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2007 오월문학상-바오밥 나무
바오밥
구광렬
열대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소소한 정원에 뿌릴 내릴까싶다가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조신 눈을 감는 일
문드러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祭를 드리는 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새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그 씨앗,
찬바람 불고 눈 내리면 凍凍 얼어붙겠지만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이 한 만년쯤 될,
천년 그 어느 끝자락 쯔음
미이라 내장 속 과일 씨처럼 문득 싹을 틔워
다섯 장 흰 꽃잎 만국기처럼 흔들리고
죽은 쥐 모양의 열매 달랑, 고양이처럼 웃으면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
지구별의 한 복판을 뚫고
불쑥 반대편 이웃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
남반구북반구 대척점사람들
모두 한 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
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
팔촌, 십이촌 한 나무 한 가족을 이룰 것이니
지난날, 강 저 쪽을 망각해
도강의 꿈을 저버렸던 새 한 마리
뿌리보다 더 뿌리 같은 가지 위에 앉아
그 평화스러운 나눔을 지긋이 바라볼 때
그 즈음
이 정원엔 눈이 내려도 좋을 것이다
씨앗을 쥐었던 내 손바닥, 화석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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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제22회 오월문학상' 시 대상작으로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신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상식은 2007년8월24일 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