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김달진 창원문학상 / 박형권
우두커니 / 박형권
겨울 상추 좀 먹어야겠다고 지푸라기를 덮어 둔 산 아래 밭에
상추 어루만지러 어머니 가시고
빵 딸기우유 사서 뒤따라 어머니 밟으신 길 어루만지며 가는데
농부 하나 밭둑에 우두커니 서 있다
아무것도 없는 밭 하염없이 보고 있다
머리 위로 까치 지나가다 똥을 싸 갈겨도 혹시 가슴에 깻잎 심어두어서
까치 똥 반가이 거두는 것인지
피하지 않는다
무얼 보고 있는 것일까
누굴 기다리는 것일까
아무것도 없는 밭에서 서 있을 줄 알아야 농부인 것일까
내가 어머니에게 빵 우유 드리면서 손 한번 지그시 어루만지는 것처럼
그도 뭔가 어루만지고 있긴 한데
통 모르겠다
뭐 어쨌거나
달이 지구를 어루만지듯 우주가 허공을 어루만지듯
그것을 내가 볼 수 없듯이
뭘 어루만지고 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어루만지는 경지라면
나도 내 마음 속에 든 사람 꺼내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고
서 있고 싶다
그냥 멀찍이 서서 겨울 밭처럼 비워질 때까지 그 사람의 배경이 되는 것으로
나를 어루만지고 싶다
앞으로는
참을 수 없이 그대를 어루만지고 싶으면
어떤 길을 걷다가도 길 가운데 사뭇 서야겠다
상추 한 아름 받쳐 들고 내려오며 보니 마른 풀도 사철나무도 농협창고도
지그시 지그시 오래 서 있었다
우두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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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창원시김달진문학관은 제21회 김달진문학상 가운데 제6회 지역문학상에 김연동 <시간의 흔적>(고요아침·2010), 제3회 창원문학상에 박형권 <우두커니>(실천문학사·2009), 제5회 젊은시인상에 손택수 <나무의 수사학>(실천문학사·2010), 제5회 젊은 평론가상에 전도현 <시간의 형상>(서정시학사·2010)을 각각 선정해 수상자로 뽑았다고 22일 밝혔다.
이에 앞서 제21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중 시부문에는 홍신선 <우연을 점찍다>(문학과지성사·2009), 평론부문에는 홍용희 <현대시의 정신과 감각>(천년의 시작·2010)을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내달 4, 5일 이틀간 창원시 진해구시민회관 및 창원시김달진 문학관, 진해구 속천∼거제 간 배 위에서 열리는 제15회 김달진문학제 기념행사에서 상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