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 김승원

 

 

1

 

젖줄을 토해낼 때마다 허공에 다리가 놓인다 격자무늬 그물 사이로 굵은 바람만 빠져나갈 뿐, 거미가 지나간 길은 축축하다

 

2

 

모두 마을을 떠난 후, 여뀌며 끈끈이주걱, 바랭이가 무성한 빈집엔 도둑고양이와 생쥐가 떠나고 없다 밤이면 달빛을 풀어 추녀와 젖은 굴뚝 사이 무당거미가 슬그머니 나와 집을 짓는다 연통의 온기가 식어가면서 거미들은 재빨리 세간과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 집의 새 가장이 된 것이다 이제 거미는 썩은 대들보 살집을 파고 들어가 이 집의 내력과 가훈을 갉아먹는다 이 집엔 원래 실직한 사내가 귀향해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사내가 어느 날 아무도 몰래 밤 기차를 타버리고 그때부터 허물어진 집터를 배경으로 거미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집단 농장을 이루고 산다

 

3

 

무너진 것들을 배경으로 투명한 젖줄 풀어 길을 내는 저 무당거미의 삶, 여전히 팽팽하고 가파르다

 

 

 

 

재단법인 남성문화재단(이사장 김장하)에서 출연해 운영하는 '1500만원 고료 진주신문 가을문예'의 여덟번째 수상자가 가려졌다. '가을문예운영위원회'(위원장 박노정)는 다음과 같은 심사 결과를 내놓았다.

 

'진주신문 가을문예'1995년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남성문화재단에서 상금을 비롯한 일체의 운영기금을 출연해 오고 있다. 시와 소설에 걸쳐 단 한 명만 당선작을 뽑아, 각각 500만원과 1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해 오고 있다.

 

'진주신문 가을문예'는 매년 가을에 공모를 마감, 심사를 거쳐 운영한다. 매년 시는 수백명이 수천편씩, 소설도 수십명이 수백편을 응모해 명실상부 전국 최고 수준을 인정받아 왔다.

 

당선작 "거미의 길은 젖어 있다" "신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능숙한 솜씨로 우리 시의 평균적 수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심사위원들로부터 "투고한 거개의 작품들은 오랜 숙련의 손길이 느껴질 만큼 안정적이며, 수준이 고르다"면서, "무엇보다 묘사가 적확하고 이미지 또한 선명하다. 말을 매만지는 솜씨로 보아 이미 기성 시인 아닌가 싶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올해 시 부문 '가을문예' 본심은 원구식(월간 <현대시> 발행인 겸 주간), 예심은 박노정(진주문인협회장) 정일근(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진영(8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씨가 했다.

 

김승원씨는 안양 평촌고를 나와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재학 중이다. 2002 '한국여성문학상' 시 부문에 입상하고, 2002 여수해양문학상 시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김씨는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뜻밖에 당선 소식을 받았다. 10월에 작품을 보내놓고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당선이라니 부끄럽고 설렌다", "이번 당선은 아름다운 글만 써온 저의 글쓰기에 대한 경고라 생각한다"고 당선소감을 말했다.

728x90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 김애란

 

 

엄마 지난 주말 백화점 쎄일 때 주문한 빨간색 원피스 어디 있어요? 글쎄 네 책꽂이에 보렴 책꽂이는 모름지기 삼단이 제일인데 네 지능은 너무 높아 내 가방엔 노란색 미니스커트 밖에 없어요 간밤에 성옥언니가 먹다 남긴 가스통 바슐라르는 내가 입기에 너무 무거운 걸요 미니스커트는 지나치게 가볍죠 큰언니 언니가 아끼는 주름치마 빌려줘 그거 철공소에 맡겼어 주름좀 피려고 한 시절 바람 잡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니 분식집은 오거리 분식집이 제일이야 거기 한쪽 말이 짧은 남자는 오늘도 화단 아래로 출근했어 작은 애야 그러지 말고 네 머리에서 좀 꺼내 입으렴 네 머리엔 문학 음악 설탕 쌀 없는 게 없쟎니 아니에요 엄마 제 서랍은 요즘 부재중이에요 이 나팔바지는 왜 이래요? 그거 너무 오래돼서 그렇다 자고로 사랑이란 건 오래 되면 빛이 바래거든 아니다 서글플 거 없다 세월이 흘렀거니 하면 그만인거야 얘 막내야 머리 좀 올려라 작은애 넌 손가락 좀 펴고 큰애는 얼굴 들어 안돼요 엄마 난 긴 문장이 좋아요 무릎이 안 펴져요 엄마 빨간색 메니큐어 좀 주세요 자꾸 발바닥이 갈라져요 모자를 써야겠어요 노란색 모자는 싫어요 엄마도 노란색은 싫어하쟎아요 우리 식구 모두 노란색이라면 모조리 토해내고 싶은 거잖아요 빨간색 원피스는 아무래도 모조리 토해내고 싶은 거쟎아요 빨간색 원피스는 아무래도 다른 집으로 잘못 배달되었나 봐요

 

햇살이 조명탄처럼 터지는 사월

나는 무도회 준비가 한창인 화단 옆을 지난다

개나리 가지가 나를 만진다

올해는 좀 색다른 옷을 입고 나올라나

혹 또 노란 미니스커트?

 

 

 

 

보란 듯이 걸었다

 

nefing.com

 

 

[당선소감]

 

개미 한 마리 길을 잃었는지 백지 위에서 긴 더듬이를 더듬거리며 횡설수설하는 내 혀처럼 황망히 움직이고 있다. 개미라는 움직이는 검은색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 연필을 질질 끌며 나는 지금껏 누군가를 따라다니고 있는 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지는 온통 검은 색 길로 덮인다. 그물처럼 깔린 이 검은 색 길에 놀란 걸까. 개미가 갑자기 꼼짝도 않는다. 그래, 아무데로나 뻗어가던 내 이 물컹거리는 사유도 자주 검은 돌덩이처럼 굳어지곤 했지. 자신이 뱉아낸 길이 백지 안에서만 맴돌고 있다는 사실에 환멸을 느낀 걸까. 개미가 곧장 가느다란 허리를 질질 끌며 백지 밖으로 사라진다.

 

개미처럼, 내가 따라다니고 있는 누군가가 무엇이 내 생 밖으로 사라지는 건 아닐까. 두려울 때가 있다. 내가 뱉아낸 길이 원점으로만 회귀하는 길은 아닌지 의심하면서 믿으면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불면의 밤을 지켜준 내 안의 밖의 사물들이 웃고 있다. 눈물을 질질 흘리며. 기쁘다. 이제 웃음을 질질 흘리며 살아도 될까.

 

늘 꽃밭을 가꾸시던 어머니, 내 시는 그 꽃밭에서 싹텄다는 걸 새삼 말씀드려야 하나. 꽃밭 옆에 지게를 세워두시던 아버지, 그래요 지게 가득 흙을 져 날라야지요. 이 작은 몸 속 태초로부터 그리움의 소용돌이를 휘돌리시는 어머니 아버지께 드릴 것이 부유하는 꿈밖에 없다.

끈질기게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두 아이들과 따뜻한 손으로 그 행복마저 재워주는 남편에게 고맙다.

 

무엇보다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진주신문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좋은 글로 보답할 것을 감히 약속 드리면서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난 학교 밖 아이

 

nefing.com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서른 네 분의 300여 작품 중 시선을 끌었던 작품은 박진성의 <론강의 별밤><빈집>, 김애란의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매미가 나를 읽는다>, 강예림의 <7월의 도남리><산문(山門)이 열리다>, 그리고 박선영의 <냉장고> 등 네 분의 작품이었다.

 

이중 <론강의 별밤><빈집>은 금년도 선자가 타 문예지 심사에서 세 번 이상 만났던 작품이고 또 당선의 영예도 얻었던 분이다. <7월의 도남리><산문(山門)이 열리다> 또한 3회 걸쳐 만났던 작품이다. 사적 재산이 아니라 이미 유통화된 공적 재산이란 점에서 쉽게 부담 없이 제외시킬 수 있어 좋았다.

 

결국 맨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냉장고><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 두 편이었다. 두 편 다 개성도 있고 자기 정체성도 뚜렷하며 현실을 보는 눈이나 이미지를 정박(定泊)하는 능력 또한 뛰어났다.

그러나 시는 무엇보다 정서반응의 언어고 지극히 사적이고 고백적인 언어란 점에서 <냉장고>의 경우는 그 주제 즉 곡즉전(曲卽全)의 삶을 정면으로 다루었다 해도 사물을 장악하는 표현의 묘미가 다소 뒤져 심미적 정서를 일으키는 쾌감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용하고 시끄러운 화단>은 시에 나오는 그대로 바슐라르의 이른바 물질적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 존재태를 꽃밭으로 가져가 본 것인데 감수성도 신선하고 표현의 능력도 결코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햇살이 조명탄처럼 터지는 사월, 무도회의 준비가 그런 경우에 해당된다. 조명탄처럼 터지는 새로운 언어와 도발정신은 늘 신인의 몫이다.

끝으로 당선자에게 드릴 말씀은 재능박덕이란 말이 있는데 요즘 시류를 타고있는 패러디나 재치놀음의 감각 유형에서 덫을 스스로 걷어낼 줄만 안다면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다.

 

한국시는 지금 두 가지 방향에서 크게 오도되어 본말이 전도되어 있음도 감안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나는 현대시가 노래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와 있다고 해도 결국 시는 노래일 수밖에 없고, 그 둘은 기발한 상상력에 의한 이미지로 선의 인지적 충격보다는 민족 정서를 회복하는 말가락이 시급하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욱 좋은 시를 기대하며 당선을 축하한다.

 

- 심사위원 송수권, 박노정 송희복 김언희

 

728x90

 

 

등꽃 / 김형미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 밀려온다

 

아아, 배고픈 욕정이여

 

퇴근길이면 술집으로 향한다 안주도 없이

술로 채워지는 위를 생각하기엔 나는 아직 젊다

이미 오래전부터 칫솔질을 할 때마다 구토가 일었으나

따지고 보면 고통이 나를 치유하고 있다

묵직하게 젖어오는 아랫도리

아릿한 아픔으로 부풀어오는 유두

담배 한 대로 삭히기엔 무척 오랫동안 굴풋했다*

빈 방에 누워 자위를 즐기는 일만큼 가슴 허한 일 또 있으랴

이불이 마른 땀으로 축축해질 때 쯤

세계가 내 안에서 밑동 째 뽑혀져 나가는 두려움

그러나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 욕정이라면

내 그리움은 절망인가

절망인가, 술집의 객들은 서서히 비워지고

출구 쪽으로부터 등꽃 향기 밀려와 다시 자리를 채운다

사아랑은 나의 행복 사아랑은 나의 운명

천박하지 않을 만큼만 젓가락 장단 맞추는 등꽃 향기

발끝이 박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빈 잔을 채운다 결국

세상의 낭떠러지는 매일같이 마주 대하는 술잔 속일지도

살고 싶은 욕망으로 끝내 귀가하고 마는,

 

잔인한 초여름 저녁

등꽃 향기에 젖어 젖어

 

* 굴풋하다 : 속이 헛헛한 듯하다.

 

 

 

오동꽃 피기 전

 

nefing.com

 

 

728x90

 

 

이 세대는 느리다 / 김남용

 

 

486 낡은 세대를 부팅한다

오늘은 느리다

바탕화면에 뜰 워드를 기다리는 동안

시상이 달아나다 쓰러진다.

고장나면 나의 생명도 시든다

많은 작품들이 한꺼번에 손상될 때

말없는 기계에 폭언하는 일은

죽은 친구에게 우정을 말하는 것처럼

싱거운 느림이다.

새로운 시상도 사라진다

결연히,

전원을 끈다

486 낡은 세대를 접는다

첨단 기술이 녹슬지 않은 노트북,

그러나 이미 이 세대는 느리다

586은 돼야신제품이란 있는 것일까?

 

폐지더미에 깔려 있던 색바랜

원고지를 빼내오고

중학교 시절 기초 언어를 연습하던

만년필을 꺼내 잉크를 채운다

잠들었던 선들이 일어나고

맑은 점들이 알알이 번진다

지금까지 이들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두려웠고돌아볼

거울이라도 있었던가?

 

새로운 것을 바란다면 잊고 있던

기억의 서랍을 열어 뒤적여 보라

 

486세대를 서랍에 넣는다

 

 

 

728x90

 

 

자정의 비 / 김영산

 

 

순간, 골목 어귀에서 어둠이 비틀거린다 플라타너스와 체르니 사이 흩뿌리는 가랑비에 자정의 목덜미가 젖는다 푸른 선풍기 느리게 돌고 있는 주점은 칠부쯤 눈을 감았다 빗물 낯바닥에 어리는 불빛 아무리 밟아 뭉개도 꺼지지 않는다 우우 데모하여 바람의 꽁무니 쫓아다니는 적막이여 국제건강약국 낡은 입간판에 붐비는 부식의 시간이여 벼룩신문 어느 광고에 중고 희망 매물은 나온 게 없을까 가슴에 꽂힌 향기로운 절망도 시들어 버린 지 오래다 수천 갈래 생의 교차로에 녹색 신호등 플러그가 빠져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막차 보내고 난 장의자에 길게 드러 눕는다

 

 

 

벽화

 

nefing.com

 

728x90

 

 

수인(囚人)번호 5705, 그녀는 애벌레를 키운다 / 유영금

 

 

그녀는 감옥 안에서 노래한다

노래하는 자유만 있을 뿐이다

노래는 자폐(自斃)를 살해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

간수의 눈빛이 그녀를 옥죄일수록 흑()

노래가 애벌레처럼 쏟아져 나온다

다른 수인(囚人)들도 노래를 부르며 견딜 것이다

[견딤]보다 몸서리치게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아름다움의 끝에 닿으면 노래에게서 버려질 것이다

노래로부터 버려지고 싶은 그녀를 위해

누더기같은 수인(囚人)번호를 가위로 자른다

자르는 순간 다시 엉겨 붙는 속성을 지닌

더러운 번호, 징그럽게 알을 깐다, 오글거린다

그녀는 알았다, 감옥 안의 노래가 감옥 밖의

노래보다 살인적으로 자유롭다는 걸,

 

 

 

봄날 불지르다

 

nefing.com

 

 

 

728x90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 이영수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맑은 날과 희뿌연 날들의 차이는 엄청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차이가 그렇듯 안경은 그 위험수위를 꼼꼼하게 따져 혼돈으로부터 날 구해 준다 내가 안경을 쓰면 안개들이 걷히고 아프리카 코끼리 들소떼가 막 몰려온다 안개가 몰려와 코끼리도 잡아먹고 들소떼도 잡아먹고 아프리카도 잡아먹힌다 내안경과도 흡사한 대식가의 입나도 세상을 먹고 있는 거지 걸신들려

 

안경을 벗으면 세상들이 안개처럼 빠져나간다 건물들이 흔들리고 서 있는 길들마저 꺼져 도시에는 늙은 바람만 몰려다닌다 내가 통째로 삼킨 아프리카 코끼리가 안경알을 깨고 정글 속으로 달아난다 핏줄을 따라 들소떼가 빠져나가자 서 있기가 힘들다 나 흔들리고 있는거니 저 보기 싫은 빌딩들의 정글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니? 식인종들의 종친회의는 누가 해골지팡이를 집어던져 난장판이 되었지 미친 사람들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어느파가 몰표를 던졌니 그 무식한 족장들의 추격대가 날 발견했을까 안개의 정글은 흰 나무들만 돋보기 안경을 쓴채 나뭇잎을 읽고 있다

 

안경을 벗으니 배가 고프다 안경을 쓸까 말까

 

 

 

나는 안경을 벗었다 썼다 한다

 

nefing.com

 

 

 

 

 

728x90

 

 

별어곡[別於曲] 1 / 김일남

 

 

그대가 깃들고도 눈 맞는 가문비나무 숲처럼 오래오래 쓸쓸하다 천지엔 아득한 눈발을 몰고 길 재촉하는 바람이 언 손 부벼 길들을 부르다 깊은 산울음에 몸 숨기고 너와집집 한 채 눈보라에 떨고 있다

 

그리워할수록 폭설 그치지 않는 내 가만한 그대, 겨운 내가 뚜욱뚝 부러져 실한 가지 한 짐 가득지고 어두운 눈길을 비츨거리며 그대 부를까 불러볼까 무장무장 깊은 산울음 가문비나무 나무 사이로 산은 산을 불러 추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지고 그대 부르던 오랜 내 기다림은 눈과 눈들의 저 한사코 퍼붓는 눈발로 나를 가둔다 바라보면 그대 탁탁 튀는 불꽃 너머로 사위고 어지러운 발자국 함부로 남긴 채 쓰러진 나를 가만히 들추면 아아 잉걸 속, 다시 눈 뜨는 그대

 

그대가 깃들고도 눈 맞는 가문비나무 숲처럼 오래오래 쓸쓸한 것은 내 기다림에 익숙한 숲길과 그 기다림 속에 어느새 지어 버린 너와집 집 한 채 그대에게 내건 등불을 그대가 모르기 때문이다 가문비나무 나무숲 오오 너와집 내 그리움에 갖힌 오오랜 그대, 그리워할수록 퍼붓는 눈과 눈들의 희디흰 아우성이, 그리움이 지은 집 한 채 허물듯이 허물듯이

 

내 그리움에 갖힌 슬픈 그대

내 그리움이 울어버린 눈보라

눈덮힌 깊은 산 가문비나무숲

내가 지은 너와집

 

 

 

 

주머니 속의 행복

 

nefing.com

 

 

진주신문의 95년도 가을문예공모 당선자로 시부문에 <別於曲 1>을 낸 김일남씨(32), 소설부문에 <언어의 형식>을 응모한 문재호씨(28)가 선정됐다.[연합뉴스]

 

728x90

 

 

붉은빛 / 손택수

 

 

뽈찜을 먹습니다 대구는 볼을 부비며

사랑을 나누는 버릇이 있다지요

 

한때 저도 그러하였습니다 이쁜 것이 보이면 먼저

볼을 부비고 싶었지요

볼에 불을 일으키고 싶었지요

 

볼이 떨어져나갈 듯 추운 날이었어요

大口처럼 벌어진 진해만과 가덕만 사이

한류와 난류도 볼을 부비면서

살이 오르는 곳

 

동백처럼 탱탱 언 볼에 감아드린

목도리도 제 살갗이었습니다

동해 시린 물을 맞던 남해 물결이었습니다

 

대구 알처럼 붉은빛이

당신 볼에도 여전합니까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nefing.com

 

 

시집 붉은 빛이 여전합니까를 펴낸 손택수(사진) 시인이 2회 조태일 문학상수상자로 선정됐다.

 

8일 전남 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공모와 추천을 통해 접수된 132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해 손 시인을 수상자로 선정, 상패와 상금 2천만원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올해로 2회째는 맞는 조태일 문학상70~80년대 어두운 시대에 맞서며 강건한 목소리를 낸 저항시인이자, 자연과 하나된 순정한 정서를 아름답게 노래한 죽형(竹兄) 조태일(1941~1999) 시인을 기리는 문학상이다. 이는 곡성 출신 조태일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기리는 것은 물론 한국문학의 새로운 성과를 보여준 시인을 발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올해 심사위원회는 손 시인의 시는 독자의 가슴에 부딪히는 서정을 갖추고 있고, 자신의 상처에 엄살을 피우거나 상처를 언어의 기교로 구축하려는 지적인 유희에 빠지지 않는다이 시집은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기록이면서도 이 사회와 부딪치는 저항을 그치지 않는 서정시로서 위의를 보여준다라는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자로 선정된 손택수 시인은 대지로 돌아간 죽형 조태일 시인의 시에서 대나무의 곧음과 탄력을 알게 됐다더딘 걸음을 응원해준 심사위원, 기념사업회 관계자분들 그리고 시인을 사랑하는 곡성 군민들께 머리 숙인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한편, 2회 조태일 문학상 시상식은 시상식은 오는 12일 오후 3시 곡성 조태일 시문학기념관에서 열린다.

 

'국내 문학상 > 조태일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회 조태일문학상 / 이대흠  (0) 2021.07.10
728x90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 이대흠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이마에서 북천의 맑은 물이 출렁거린다

그 무엇도 미워하는 법을 모르기에

당신은 사랑만 하고

아파하지 않는다

 

당신의 말은 향기로 시작되어

아주 작은 씨앗으로 사라진다

 

누군가 북천으로 가는 길을 물으면

당신은 그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거기 이미 출렁거리는 북천이 있다며

먼 하늘을 보듯이 당신은 물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는 순간 그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 풍덩 빠진다

 

북천은 걸어서 가거나

헤엄쳐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당신 눈동자를 거치면

바로 갈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고

걷거나 헤엄을 치다가

되돌아나온다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

 

nefing.com

 

 

곡성군과 ()죽형조태일시인기념사업회가 주최하는 1회 조태일문학상 시상식 및 2019 죽형 조태일 문학축전이 오는 7일 오후 3시 곡성레저문화센터에서 열린다.

 

죽형 조태일 시인은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선박>이 당선된 이래 서슬 퍼런 언어로 정치모순과 사회현실에 온몸으로 맞선 저항시인이었다. 자연과의 교감을 빼어난 서정시로 보여준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1941~1999) 20주기를 맞아 시인을 기리는 뜻깊은 행사가 마련된다.

 

이번 행사는 조태일 시인 타계 20주기를 맞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숨결을을 주제로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먼저 시인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시 낭송이 이어질 예정이다. 조태일 시인이 발행하던 <시인>지로 등단한 권혁소 시인은 무뚝뚝한 사나이라는 시를 통해 불의에 맞섰던 조태일 시인을 추억한다. 강대선, 김숙희, 박관서, 석연경, 주명숙 시인도 시낭송을 통해 조태일 시인을 떠올린다. 또한 곡성의 어린이들도 조태일 시인의 시 <임진강가에서>를 낭송할 예정이다.

 

70년대부터 민중문학 진영을 이끌어온 염무웅 평론가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면서도 개성적인 목소리가 확고한 시를 썼던 조태일 시인의 시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염 씨는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서 평론 부문 당선자로 조태일 시인과는 신춘문예 동기다.

 

지역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공연도 마련된다. ‘씨쏘뮤지컬컴퍼니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뮤지컬 음악을 들려줄 예정이다. ‘월드뮤직그룹 루트머지는 전통음악 산조에 자유스러운 형식을 접목한 퓨전음악을 선보인다.

 

또한 행사장에서는 그리운 쪽으로 고개를이라는 이름으로 서양화가 한희원 씨의 시화전도 펼쳐진다. 조태일 시인의 대표시를 비롯해 박남준 시인 등 여러 시인들의 추모시들이 그림으로 재탄생한다. 여기에 천년고찰 태안사 문학기행, 세미나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시문학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 마련된다.

 

1회 조태일문학상 수상자로는 시집 <당신은 북천에서 온 사람>을 펴낸 이대흠 시인이 선정돼어 이 날 시상식을 진행한다. 심사위원들은(신경림 시인, 염무웅 평론가, 최두석 시인)남도의 지역말을 맛깔나게 쓰는 데 오랫동안 공들인 시인인데 이번 시집의 경우 그 방언의 구사가 더욱 활달하고도 적실하다. 한국시의 융융한 흐름을 염원하던 조태일 시인이 살아계셔서 이 시집을 읽더라도 반겼을 것 같다.”라며 심사평을 밝혔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2천만 원이 수여된다.

 

한편 문학축전에 앞서 이날 1시 곡성레저문화센터 대황홀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지향의 시문학>을 주제로통일을 준비하는 젊은작가 심포지엄이 열린다. 심포지엄에서는 분단 문제에 관심을 가진 조태일 시인의 시를 조명하고, 통일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할 예정이다. 동의대 하상일 교수가 분단극복과 통일지향의 재일조선인 시문학을 주제로 기조 발제를 하고, ‘조태일 시의 통일 담론적 고찰’(이동순 시인, 문학박사, 충남 아산), 조태일의 글쓰기와 통일적 상상력(정민구 전남대 BK연구교수), ‘조기천의 장편서사시 白頭山의 창작토대’(김낙현 중앙대 교수)를 주제로 한 발제가 이어진다.

 

'국내 문학상 > 조태일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회 조태일문학상 / 손택수  (0) 2021.07.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