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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 김유선

 

 

그녀는, 자기는 숫자를 세지 않아서

혼자 있으면 빈집 지킨다고 한다

따르릉 전화가 오면

아무도 없다고 하니

그녀는 없는 셈,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을 지었지만

집이 비어 있었으니

그녀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된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비어가는 제 몸

비어가는 자궁

비어가는 유방처럼

없어져가는 자신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망연히 쳐다보는 그녀.

 

 

 

은유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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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樂) / 황원익

털북숭이 엉덩이가 동네 순찰하다
긴장(緊張)의 점 하나 찍더니
신호를 낸다
점점 커지는 선홍색 창구(窓口)
바짝 치켜든 꼬리
느낌표!

제자리서 맴돌다 엉거주춤
자세 잡은 엉덩이의 절구질
찌릿찌릿 몸 트림
뚝딱 두 점의 안도감(安堵感)

엉덩이는 산책 나올 때보다
더 신나게 씰룩 이고
희열에 찬 목소린
괜한 아이들에게
만만하다






.........................................

심사평

제1회 천상병문학제 백일장 일반부 장원으로 황원익 님의 '낙(樂)'을 뽑는다.
지난 2003년 3월 2일부터 4월 10일까지 한국시사랑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웹진 시사문단으로 모집한 천상병 문학제에서는 일반부와 고등부 백일장과
아울러 '천상병, 천왕봉'이란 시제로 삼행시를 공모하였다.
총 응모편수 200여편이 넘는 열화와 같은 성원에 감사드리며,
이처럼 많은 작품속에 옥석을 가리는 일은 실로 어려운 작업이었음을 밝힌다.
또한 작품에 있어 그 완성도가 높았음에 천상병 시인에게 누가 되지 않았음을 자축한다.
황원익 님은 오랜 습작 활동을 통한 현대시의 다양한 기법을 잘 소화하고 있는 작가로 추정된다.
은유나 비유를 통하여 세상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려는 작가의 마음이
시에 의지적으로 녹아있고 이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 사상과 일맥상통한다 하겠다.
작가는 이 시를 통하여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상살이를 정화하고,
독자들을 기쁨과 희망으로 유도해 내고 있다.
표현이 간결하면서도 의태적 시어들을 사용하여 싯적 경쾌감을 주고
무리없는 흐름과 여성스러우리만치 부드러운 필치로 정신적 세계를
시적 프리즘으로 여과하여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을 계몽하고 있기에 장원으로 뽑는다.

 

강희근시인(경상대교수).2003.5


..............................................

당선 소감

 

황원익(1965~.서울)
시사랑사람들동인시인
미디어 다음 제1회 온라인 시사랑사람들 문학상 수상(2003)

진솔하고 진솔함이, 사랑하고 사랑함이, 자신을 돌아볼 때나,
삼라만상을 대할 때나 늘 견지되어지길 소망합니다
먼저, 장원으로 제 작품을 천거해 주신 심사위원 제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열심히 하라는 편달로 여겨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아울러 저를 시의 세계로 인도해 주신,이민영시인님께
이 자리를 빌어 삼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시사랑으로 연하도록 이끌어주신 심사위원님을 비롯한 천상병님을 기리는
모든 분들께 재차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이만
당선 소감문을 가름하고자 합니다.2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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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사랑을 위하여 / 문정희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삶은 순전히 불꽃인지도 모르겠다

시가 어렵다고 하지만

가는 곳마다 시인이 있고

세상이 메말랐다고 하는데도

유쾌한 사랑도 의외로 많다

시는 언제나 천 도의 불에 연도된 칼이어야 할까?

사랑도 그렇게 깊은 것일까?

손톱이 빠지도록 파보았지만

나는 한번도 그 수심을 보지 못했다

시 속에는 꽝꽝한 상처뿐이었고

사랑에도 독이 있어

한철 후면 어김없이

까맣게 시든 꽃만 거기 있었다

나도 이제 농담처럼

가볍게 사랑을 보내고 싶다

대장간에서 만드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불꽃이다



 

오라, 거짓 사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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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아, 너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어제 그 모습은 무엇이었지?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붉은 입술과 향기
오늘은 모두 사라지고 없구나
꽃아, 그래도 또 오너라
거짓 사랑아

2001년 가을
문정희

 

 

 

한국시사랑문인협회(회장 손근호)는 21일 제1회 천상병 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문정희씨(56·동국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선정했다.

수상작은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소월시문학상 작품집’에 수록된 시 10편이다.

1969년 등단한 문씨는 시집 ‘찔레’ ‘아우내의 새’ ‘남자를 위하여’를 냈으며 현대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천상병문학제가 열리는 5월4일 오전 11시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귀천시비’ 앞에서 열린다.

 

'국내 문학상 > 천상병귀천문학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0) 202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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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1 / 문효치

 

 

저 가슴
얼마나 날카로운 정으로
쪼아대기에

얼마나 센 칼로
썰어내기에

달그늘 짙어지는
밤이면 밤마다

어흐흥 어흐흥
울어대는가

어루만지던 산도
돌아서서 눈물 훔친다

 

 

바위 가라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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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는 지난 22일 제9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문효치 시인을 결정 및 발표했다고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바위 가라사대”이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설주문학상은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시와 시조 문학의 발전을 도모하여 시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설주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1932년 도쿄에서 시 “고소”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이후에는 1957년 전집형식으로 된 문고판형 “설주문학”을 발표하기도 했다.

올해 수상자인 문효치 시인은 1966년 서울신문 및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데뷔했으며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국제펜한국본부 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정지용문학상과 한국시협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간 시집 “무령왕의 나무새”, “왕인의 수염”, “별박이자나방” 등을 펴냈으며 “나도 바람꽃”과 같은 시조집, 그리고 두 권의 산문집을 발표하였다. 지금은 계간 “미네르바”의 대표를 맡고 있다.

문효치 시인의 “바위 가라사대”는 지난 1월 발간된 시집으로, “바위”라는 제목을 가진 70편의 시를 실었다. 문효치 시인은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말을 통해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속에 쟁여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저리도 무거울까. 함묵은 그의 말이다. 무표정 또한 그의 언어다. 함묵과 무표정의 발언을 채록하고자 한다.”며 시집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한국문인협회 심사위원 일동은 뉴스페이퍼의 취재에서 “우리 심사위원들은 장시간 심도있는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 의견을 모아 문효치 시인의 시집 ”바위 가라사대“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며 “이 시집에는 간결하고 처연한 서정성과 한의 빛이 담담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슬픔은 따뜻하게 사람과 시대를 안고 사는 시인의 일상적인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함묵과 무표정의 ”바위“연작시 70편은 소통과 사랑으로 다가온다.”는 심사평을 전했다.

최근 각종 협회와 출판사에서 직접 주관하는 문학상을 자사 직원이나 협회 내 이사에게 시상하여 논란이 되는 가운데 한국문인협회 전 이사장인 문효치 시인의 수상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취암장학재단이 후원하는 이설주문학상은 수상자에게 2천만 원의 상금을 수여 한다. 제9회 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4월 19일 오후 3시 문학의 집.서울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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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 이상범

- 녹차를 들며

 

 

김이 찻잔을 돌며

 

물안개를 거둔다

 

혀끝에 와 소멸되는

 

그 기운 삶을 뒤집으며

 

내생에 보일 얼굴 하나

 

맑고 밝게 떠낸다.

 

 

 

 

녹차를 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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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는 3월 12일 제8회 이설주(李雪舟)문학상 수상자로 이상범 시조시인(시집 『綠茶를 들며』)을 결정 발표했다.

 

이 문학상은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시와 시조문학의 발전 도모, 시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되었다.

 

이상범 시조시인은 1935년 충청북도 진천 출생으로 1963년『시조문학』 3회 추천 완료, 1964년 신인예술상 수석상 수상,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나왔다.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회장, 한국시조사 대표, 포석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정운시조문학상, 한국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육당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고산문학상, 바움(숲)문학상, 유신작품상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시집 『별』『신전의 가을』『화엄벌판』(한국대표명시선100) 『하늘색 점등인』『녹차를 들며』등 26권이 있다.

 

이 상은 (사)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이 후원한다. 

 

상금은 2천만 원. 4월 16일 오후 5시 문학의 집·서울에서 시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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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갓집 / 김시철

 

 

 

 

 

 

 

 

 

 

 

 

 

 

 

 

 

김시철 시인(사진)이 제7회 이설주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한국문인협회는 제7회 이설주 문학상 수상자로 김시철 시인(시집: 나의 외갓집)을 선정했다고 13일 전했다.

 

김시철 시인은 1930년 함경북도 성진 태생으로 1·4후퇴 때 월남해 잡지 '개척', '부부' 기자로 활동했고, 1956년 시집 '능금'을 출간해 등단했다.

 

한국자유문학자협회 회원이자 한국시인협회 창립 회원이며 월간문학잡지 '자유문학' 편집장을 거쳐 대한출판문화협회 홍보부장을 역임했다. 제14회 한국문학상(1977), 한국문화예술상 대상(1989), 제41회 서울시문화상(문학부문ㆍ1992), 제12회 청마문학상(2012) 등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한국본부 부회장, 국제펜한국본부 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시집 '생활', '친구의 눈물', '남의 밥그릇', '나는 누구인가'과 시집 외에 '격랑과 낭만', '김시철이 만난 그때 그 사람들' 등이 있다. 현재 강원도 평창에서 하서문학회 및 평창문예대학을 운영하며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설주 문학상은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시문학의 발전 도모와 시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됐으며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이 후원한다. 상금은 2000만원이다. 시상식은 내달 18일 오후 5시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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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그 빛 그 향기 /  추은희

 

 

큰 대자로 누워

양 손을 뻗는다

바람이 온 몸을 휘감는다

 

소리 죽여 귀를 모으면

온갖 빛깔

온갖 소리

함께 어우러져 춤춘다.

 

형태도 없는 것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바람, 그 바람의 심장은 따뜻하더라

 

바람은 그렇게 그렇게

빈 곳을 흘러가다

되돌아오고

발자국 죽여 흩어지고 모으고

 

그리고

이렇게 따뜻한 것이라고

조용히 속삭여 주더라

 

산다는 것

바람같은 것이라고

때로는 사라져 도망가서

형태도 없는 것이라고

 

 

 

 

제6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추은희(87) 시인이 선정됐다고 이 상을 주관하는 한국문인협회가 18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바람소리 그 빛 그 향기'.

 

추 시인은 현재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여성문학인회, 숙명문인회, 한국시인협회 고문으로 있다.

 

이 문학상은 이설주(1908∼2001) 시인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이 후원한다.

 

상금은 2천만원. 시상식은 다음 달 11일 오후 5시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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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숲 / 김후란

― 자연 속으로

 

 

나는 파도의 옷자락을 끌고

이 숲으로 왔다

변화를 기다리는 생명들이 있었다

바위조차 숨죽이고 기다렸다

 

푸른 잎새들 이마에

천국의 새들이 모여들고

들꽃을 피우려고 비를 기다리던 산자락에

바다가 입을 맞춘다

 

겹겹 옷 입은 산 황홀하여라

비밀의 숲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어린 나무들과

키 큰 나무들의 숨소리에

저 소리꾼의 진양조 가락이 울린다

 

눈부셔라

언제나 새롭게 태어나면서

아침햇살에 비늘 번득이는 바다처럼

산은 살아 있다 청렬하고 푸근하다

 

신(神)이 만든 숲이다 나를 끌어안는다

나는 영혼의 긴 그림자를 끌고

천천히 걸어간다.

 

 

 

비밀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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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 교동초등학교, 부산사범학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 다녔으며 한국일보 기자, 부산일보 논설위원 등 언론계에서 일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원장을 지냈으며, 1960년 '현대문학'으로 문단에 등단, 현대문학상, 월탄문학상과 서울시문화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을 지냈다. 현재 '자연을 사랑하는 문학의 집, 서울' 이사장, '생명의 숲 국문운동' 이사장, '한국문학관협회' 회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는 시집 『장도와 장미』 『음계』 『어떤 파도』 『눈의 나라 시민이 되어』 『숲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 시각에』 『서울의 새벽』 『우수의 바람』 『시인의 가슴에 심은 나무는』 『따뜻한 가족』 『새벽, 창을 열다』 서사시집 『세종대왕』 등 12권이 있으며, 김후란시전집 『사람 사는 세상에』 , 시선집 『오늘을 위한 노래』 『노트북 연서』 『존재의 빛』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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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를 훔치다 / 이근배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추사의 벼루를 보았다

댓잎인가 고사리 잎인가

화석무늬가 들어 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남포 오석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다듬고 갈아 군자의 보배로다등

깨알 같은 48자 명문이 새겨 있는

추사가 먹을 갈아 시문을 짓고

행예를 쓰던 유품이 아니라면

한눈에 들어올 것이 없는

그 돌덩이가 내 눈을 얼리고

내 숨을 멎게 한다

어느새 나는 쇠망치로도 깨지 못할

유리 장을 부수고 벼루를 슬쩍?

그랬으면 오죽 좋으련만

못나게도 내 안의 도둑은 오금이 저린다

박물관을 나서는데

-게 섰거라!

그 작고 검은 돌덩이가 와락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추사를 훔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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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조그룹은 사조산업과 사조그룹 취암장학재단(이사장 주진우)이 후원하는 제4회 ‘이설주(李雪舟) 문학상’ 수상자로 이근배 시조시인(시집 :『추사를 훔치다』)을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올해 4회째를 맞는 ‘이설주 문학상’은 사조그룹이 후원하는 국내 대표 시 문학 시상식 중 하나로,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여 문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 시키기 위해 재정됐습니다.

수상자 이근배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1961년 <조선일보> <서울신문>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번 ‘이설주 문학상’의 심사위원은 김제현 시조시인, 권영민 문학평론가, 장경렬 문학평론가가 맡았으며, 상금은 2천만 원입니다.

사조그룹 취암장학재단(이사장 주진우)은 ‘이설주 문학상’ 외에도 한국수산과학회 학술상, 한국정치학회 인재저술상 등 매년 인문 및 기초과학 분야 발전을 위한 후원 사업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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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라국의 목걸이 / 문덕수

 

 

안라국의 궁터 가야 도항리 33호 고분에서

2천년이나 잠자던 목걸이가 지렁이처럼 눈드고 나왔다

불그레한 마노는 왕후의 목덜미빛이요

토기 굽다리에 뜨거운 무늬를 뚫은 불꽃이다

파란 유리구슬은 안라국 어린 공ㅈ님 눈빛이요

왕궁 지붕마루에 내려와 앉은 하늘이요

여덟 나라의 침공을 물리친 장수말이 마신 물이다

저 자잘한 비취빛 수정알의 바늘귀에는

지금도 후기 가야 여러 나라 맹주의 숨길이 흐른다

아라가야 궁터 도항리 33호 고분에서

2천년이나 꿈구닥 눈을 뜬 저 목걸이는

지리산 숲속에서 구불구불 흘러 내려 안라땅을 적시는 남강이요

한티 재를 넘어 마산 남쪽 바다로 통하는 바람길이요

여항산 멧부리 남동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다

아라가야를 지금도 두르고 있는 무성한 성벽이다

 

 

 

 

문덕수 시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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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는 제3회 이설주(李雪舟)문학상 수상자로 문덕수 시인(시집 '아라의 목걸이')을 선정했다고 3일 발표했다. 이 상은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됐다.

문시인은 1928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5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홍익대학교 사범대학장, 교육대학원장,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 고문,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다. 서울시문화상(1997), 예술원상(2002), 문화훈장(은관)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황홀’ ‘문덕수시전집’‘ 아라의 목걸이’등이 있다.

심사는 허영자 시인, 권영민 문학평론가, 최동호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상금 2천만 원인 이 상은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식회사가 후원한다. 시상식은 4월 20일 오후 5시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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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무엇입니까 / 정완영

 

 

세월이 무엇입니까

젖은 모래성입니까

 

아니면 손사래로

빠져나간 꿈입니까

 

이 달도

마지막 하루가

촛불처럼 다 탑니다.

 

하루가면 하루만큼의

이승은 멀어지고

 

어제 죽어 묻힌 벗이나

구름결을 생각하며

 

뻐꾸기

울음소리가

산빛 엮어 내립니다.

 

시름이 가슴에 고이면

소(沼)가 된다 하옵기에

 

산다는 이치 하나로

한 세월을 흘러놓고

 

망초꽃

흩어진 사연을

강기슭에 줍습니다.

 

 

 

 

세월이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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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는 제2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정완영 시조시인(시조집 '세월이 무엇입니까'와'시암의 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이 상은 이설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 현대 시문학과 시조문학의 발전을 도모하고 문인들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제정됐다.

정완영 시조시인은 1919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1960년 국제신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정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고향인 김천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중앙일보 시조대상’ ‘가람시조문학상’ ‘대상문학상’ ’만해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저서로는 시조집 <구름산방> <내 손녀 연정에게> <세월이 무엇입니까> 등과 수필집 <나비야 청산가자> 등 다수가 있다.

이번 상은 이근배(시조시인), 허영자(시인), 권영민(문학평론가)이 심사위원을 맡아 심사했다. 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하고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식회사가 후원한다. 상금은 2천만 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4월 19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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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의 강을 건너 / 강창민

-공자여!

 

이 강에 이르기까지 오랜 자책과 불면

왜곡한 그대의 도덕으로

늘 후회하며 잠들곤 했다

나를 톺아갈수록

허물어지고 부서지는

부질없던 공허!

내 인식을 감싸던

이 회상을 벗기기 위한

선과 노래와 술

그것도 포승이 되어

칠십 인생을 옭아매었다

그렇구나!

날마다 걷고 달려

몸이 먼저 부서지고

허덕거리는 내 인식이

비로소 참회하기 시작한다

 

 

 

성찰의 강을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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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그 소가 그 소!

 

혜산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는 순간혜산 선생님께 이 소식을 전하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칠십 년대 초반강의가 끝나면 선생님 연구실로 달려가 한 주일 동안 쓴 시를 내밀고말없이 서 있다가 돌아오던 그때 생각도 났습니다방학이면 쓴 시를 싸들고 연희동 선생님 댁으로 찾아뵙던 그 시절도 생각납니다아직도 제게는 연희동의 그 집에는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함께 계십니다많은 사람들이 이사 가거나 세상을 떠나가면서 그들의 자취가 지워집니다그러나 제게 연희동의 선생님 댁은 아직도 별자리처럼 뚜렷합니다.

 

혜산 선생님께서는 저를 시인으로 이끌어주시고평생을 시인의 삶을 살게 해주셨습니다시를 통해 세상을 보고시를 통해 저 자신을 성찰하게 해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추천사에 시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소에 비유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추석날 새벽그 말씀의 속뜻을 비로소 받아들였습니다제가 평생 시라는 굴레와 세상과 저 자신에 대한 무거운 짐을 멍에로 지고 살아온 것이 보였습니다그랬습니다시는 굴레였고시인은 멍에였습니다제가 시를 대하는 태도가 소가 밭을 갈고 짐을 져 나르는 듯하다는 것은 따뜻한 배려였습니다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그래서 ‘시인’이라는 멍에는 때로 팽개칠 수 있었으나 ‘시’라는 굴레는 코뚜레처럼 꿰고 살았습니다.

 

오늘 새벽문득 보았습니다.

 

시인은 바람 같이 자유롭고시는 바람이 언제나 마음껏 떠도는 너른 빛의 천지라는아직도 그런 돌개바람 같은 생각을 하는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그건 치기로 가득 찬 젊은 날시도 인생도 모르던 시절에 했던 허사처럼 치졸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동안 아무런 성찰도 없이 지내온 것들누가 씌우지도 않은 시인의 멍에를 스스로 메고누가 꿰지도 않은 굴레를 스스로 꿰고 살아온 제 삶을 보았습니다.

 

시를 쓸 때나 강의실에서 저는시인은 노래처럼 가볍고시는 찬란한 깨우침이라고 말했습니다그러나 제게 시나 시인은 고통이고 부끄러움이었을 뿐이었습니다맑은 몸으로 새벽에 깨어나 저 자신을 바라보거나술이나 일에 취해 밤을 지새울 적에도 언제나 그 모멸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그게 바로 소의 모습이었습니다.

 

소는 날마다 밭을 갈고무거운 짐을 지고 자갈밭이나 가파른 언덕길을 오릅니다.날카로운 뿔이 있지만 그 뿔은 제 곁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거부할 적에 휘두를 뿐이었습니다그런 저를 소에 비유하셨습니다그 비유에는제가 스스로 세상의 짐을 졌듯이 언제나 스스로 부릴 수 있고제 스스로 굴레를 꿰었듯이 제 스스로 벗어버릴 수 있다는 눈물겨운 암시가 숨어 있었습니다.

 

시가문학이 발견이고 깨달음이라고 늘 말해 왔던 그것을, 오늘 아침 새롭게 알았습니다그 소가 그 소였다는 것을!

 

이런 깨달음을 얻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안성시장님과 안성문학회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조남철 위원장유성호 교수를 비롯한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그리고 정현기최유찬 교수와 신승철 시인을 위시한 선후학들과 여러 친지들과 연변의 김병민 교수와 여러분 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누나와 시원상원은주한테도도반들께도 이 즐거움을 보냅니다.

 

아직중요한 인사가 남았습니다.

먼저 떠난 아내 강경화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립니다이 시집의 많은 부분을 그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으로 채웠습니다그러나 깨우치지 못하면 다음 생에 만나도 서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그 애잔함에더 이상 슬퍼하지 않습니다.

 

현기 선생님 감사합니다.

아직 못다 한 여러 인사는 제 가슴 속에 새기겠습니다.

 

 

 

작은 풀꽃처럼 주저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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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15회 박두진문학상 심사는, 예심에서 추천된 올라온 후보 여덟 분을 대상으로 하여, 그분들이 최근에 상재한 시집을 차근차근 윤독해가면서 진행되었다. 이분들은 우리 시단에서 모두 남다른 위상을 점하고 있는 중진 및 중견 시인들인지라 미학적 성취의 높고 낮음에 차이를 두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매우 깊이 있고 탄탄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시인들을 만나보게 된 것이다. 오랜 논의 끝에 심사위원들은 강창민 시인의 최근 성취가 박두진문학상의 기율을 충족하고 있다고 합의를 이루었다. 곧 강창민 시인의 시편들이 투명하고 심미적인 전언과 함께 언어적 친화력과 보편적 인간 본질에 관한 사유를 결합하였다고 보았다. 결국 심사위원들은 이러한 강창민 시인의 언어와 사유가 혜산 박두진 선생이 추구해온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투시의 세계와 만나는 섬세한 지점이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강창민 시인은 등단 50년을 코앞에 둔 중진 시인으로서 서정시를 통해 존재론적 빛과 그늘을 처연하게 고백해온 분이다. 시인은 내면으로 찾아오는 슬픔과 쓸쓸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할 삶에 대해 낮고 부드럽고 융융한 목소리로 마음의 풍경첩을 완성해왔다. 특별히 시인은 이번 수상 시집 ?성찰의 강을 건너?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응시하는 삶의 형식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고 있는데, 이때 그의 시쓰기는 삶과 사물의 심층을 들여다보는 근원적 원리로서 등극하게 된다. 성찰과 그리움의 과정을 흰 바탕으로 삼으면서 거기에 사물과 사람과 풍경을 눌러 담은 시학이 강창민의 이번 시집을 가득 채우고 있다 할 것이다. 탈향과 귀향, 유목과 정착이라는 시쓰기의 결실을 안아들이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강창민 시인은 거기에 특유의 넉넉한 품으로 삶과 죽음, 현실과 초월의 양상을 풍요롭게 드러내준 것이다. 이번 수상이 시인의 오랜 시력에 상응하는 큰 의미를 부여해주기를 희망해본다.

 

3회 안성문학상에는 박희헌 시인의 시집 ?안성천 잠언 시가집?이 선정되었다.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의 구체적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신앙적 세계에 바탕을 둔 사향(思鄕)의 정신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결실이다. 타인의 텍스트와 자신의 목소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면서 안성의 정신과 역사와 현장을 두루 엮어낸 세계를 표현해주었다. 더불어 그의 시는 대상을 향한 한없는 그리움을 가진 채, 자연 사물과 정겨운 일상들을 포괄하면서 가장 원형적인 상()을 탐구해마지 않았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거듭 두 분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면서, 두 분 수상자의 고유한 시적 연금술이 지속적인 진경으로 우리 시단에서 이어져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조남철(위원장, 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장)

오문석(문학평론가, 조선대학교 교수)

김병호(시인, 협성대학교 교수)

유성호(문학평론가, 한양대학교 교수)

 

 

 

비가 내리는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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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와 한국문인협회 경기도 안성지부(지부장 하종성)는 ‘제15회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로 강창민 시인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은 시인 박두진(1916~1998)의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인의 고향인 안성시의 후원으로 2006년 제정되었으며, 수상자는 우수한 시적 성취와 활동을 보여준 시인 가운데 박두진의 시 정신과 시 세계를 고려하여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된다. 

 

문학상 심사위원회는 강창민 시인의 작품들이 서정시를 통해 존재론적 빛과 그늘을 처연하게 고백한 작품으로 보고, 투명하고 심미적인 전언과 함께한 시인의 언어와 사유가 혜산 선생이 추구해온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투시의 세계와 만나는 섬세한 지점이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또한, 강창민 시인의 시 세계가 탈향과 귀향, 유목과 정착이라는 쓰기의 결실을 보여주면서 그 내력들로 하여금 삶과 죽음, 현실과 초월의 양상을 유추하게끔 하는 특성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고 평가했다.

 

특히 수상작으로 선정된 시집 『성찰의 강을 건너』를 비롯한 다수의 시에서 시인의 삶을 ‘지나온 시간을 응시하는 삶의 형식’으로 들여다보며 ‘성찰과 그리움의 과정’을 흰 바탕으로 삼고 사물과 사람과 풍경을 시학으로 눌러 담았다고 덧붙였다.      


수상자 강창민 시인은 1947년 경남 함안에서 출생하여 시집으로 『작은 풀꽃으로 주저앉아』, 『물음표를 위하여』 등을 발표했으며, 1975년 『현대문학』에 박두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다.
 
한편, ‘제3회 안성문학상’에는 박희헌 시인의 시집 ?안성천 잠언 시가집?이 선정되었다. 이 시집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삶을 바라보면서, 신앙적 세계에 바탕을 둔 사향의 정신을 역동적으로 담아낸 시집이라고 평가받았다.

 

시 관계자는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의 길을 꼿꼿하게 걸어가신 박두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시대의 가장 귀하고 위대한 영혼”이라고 말하며, “일상을 담고 추억이라는 그림자를 남기는 문학이 안성에서 꽃피울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제20회 혜산 박두진 문학제와 함께 안성맞춤아트홀 소공연장에서 오는 25일 오후 3시에 개최되며, 안성을 빛낸 시인들과 안성문인협회 회원들의 액자시화 전시전과 성악공연, 시낭송 등 다채로운 행사가 함께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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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니(春泥) / 김종길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재거리고 있었다.

 

 

 

 

해거름 이삭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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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감사하다’라고 한마디로 소감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설주 선생은 1908년생이니 아버지뻘이 됩니다. 제가 경북대학교 영문학과에 교수로 있을 때 청마 선생이 대구에 자주 오셨습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청마 선생이 90분 강의에 50분 정도로 마치고 나오셔서 90분을 다 마치고 나오는 저에게 ‘뭐기 그리 얘기할 것이 많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친구인 이설주  선생 댁에서 묵으시곤 했지요. 그 당시에 이설주 선생의 서랑(壻郞) 되는 사조의 주인용 선생과도 알고 지냈어요.

 

제가 동아일보에 ‘상(賞)’이란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상(賞)’이란 타기도 어려운 것인데 잘 주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주신 측에서 옳게 주신 것인지 저 자신 의심스럽습니다. 수상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는 2008년 《현대문학》에서 70대 후반 이후의 작품을 수록한 것입니다. 인생 해거름에 주은 작품이라 ‘밀레의 만종’처럼 겸손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저의 시를 저 자신 자부할 수 없는데 이설주문학상의 첫 수상자로 심사위원들이 뽑아주셔서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거짓말 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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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이사장 정종명)는 제1회 이설주문학상 수상자로 김종길(85) 시인이 선정됐다고 5일 밝혔다.

수상작은 시집 ‘해거름 이삭줍기’ 52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번 시집은 발표 시기 순서에 따라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나온 삶의 궤적을 노련하게 견지하는 노경의 일상과 상념을 주요 소재로 한다.


평생 같은 걸음걸이와 속도로 한국 시단을 묵묵히 지켜온 시인의 시선은 늘 새롭고 경이로운 발견에 닿아 있다. 지나치기 쉬운 주변의 사물과 현상에도 눈과 귀를 활짝 열어두어 자연의 이치와 섭리를 하루하루 새롭게 깨닫는다. 이러한 경이의 발견은 노경의 깊이 있는 삶의 철학과 융해되어 한층 원숙한 시 세계를 이루어낸다.


한편 세상을 떠난 동료 시인들에 대한 추모의 정을 드러낸 작품들을 통해 시인은 생을 마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자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인은 비관이나 체념이 아닌 한 차원 높은 달관의 경지로 그것을 끌어올린다.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당당한 여유로움은 인간의 유한한 삶이 노년에 갖추어야 할 미덕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19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 시인은 절제된 감정과 언어, 쉽고 명확한 주제의식으로 시를 애독하는 문학 독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시집에서도 정갈한 모범시의 전형을 보여주며, 이와 함께 어우러진 깊이 있는 성찰의 시편들은 등단 이후 60년이 넘게 시의 길을 걸어온 노시인의 원숙한 경지를 들여다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울러 시인의 끊임없는 창작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한국 문학계가 경의를 표할 만한 뜻 깊은 문학적 성과이기도 하다.

 

현재 고려대 영문학과 명예교수이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다.

이 상은 이설주(1908-2001)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고자 제정됐으며, 취암장학재단과 사조산업주식회사가 후원한다. 상금은 2000만원.


시상식은 6월 7일 오후 5시 중구 예장동 문학의집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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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 김행숙

 

 

잘 아는 길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사람처럼

알다가도 모를 미소처럼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이었어요.

눈을 감고도 갈 수 있는 길이었지만

눈을 감지 못하는 마음이었어요.

나는 전달책 k입니다.

소문자 k입니다.

 

거기까지 가는 길은 아는데

왜 가는지는 모릅니다.

오늘 따라 울적합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이럴 때 나는 내가 불편합니다.

 

만약 내가 길가에 떨어진 돌멩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주워 주머니에 숨길 때의 그 마음을

누군가가…… 누군가를 쏘아보며 나를 집어 던질 때의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내가 알면 뭐가 달라지나요?

 

평소에도 나는 나쁜 상상을 즐겨했습니다.

영화 같은

영화보다 더 진짜 같은

 

그러나 상상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리의 모든 상상이 비껴가는 곳에서

나는 나를 재촉했습니다.

한 명의 내가 채찍을 들고

한 명의 내가 등을 구부리고

 

잘 아는 길이었는데

눈을 감고도 훤히 보이는 길이었는데……

안개가 걷히자

거기에 시체가 있었습니다.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있습니다.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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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3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과 수상자를 발표했다.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5개 부문에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이다. 희곡과 평론은 격년으로 수상자를 발표해 올해는 시, 소설, 평론, 번역 부문에서 4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시에선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뽑혔다. 예심에서 선정된 10권의 시집을 대상으로 본심을 진행한 후 최종 대상작 4권을 선정했다. 그 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행숙은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2009년 노작문학상, 2015년 전봉건문학상, 2016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부문에선 본심에 오른 6편 중 김혜진의 ‘9번의 일’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단은 “노동의 양면성을 천착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로 우리 삶의 근간인 노동의 문제를 통해 참혹한 삶의 실체를 파헤치는 냉철하고 집요한 시선이 돋보인다”라고 평가했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2013년 중앙장편문학상, 2018년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년 전에는 ‘딸에 대하여’로 대산문학상 본심에 오르기도 했다.

평론은 유성호의 ‘서정의 건축술’이 선정됐다. 해당 비평집은 “비평적 세계를 안정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정확한 심미성을 지향하면서 비평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두루 겸비했다”라는 평을 받았다. 4개(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언어를 돌아가며 시상하는 번역 부문에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스페인어로 옮긴 주하선이 수상했다. 주하선은 ‘82년생 김지영’과 이번 본심에 같이 오른 ‘잘 자요, 엄마’를 통해 문학 번역가로 첫발을 내디뎠다. 심사위원단은 해당 번역본에 대해 “원작의 태도를 잘 파악하고 원작을 살린 충실한 번역을 통해 뛰어난 가독성을 확보했다”라고 평가했다.

수상자에게는 각 상금 5000만원과 양화선 조각가의 청동 조각 상패 ‘소나무’가 주어진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4시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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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공장 / 오은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이 없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이 없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일은 기술과 상관 없었다.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켜는 것. 저녁을 먹고 스위치가 켜져 있는지 확인하는 것, 아침을 먹고 저녁을 먹는 것이 차라리 더 고된 일이었다. 무인공장에서 일어나 무인공장으로 출근했다. 사람이 없는 곳에서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으로 아침을 먹고 스위치를 켰다. 보지 않은 사이에 스위치가 꺼질까 걱정되어 점심은 걸렀다. 사람을 맞이할 필요도, 사람을 배웅할 필요도 없었다. 출근시간이 왔다가 노동시간이 왔다가 밥시간이 왔다가 다시 노동시간이 왔다. 정확한 간격으로 밥시간과 퇴근시간이 왔다. 기술적이었다. 퇴근이라고 쾌재를 부르면 메아리가 되어 공장에 울려 퍼졌다. 예술적이었다. 무인공장에 출근했다가 무인공장으로 퇴근했다. 무인공장에서 잠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제시간이 갱신될수록 시간개념은 점점 희미해졌다. 시간은 가지 않고 늘 오기만 했다. 이상했다. 그렇게 오래 근무해도 기술은 늘지 않았다. 수상했다. 무인공장에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었다. 무인공장인데 내가 있는 것이 유일하게 습득한 기술이었다. 어느 날에는 스위치를 켜는 심정으로 불쑥 내 이름을 발음해보았다. 무인공장과 달리 나는 이름이 있었다. 무인공장과는 달리, 나는 사람이었다. 저녁을 먹고 스위치를 껐다. 공장 내에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그제야 일이 기술가 상관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할 때에야 무인공장에도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고를 당했는데 정작 공장에서 빠져나갈 기술이 없었다. 무인공장에서는 유입만 있고 유츌은 없었다. 제시간은 항상 찾아오기만 했었다. 곤욕은 곤혹 전에 찾아와 곤경에 처한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이 없어도 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없어야 하는 곳에 사람이 있었다. 한번 꺼진 스위치는 다시 켜지지 않았다. 사람 구실을 하는 게 곤란해졌다. 비로소 무인공장이 무인공장다워졌다. 뭔가를 원해서 뭔가를 원하지 않아서 입은 늘 벌린 채였다. 아침을 먹어도, 점심을 걸러도, 저녁을 먹어도 입은 늘 벌어진 채였다. 무인공장에서 기술을 배웠다. 사람 없이도 사람을 견디는 기술을. 사람 없이도 사람인 채 버티는 기술을.

 

 

 

나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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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조해진, 시인 오은, 번역가 윤선영·필립 하스를 각각 선정했다고 4일 밝혔다.

 

수상작은 조해진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 오은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 윤선영·필립 하스의 독역서 '새벽의 나나'(박형서 원작). 희곡 부문은 수상작을 내지 않았다.

 

대산문학재단이 주관하는 제27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오은(37) 시인은 4일 서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나는 이름이 있었다'에 실린 시를 쓰던 시간은 귤의 과육이 아니라 귤락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로 상을 받게 된 그는 귤을 감싼 섬유질인 '귤락'을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 비유했다.

 

오은 시인은 "귤락이 더 멀리 뻗어 나갈수록 그물망이 더 촘촘해질수록 내 우주는 따라 성장했다"면서 "낮지만 깊고 어둡지만 진한 이야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지만 팽팽해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시집이 '삶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을 끌어내고 사람의 내면을 다각도로 이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대산문학상은 교보생명 창업주인 대산 신용호 선생이 창립한 대산문화재단이 1년여 동안 발표된 한국 문학 작품 가운데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부문별로 선정해 시상한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상금 5천만원이 수여된다. 시와 소설 수상작은 번역 지원을 받아 해외에서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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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fi / 강성은

 

 

친구는 우울하다고 했다

친구여 오늘은 내가 옆에 있어줄게

하지만 내가 옆에 있어도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영화를 보러 갔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았다

 

다음 해 극장은 사라지고

밤새 불 켜진 쇼핑센터가 되고

혼자 온 사람은 텅 빈 커다란 카트를 끌고 돌아다닌다

 

쇼핑센터는 예식장이 되고

예식장은 병원이 되고

병원은 주차장이 되고

주차장은 유치원이 되고

유치원은 납골당이 되고

 

우리는 납골당에 갔다

친구는 여전히 우울해 보였다

여기도 사람이 너무 많다고 했다

 

어두운 한낮

파도가 출렁이는 소리

들으며 오래 누워 있었다

 

 

 

 

Lo-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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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에 강성은의 시집 'Lo-fi'(로파이·저음질)와 최은미의 소설 '아홉번째 파도'가 선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은 올해 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소설가 최은미, 시인 강성은, 문학평론가 우찬제, 번역가 조은라·스테판 브와를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시 부분 수상자 강성은의 'Lo-fi'는 "유령의 심상세계와 좀비의 상상력으로 암울하고 불안한 세계를 경쾌하게 횡단하며 끔찍한 세계를 투명한 언어로 번역해 냈다"는 평을 받았다.

강성은 작가는 5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사건과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다. 두 사건을 겪으면서 시를 못쓰는 시간이 많았지만 그 시간들을 견디고 이겨내는 시쓰기를 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설 부문은 8편의 장편소설 중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정용준의 '프롬 토니오',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가 최종심에 올랐다.

 


이중 최종 수상작에 선정된 최은미의 '아홉번째 파도'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감각적이면서도 치밀한 묘사, 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에 대한 정밀한 접근, 인간 심리에 대한 심층적 진단 등 강력한 리얼리티를 구축하며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최은미 작가는 "첫번째 장편소설인 '아홉번째 파도'를 시작하면서 제 세계를 마음껏 풀어낼 수 있겠다는 기대와 만들어낸 인물들을 끝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반반씩 있었다"면서 "이번 수상으로 확신을 가지고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에서는 우찬제의 비평집 '애도의 심연'이, 번역 부문에서는 조은라, 스테판 브와가 함께 번역한 'La Remontrance du tigre(호질: 박지원단편선)'이 각각 선정됐다.

우찬제 평론가는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가 애도의 주제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고민했던 것 같다"면서 "앞으로도 우리시대의 고민과 아픔에 대해 함께 아파하고 새로운 희망의 원리를 어떻게 같이 찾아 갈 수 있을까 고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산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 상금 5000만원과 함께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 상패가 주어지며 주요 외국어로 번역, 출간되는 기회가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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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 서효인

 

사랑하는 여자가 있는 도시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다시는 못 올 것이라 생각하니

비가 오기 시작했고, 비를 머금은 공장에서

푸른 연기가 쉬지 않고

공중으로 흩어졌다

흰 빨래는 내어놓질 못했다

너의 얼굴을 생각 바깥으로

내보낼 수 없었다 그것은

나로 인해서 더러워지고 있었다

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와 바다가 풍기는 살냄새

무서웠다 버스가 축축한 아스팔트를 감고 돌았다

버스의 진동에 따라 눈을 감고

거의 다 깨버린 잠을 붙잡았다

도착 이후에 끝을 말할 것이다

도시의 복판에 이르러 바다가 내보내는 냄새에

눈을 떴다 멀리 공장이 보이고

그 아래에 시커먼 빨래가 있고

끝이라 생각한 곳에서 다시 바다가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여수였다

너의 얼굴이 완성되고 있었다

이 도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네 얼굴을 닮아버린 해안은

세계를 통틀어 여기뿐이므로

표정이 울상인 너를 사랑하게 된 날이

있었다 무서운 사랑이

시작되었다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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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에 서효인 시인(36)의 '여수', 소설 부문에 손보미 작가(37)의 '디어 랄프 로렌', 희곡 부문에 장우재 작가(46)의 '불역쾌재', 번역 부문에 케빈 오록 경희대 명예교수(78)의 영역작 '한국시선집: 조선시대'를 각각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은 시 '여수'에 대해 "이 땅의 여러 장소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돋보이고 상투적 현실 인식에 안주하지 않는 풍성한 발견과 성찰을 보여준다"고 평했으며, 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는 "다국적 소비문화의 영향 아래 자기 인식의 언어를 배운 젊은 세대가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과정을 서사적 상상의 발랄함으로 표현했다"는 평을 남겼다.

서효인 시인은 이날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상은 나를 포함한 선후배 젊은 시인들에게 크나큰 격려를 준 것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소설 부문 심사는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까지 1년간 단행본으로 출판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됐는데, 1980년대생 작가들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격년제로 수상작을 내는 희곡과 평론 부문은 최근 2년간 나온 작품을 대상으로 했고, 번역은 최근 4년간 발표된 영어 번역물을 심사했다.

번역 부문 수상자인 케빈 오록은 1964년 한국으로 건너 와 외국인 최초로 한국문학 박사학위를 따고 40여 년간 한국문학 연구에 천착했다. 오록은 "첫 번째 번역 시집으로 1989년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커리어를 마감하는 지금 상을 타서 더 큰 의미가 있다"며 "이번 번역서는 한국 고전 번역 계획의 마지막 단계에 해당하는 시집으로, 조선시대 한시 600수 이상을 담은 시집이다"라고 말했다. 

시·소설·희곡 수상작은 내년도 번역 지원 공모, 주요 언어 번역 등의 과정을 거쳐 해외에 소개된다. 상금은 부문별 5000만 원. 시상식은 오는 27일 오후 6시3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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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에 가까운 삶 / 이장욱

 

 

영원을 떠나보내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목적지가 없는 기차를 영원은 타고 갔다.

영원에게는 언제나  곳이 있는  같았다. 그곳이 영원에게 이미 지나온  같았다.

오늘도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텔레비전을 보고 열심히 잠을 자는 것은 
영원이 아니라 
영원은 여기저기에서 나를 잊었다.
마치 나를  살아낸 듯이

내가 출근을 하고 우체국에도 가고 관공서에도 가는 것을 알면서 영원은
매일 공무원 같았다. 문서의  칸을 메우기 위해  산을 바라보는

비처럼
영원은 내렸다.
그것이 그의 업무.
나는  옷을 사고  안경을 샀다.
그것이 나의 업무.
오늘도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것으로

나는 세상의 모든 기차역에 혼자  있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나는 처음 거기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고개를 들면   구름에게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하나


나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오늘은 영원으로부터 조금  
 곳으로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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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4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이장욱 시인의 시집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소설 부문에 김이정 소설가의 유령의 시간이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는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쓴 정홍수 평론가가, 번역 부문에는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를 스페인어로 옮긴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와 정민정 번역가가 각각 선정됐다.

 

수상작 선정사유로 시 부문의 경우 내밀한 아이러니와 중성적인 시쓰기의 비결정적인 지대가 시의 의미를 독자에게 돌려주면서 한국시를 미지의 영역으로 확대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

 

소설 부문은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을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점이 선정사유로 작용됐다.

 

평론부문은 구체적인 삶의 지문을 과하지 않은 미문에 담아냄으로써 그 자체로 문학의 지혜를 체험하게 하는 점을 들었다. 최근 4년여간 발표된 스페인어 번역물을 대상으로 한 번역부문 수상작은 원작이 갖추고 있는 보편성과 함께 표현하기 어려운 함축적인 문장들이나 구어체적 표현들을 스페인어로 잘 소화해 낸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수상작의 면면을 살펴보면 1960년대생 문인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미래파 이전에 아주 내밀한 방식으로 한국 시의 언어적 확장과 젊은 시인들의 새로운 상상력에 기여해 온 이장욱 시인,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자서전을 자신이 완성할 것만 같다는 에감을 40여년이 지나 소설로 실현한 김이정 소설가.

 

또 위태롭게 흔들리는 문학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찾아내는 애정과 감식안으로 정점에 달한 평론의 진경을 보여준 정홍수 평론가는 지난 한 해 일어난 한국문학계의 악재와 호재 속에서도 위축되거나 들뜨지 않고 자신 만의 문학세계를 묵묵히 펼치며 한국문학의 중추 역할을 해낸 믿음직스러운 중진 문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젊은 번역가 정민정·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의 번역 부문 수상은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한 기대를 더욱 고무시킨다. 한국과 멕시코의 젊은 번역가가 4년여라는 긴 시간동안 의기 투합해 번역에 매진한 결과물인 위저드 베이커리는 멕시코에서도 청소년문학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초판 1만부를 인쇄하며 한국문학 번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심사단 관계자는 시 부문은 기존의 서정시의 기율과 문법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한 작업도 중요하지만 한국시의 미학적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노력에 대해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소설 부문도 우리 현대사가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면서 진실, 진정성 따위를 등 뒤에 흘릴 때 그것이 조용히 수습하는 문학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이 상찬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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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개의 초록 / 마종기

 

 

"초여름 오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창밖으로 마흔 두 개의 초록을 만난다.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겨

왁자한 햇살의 장터가 축제로 이어지고

젊은 초록은 늙은 초록을 부축하며 나온다.

그리운 내 강산에서 온 힘을 모아 통정하는

햇살 아래 모든 몸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물 마시고도 다스려지지 않는 목마름까지

초록으로 색을 보인다. 흥청거리는 더위.

열차가 어느 역에서 잠시 머무는 사이

바깥이 궁금한 양파가 흙을 헤치고 나와

갈색 머리를 반 이상 지상에 올려놓고

다디단 초록의 색깔을 취하도록 마시고 있다.

정신 나간 양파는 제가 꽃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번 주일을 골라 친척이 될 수밖에 없었던

마흔두 개의 사연이 시끄러운 합창이 된다.

무겁기만 한 내 혼도 잠시 내려놓는다.

한참 부풀어 오른 땅이 눈이 부셔 옷을 벗는다.

정읍까지는 몇 정거장이나 더 남은 것일까."

 

 

 

 

마흔두 개의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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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 부문 마종기(76)의 '마흔두 개의 초록', 소설 부문 황정은(39)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뽑았다.

 희곡 부문 김재엽(42)의 '알리바이 연대기', 번역 부문에서는 얀 헨릭 디륵스(40)의 '바셀린 붓다'(원작 정영문)가 수상한다.  

 심사위원단은 '마흔두 개의 초록'에 대해 "언어의 매끄러운 연쇄 위에 수놓아진 삶의 체험이 전해주는 묵직한 울림", '계속해보겠습니다'에 대해서는 "사소하고 보잘것 없는 삶의 존재 이유를 침묵의 문장으로 풀어냄" 등을 높게 평가했다.

 '알리바이 연대기'에 대해서는 "개인사와 현대사 교차시킨 역사적 현실에 대한 서사적 글쓰기 개척", 정영문 원작을 독일어로 옮긴 '바셀린 붓다'에 대해서는 "제3세대 번역가의 등장을 알린 유려하고 문학성 높은 등가 번역"이라고 평했다.  

 수상자에게는 부문별로 상금 5000만원이 주어진다. 양화선 조각가의 소나무 청동 조각상패도 수여된다.

 시상식은 12월1일 오후 6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올해 심사대상작은 지난해 8월부터 올해 7월(희곡은 지난 2년·번역은 지난 4년)까지 단행본으로 출판되거나 공연된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예심은 김선우·박정대·오형엽(시), 김동식·김숨·심진경·이기호(소설) 등 7명이 6월부터 약 세 달 동안 했다. 본심은 고형진·김광규·신달자·유종호·정호승(시), 강석경·구효서·김형경·도정일·최원식(소설), 박근형·이강백·이미원·이윤택·정복근(희곡), 김륜옥·김용민·안문영·전영애·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 등이 8월부터 두 달 동안 장르별로 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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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훔쳐가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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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1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에 진은영(43) 시인의 시집 '훔쳐가는 노래', 소설 부문에 김숨(39) 씨의 장편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이 선정됐다.

 

희곡 부문은 '칼집 속에 아버지'를 쓴 고연옥(42) 작가, 번역 부문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영어로 번역한 최양희(81) 씨가 수상자로 뽑혔다.

 

6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진은영 시인은 "이번 수상은 문학적 행운이다. 언제 또 불행이 찾아올지 모르지만 궁핍한 순간에 찾아온 이 행운을 벗 삼아 좋은 시인이 되겠다." 소감을 내놨다.

 

진 시인은 "제 시는 누군가의 전범이 되는 종류의 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범이 되지 않는 문학의 소중함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범이 될 수는 없으나 존재해야 하는 특별한 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시집 '훔쳐가는 노래'로 한국시의 미학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문별로 상금이 3천만5천만 원이었던 대산문학상은 올해부터 전 부문 5천만 원으로 조정됐다.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로 바뀌어 내년엔 평론 부문을 시상한다.

 

올해 시상식은 다음달 3일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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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만세 / 박정대

 

 

희미하게 그대의 얼굴이 보일 정도면 된다

천창을 통해 별빛들이 쏟아지면 된다

선반에 쌓여 있는 약간의 먼지는

음악이라고 생각하자

술을 마시는 날들을 위해

뜨거운 국물을 끓여낼 수 있으면 된다

아무리 담배를 피워도 금방 공기가 맑아지는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다락방 위에는 청색 하늘

다락방 아래엔 끝없는 대지

다락방 곁으론 날마다

그대 맑은 숨결 같은 바람이 불면 된다.

사랑하는 그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일 정도면 된다

당나귀, 굳이 차마고도를 지나오지 않았더라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 당나귀에 실은 물품이 당도하면 된다

당나귀, 폭설에 길이 끊겨

설령 한 달을 오지 못한다 해도

삐걱거리는 계단이 있고

계단 위엔 다락방 카페가 있고

다락방 카페엔 의자와 탁자가 있으면 된다

한 달 내내 눈이 내려

세상의 길이란 길들 모조리 막힌다 해도

뭐든지 함께 하고 싶어지는 그대만 있으면 된다

약간의 식량과 술과 담배만 있으면 된다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으면 된다

두툼한 스웨터만 입을 수 있으면 된다

조명은 희미해도 된다

별빛이 쏟아지면 된다

히말라야 근처면 된다

 

 

 

 

체 게바라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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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22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에 '체 게바라 만세'의 박정대 시인이, 소설 부문에 '아들의 아버지'의 소설가 김원일 씨가 각각 선정됐다.

 

평론 부문에서는 '폐허에서 꿈꾸다'의 남진우 명지대 교수, 번역 부문에서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불어로 번역한 엘렌 르브렝 씨가 각각 뽑혔다.

 

박정대(49) 시인은 4일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제목을 가진 시집에 누가 상을 줄까' 저 자신도 기대를 안 했다""지금도 전혀 실감이 안 난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시적 전언의 폭발력으로 최근 시단의 기계적이고 난해한 경향에 대한 의미 있는 반격"이라는 평을 받았다. 박 시인은 "시단의 시들이 옆 사람에게 속삭이듯 내면화되는 것에 대한 제 나름의 불만이라고 할까, 시집 제목만이라도 사회적인 발언을 해보자고 시집 제목을 '체 게바라 만세'로 했는데 막상 시집을 열면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제목을 이렇게 정하고 제 의도와 상관없이 말이 많을 것 같다는 예상을 했는데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르게 읽히는 것 같았다"면서 "시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는데 시인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시로 표현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대산문학상 상금은 부문별 5천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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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가장자리를 / 백무산

 

 

우리 사는 곳에 태풍이 몰아치고 해일이 뒤집고

불덩이 화산이 솟고 사막과 빙하가 있어 나는 고맙다

나는 종종 이런 것들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끔찍할까

지구는 얼마나 형편없는 별일까 생각한다네

 

내가 사는 곳이 별이란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게

지구의 가장자리가 얼어붙고 들끓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네

도심에 광야를 펼쳐놓은 비바람 쳔둥에도 두근거리네

 

그래도 인간들 곁에서 무엇보다 그리운 건 인간이지

한두세기 만에 허접한 재료로 발명된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걸어온 모든 길을 다 걸어온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계통발생의 길을 다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그 오랜 인간의 몸에 내장된 디스크 메모리를

법륜처럼 굴려보았으면 싶은 건데

 

그래서 나는 버릇처럼 먼 외곽으로 자꾸만 발길이 간다네

아직 별똥별이 떨어지고 아무 것도 길들어지지 않은 땅에

먼 길 걸어 이제 막 당도한 인간이 더러 살고 있을 그런 곳에

 

잠에서 깨어나 창을 열면 이곳이 별이라는 생각

벌거벗은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뜨기를

그래서 나는 습관처럼 인간의 가장자리 사회의 가장자리

그 모든 가장자리를 그리원한다네

한 십만년을 소급해서 살고 싶다네

 

 

 

 

그 모든 가장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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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시인 백무산(57)씨와 소설가 정영문(47)씨, 문학평론가 황현산(67)씨가 선정됐다. 번역 부문 수상자는 단국대 스페인어과 고혜선(62) 교수이고, 희곡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30일 대산문화재단에 따르면 백씨는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가 높은 평판을 받아 수상자로 뽑혔다. 심사위원회는 “노동자 문학으로부터 삶에 대한 근원적 의문으로 시 세계의 폭이 더욱 확장됐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최근 동인문학상을 받은 데 이어 ‘겹경사’를 맞았다. 수상작은 동인문학상과 동일한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다. 심사위원회는 “기존의 작품세계를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독자들을 품는 품이 한결 넓어지고 편안해졌다”고 평가했다.

황씨는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고 교수는 황순원의 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를 스페인어로 번역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고 교수는 남편인 번역가 프란시스코 카란사(페루)와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이다.

상금은 시와 소설 부문은 각 5000만원, 평론·번역 부문은 각 3000만원이다. 시·소설 부문 수상작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외국어로 번역·출간된다. 시상식은 11월29일 오후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식과 함께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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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이불 / 신달자

 

 

신열이 아직은 산 증거라는 듯

시멘트 바닥이 그를 떠받쳐든 채

오한에 떨고 있는 풍경 본다

사실은 끙끙 앓는 바닥을 덮어 주고 있는

누더기 육신

겨울 지하통로에 누워

종이 한 장으로 세상의 바람을 가리고 있는

종이 한 장으로 지나온 세월을 덮고 있는

관심사에 멀어진 의문의 흐릿한 기호 하나

오래전에 난청이 되어버렸지만, 그러나

지하의 바닥에서 밀고 올라오는 독한 바람과는 통하는지

그 소통 안에는 언 귀를 잡아당기며 쩔쩔 흔드는 손이 있는지

종이 한 장의 보온 기억을 되살리느라 발끝을 오므리지만

끌어안기도 전 적막은 압사처럼 그를 누른다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영혼이 가는 곳으로 느리게 머리를 돌리고 있는 저 사람

버리지 않았는데도 지나가버리는 순간의 온기를 찾아

영혼은 푸른 숲의 고즈넉한 길을 헤매는 것인지

안갯속 낯익은 집 둘레에서 인기척에 갑자기

몸을 웅크리며 먼먼 온기를 목안으로 끌어 오고 있는지

누군가 이름을 부르고 싶은 것인지

죽은 듯 죽지 않은 입을 열었다 오므리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깊고 깊은 겨울의 중심을 건너는 저 사람.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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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교수를 역임했으며 1997년부터 명지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4년 〈여상〉을 통해 시 〈환상의 밤〉으로 여류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뒤, 1972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시 〈발〉, 〈처음 목소리〉가 추천되면서 재등단했다.

신달자의 시는 평이한 어법으로 일상사의 이야기를 하거나 대상을 관찰하고 있지만, 결코 평이한 시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평범한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삶의 본질에 대한 순간적 깨달음을 시인 특유의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작품으로 시집 〈봉헌문자〉·〈겨울축제〉·〈아가〉·〈황홀한 슬픔의 나라〉·〈백치슬픔〉·〈아버지의 빛〉·〈열애〉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백치애인〉·〈그대에게 줄 말은 연습이 필요하다〉·〈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와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등이 있다.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한국시인협회상, 2007년 현대불교문학상, 2008년 영랑시문학상, 2009년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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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68)씨와 소설가 임철우(57)씨 등이 제19회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은 1일 신 시인의 시집 '종이', 임 작가의 소설 '이별하는 골짜기', 최치언(41)씨의 희곡 '미친극', 염무웅(70)씨의 평론 '문학과 시대현실'을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번역 부문에서는 하이디 강(72)과 안소현(51)씨가 독일어로 공동 번역한 김훈 원작 '칼의 노래(Schwertgesang)'가 선정됐다.

 

수상작들은 "깊어지는 인식과 농밀해지는 감각, 진화의 에너지가 독자들을 무척 감동시켰다(종이)" "진정성과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정적 서사성을 갖고 있다(이별하는 골짜기)" "연극의 유희성을 과시하는 극작술이 돋보이는 수작(미친극)" "문학이 당면한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문학과 시대현실)"는 평가를 받았다.

 

종이를 주제로 한 76편의 시를 담은 신 시인은 "7~8년 전 종이가 사라진다는 작은 기사를 보고 손끝이 울려 종이에 대한 연작시를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임 작가는 "열심히 작품을 발표하지만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하기도 했지만 이 상을 받게 돼 격려가 된다"면서 "내 목소리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적은 수라도 있다면 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금은 소설 부문 5,000만원 시ㆍ희곡ㆍ평론ㆍ번역 각 3,000만원이다. 시ㆍ소설ㆍ희곡 부문 수상작은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해외에서도 출판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오후6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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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해서 머나먼 / 최승자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먼 데 갔다 이리 오는 세계

짬이 나면 다시 가보는 세계

먼 세계 이 세계

삼천갑자동방삭이 살던 세계

그 세계 속에서 노자가 살았고

장자가 살았고 예수가 살았고

오늘도 비 내리고 눈 내리고

먼 세계 이 세계

 

(저기 기독교가 지나가고

불교가 지나가고

도가(道家)가 지나간다

 

쓸쓸해서 머나먼 이야기올시다

 

 

 

 

쓸쓸해서 머나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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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제1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으로 시부문 최승자씨(58)쓸쓸해서 머나먼5개부문 5개작품을 선정했다.

 

소설부문 박형서씨(38)새벽의 나나’, 희곡부문 최진아씨(42)‘128번지, 차숙이네’, 평론부문 김치수씨(70)상처와 치유’, 번역부문 최애영씨(49)와 프랑스 문학비평가 장 벨맹 노엘(79)의 공역 ‘Interdit de folie’(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인성 지음)이 각각 선정됐다.

 

심사위원단은 쓸쓸해서 머나먼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이유로 자기 언어 속으로 스스로를 의문사시키려고 하는 섬뜩함을 보이는 등 오랜 시간 고통스런 침묵을 깨고 다시 시적 언어의 빛나는 매력을 보여준 점을 들었다.

 

쓸쓸해서 머나먼은 최씨가 12년 만에 펴낸 시집이다. 최씨는 요즘 세상이 너무 다변화돼 언어들이 날뛰고 있다세상이 말보다 시적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최씨는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들락거리고 있다. 자신에게 한글을 깨우쳐 준 9세 위의 외삼촌이 돌봐준다. 최씨는 한 생각에 한 번 사로잡히면 밥이나 약을 잘 먹지 않아 몸이 상했다“10여 년동안 시를 쓰지 않았는데 지난해부터 시를 몰아 쓰게 됐다. 이번 시집의 32가량은 지난해 쓴 것들이라고 전했다. 기회가 있으면 짧게나마 소설을 쓰고 싶다고 알리기도 했다.

 

1979년 등단, 1980~90년대를 주름 잡은 최씨는 지난 5월 지리산문학상 외에는 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주요 문학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상패와 함께 소설부문 5000만원, ·희곡·평론·번역 부문 3000만원씩 5개부문에 총 17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특히, 소설과 시 부문 수상작은 2011년도 번역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될 예정이다.

 

대산문학상이 5개부문 수상작을 전부 낸 것은 3년 만이다. 작년에는 희곡, 재작년에는 번역 부문의 수상을 내지 못했었다.

 

시상식은 26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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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 송찬호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잔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 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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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찬호, 소설가 박범신, 평론가 이광호 씨가 3일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관하는 제17회 대산문학상 부문별 수상자로 뽑혔다. 브루스 풀턴·주찬 풀턴 부부와 김기창씨는 최윤의 소설집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There a Petal Silently Falls)로 번역 부문 상을 받았다. 희곡 부문은 수상자를 내지 못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공선옥), <도가니>(공지영),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등과 각축을 벌인 박씨의 소설 <고산자>역사적 인물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재와 형식에 도전하는 작가적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는 점과 그 시대가 만들어낸 문제적 개인으로서의 고산자를 정밀하게 그려낸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다.

 

송씨의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뛰어난 묘사력과 동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개성을 확보하고 있으며 따뜻한 인간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참신함과 새로움을 주고 있는 점, 이씨의 평론집 <익명의 사랑>현장성과 비평적 에스프리를 지니고, 우리 문학의 현재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각각 평가받았다. 번역 수상작에 대해서는 원문의 섬세함과 아이러니를 잘 살린 매우 우수한 번역이고 유수한 출판사에서 출판되어 한국문학의 국외 선양에 기여도가 크다는 점이 선정 사유로 꼽혔다.

 

고향인 충북 보은에서 시를 쓰고 있는 송찬호씨는 유년기의 농촌 환경과 정서가 내 시 쓰기에는 큰 축복이었다면서 내가 있는 자리에서, 시선을 멀리 두지 않고, 보이는 삶의 풍경을 그려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광호씨는 시와 소설에 대한 질투가 내 평론의 동력이었다고 토로하면서 그런 질투와 평론의 자율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게 이번 수상이 다시한번 평론을 밀고 나갈 수 있게 힘을 주었다고 말했다.

 

소설 부문은 5천만원, 시와 평론·번역 부문은 각 3천만원의 상금을 준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6시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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