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문학상/오월문학상(전남대)

[스크랩] 2007 오월문학상-바오밥 나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2011. 2. 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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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

        구광렬


열대아프리카의 나무가

온대의 내 소소한 정원에 뿌릴 내릴까싶다가


신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진 나무

수명이 오천년이나 된다는 나무를 심는 일은

명주실 한 타래를 위해

끊어진 누에고치에 새삼 숨을 불어넣는 일과

깨져버린 꿈을 잇기 위해 조신 눈을 감는 일

문드러져 사라져버린 지문을 다시 새기고

흐릿해진 손금에 새로이 먹을 먹이는 일


무엇보다 뵌 적 없는 조상에게

엄숙히 祭를 드리는 일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잠자는 이마에 새는 빗방울처럼 뚝뚝, 떨어져

오늘 그 바오밥나무 씨앗을 묻기에 이른다


그 씨앗,

찬바람 불고 눈 내리면 凍凍 얼어붙겠지만

지구의 온난화로 여름이 한 만년쯤 될,

천년 그 어느 끝자락 쯔음

미이라 내장 속 과일 씨처럼 문득 싹을 틔워

다섯 장 흰 꽃잎 만국기처럼 흔들리고

죽은 쥐 모양의 열매 달랑, 고양이처럼 웃으면


가지보다 더 가지 닮은 나무의 뿌리는

지구별의 한 복판을 뚫고

불쑥 반대편 이웃정원의 나뭇가지로 솟아

남반구북반구 대척점사람들

모두 한 나무에서 움튼 열매를 나누고

손자의 손자들은 집 한 채 크기 둥치에

대문보다 더 큰 구멍을 내

팔촌, 십이촌 한 나무 한 가족을 이룰 것이니

지난날, 강 저 쪽을 망각해

도강의 꿈을 저버렸던 새 한 마리

뿌리보다 더 뿌리 같은 가지 위에 앉아

그 평화스러운 나눔을 지긋이 바라볼 때


그 즈음

이 정원엔 눈이 내려도 좋을 것이다

씨앗을 쥐었던 내 손바닥, 화석이 되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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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제22회 오월문학상' 시 대상작으로 아프리카 바오밥 나무의 전설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시적 발상과 신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상식은 2007년8월24일 열렸습니다>

출처 : 바람이 머무는 곳 마루
글쓴이 : 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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