에 걸려 있다

노란 꽃분냄새 뒤쫓아

사다리병창*을 오른다


금강송이 연주를 한다

그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는 암벽

가야금병창이 울려퍼진다

갓 나온 싹들

바람의 보폭만큼 목청을 돋운다


가파른 암벽을 중중모리장단으로 올라간다

바람의 꼬리뼈에 하악하악

추임새를 넣는다

빠르게 한 박자만 넘어가면 비로봉인데


정상을 눈앞에 두고

엇박자의 폭설이 쏟아진다

완창

그 마지막 마디에서


툭, 끊겨버린 휘모리장단


* 사다리병창 : 치악산 세렴폭포를 지나 비로봉 직전까지의 험한 등산로




은상



숲에 잠들다 / 오명숙


다리 부러진 의자

누군가를 기다린다

오가는 풍경들을 쳐다보며


마을 다녀 온 바람 소리에

날마다 귀가 떡갈잎만큼 자란다


홀로 어둑해지는 산

바람과 노을이 앉았다 가고

풍경소리와 참나무

이파리 한 장이 쉬었다 간다

벌레울음이 발목을 타고 오르는 저녁

낡은 의자에는

가벼운 것들만 앉았다 간다

곁에 서 있는 애기나리들

의자의 깨진 무릎을 호호 불어준다


먼 길을 걸어온

한 그루 나무였던 의자

한 생을 숲속에 내려놓고

산 한 자락을 껴안고 잠들고 있다.


산책 나온 밤하늘 직녀별이

모서리에 몸을 기대고 있다.




동상



자작나무 / 윤민숙


검거나 혹은 붉은 나무들 천지인 세상에 문득 회칠을 하고 서 있는 자작나무 수피에서 가을 하늘의 밀지(密旨)를 받아 적는다.


밤하늘 사선으로 흘러가던 달빛에 비춰 보면 몰락한 제국의 연대기를 낱낱이 기술하고, 액막이 굿판에서 사설을 풀어내던 무당의 주술도 빼곡하다가, 먼 옛날 석기시대 이전의 한 문명인이 별 무더기 하나둘씩 선을 그어 우주의 항로를 새겼을 자작나무 수피 사이 행간은 이미 넓다.


누렇게 퇴색하는 계절도 제 빛깔을 찾아가는 시간, 천마도장니* 속 푸른 말 울음소리

들리는지 또 한 겹 세월을 털어내고 가을 길을 여민다.


* 천마도장니 : 국보 제27호, 천마총(天馬塚)에서 출토된 5세기 말의 마구장비(馬具裝備) 장식화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다.



산은 맛있다 / 김미숙 입선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산

먼 길을 돌아온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차려 놓은 밥상처럼

맛있는 성찬을 차려놓았다

오늘의 메뉴는 아름드리 굴참나무정식

밑동부터 우듬지까지 천천히

꼭꼭 씹어 음미한다

햇빛 소스가 뿌려진 이파리 샐러드는

아삭아삭 싱그러운 맛이다

후식으로 나온 꽃들

금낭화, 초롱꽃, 개별꽃, 바람꽃

향기롭고 달보드레한 맛이 난다

새소리, 물소리연주까지 곁들여진

눈과 코와 귀로 먹는 즐거운 만찬

다음엔 자작나무를 먹어볼까

아니, 매콤한 생강나무와 입안이 환한 산초나무도 괜찮을 거야


올 때마다 상차림이 달라지는 걸

눈 밝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산딸기, 머루, 다래, 으름

가끔씩 별미도 곁들여 주는

오감을 열어 놓아야 맛볼 수 있는 산,

신이 차려놓은 밥상이다

그 밥상 한상 받고 나면

한 그루 나무가 되고 풀꽃이 되어

누구나 푸른 실눈 뜨게 되는,

난, 산을 오를 때마다 온몸에 침이 고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