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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 / 김희숙

 

바람을 뚫고 올라온 더운 기운은 누구의 혼입니까
하늘을 붉게 달군 총검의 시위에 두만강 붉은 물은 길을 내주지 않습니다.
몸을 엮어 다리를 놓은 이는 지금 해 아래 없지만
북간도 어귀마다 비석은 뜨겁게 밖을 데웁니다. 조선이 무겁게 울고 있을 때
인형 옷을 입히던 앳된 손은
짐승처럼 묶이어져 이역만리 끌려가고
집은 무너져 내려 세상이 모두 한 길이 되었습니다.
벼랑 위로 올라가 뱀을 좇아 산을 죽였습니다 사과의 맛은 슬픕니다.
얼굴빛이 어두운 놈이 일장기에 서서 검은 점을 치며
흙 묻은 손에서 동전을 앗아갑니다. 바다를 건너온 이를 위해 길을 닦는
저 부지런한 농부는 자식을 모두 길에 뿌렸습니다.
누구의 울음일까요?
해가 물위에 섰는데 구름이 와서 앞을 가립니다.
별을 헤아리며 용정 흘러가는 물길에 울고 있는 이는
누구의 모습입니까?
해란에 서서 동주는 일송정을 쳐다봅니다. 남녘에서 날아온 물새가
하얗게 걸려 한강서 가져온 물을 눈물처럼 토해냅니다.
시선을 가리는 은 줄기 비가 나립니다. 빗물은 온 마을을 덮었을 때에야
제 몸을 거두었습니다. 젖지 않은 것이 없지만 구름을 젖히고 웃는
햇살은 어미의 얼굴 입니다.
핏물에 젖은 오랑캐를 넘어 온 이는
저마다 가슴에 꽃씨를 품고 왔습니다. 이름을 잃고서
푸른 역사가 톱날에 베어져 떨어지는 모습은 꽃씨를 품은 이에게는
간을 쪼이는 것입니다.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
장백산맥에 올라서서 푸른 물줄기를 마십니다.
가슴에 뿌리를 내린 것이 나무의 가시
라도 찔려서 흘러가는 저 물에 섞어봅니다.
강물이 히드라의 머리처럼 힘차게 아래로 나갑니다.
꽃잎도 따라 갑니다.
연변의 떨리는 가슴은 새벽길을 뚫고 먼저 울리었습니다.
동주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별을 지켜 섭니다.

 

 

 

 

 


떨어진 장갑 한 짝 / 윤재훈

 

지리산 세냇골,

보아라, 아들아
저곳이 네가 후퇴하는 적들을 쫓아
내달리던 곳이란다

집에 남아있던 가족
떠날 때 배가 고프다고 보채던
너희들이 눈에 밟혀
누구보다도 빨리 그 전쟁을 끝내고 싶었단다

저 정상까지 맨 먼저 치달아
태극기를 꽂고 싶었단다

화순읍을 한참 지난 어느 터널 앞
입동이 지나고 빈 가지들만
찬바람 속에서 떨고 있다

아들아, 보아라
저 곳이 이 아비가
언 손을 호호 불며 넘어가던 곳이란다

이 떨어진 장갑,
그날 능선을 넘어가면서 끼었던 것이란다
꽁꽁 얼어붙은 개머리판
비록 제대로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그나마 동상 걸리지 않았고,
이만큼 너희들을 키울 수 있게 해주었단다
자유로운 나라에서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너희들을 보게 해주었단다

오늘도 봄꽃 피었다
신작로 따라
구비 도는 진달래들이
태극의 모습을 닮았다

그날처럼 와와,
소리를 지르면 정상으로 오르던
전우들의 모습이
봄꽃으로 붉디붉게 피었다

 

 

 

 

 

다시 부르는 노래 / 김현규

 

그곳이 어디였던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북쪽 하늘을 향해 볏단처럼 쓰러지던 친구여
죽어서도 반반하게 묻히지 못한 서러운 땅에
말없이 흘러가는 푸른 강물이 되어야지
빈 들을 스치며 일어서는 초목들을 향해
살갑게 손사래 치는 한 자락 이슬이 되어야지
얼큰하게 취해 뗏목을 타고 되돌아오는
힘없는 사람들의 목덜미 뒷등이 따스한 강 언덕에
외롭게 누워 슬픔이 되는 별이 되어야지
너의 죄라면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죄
아무도 너를 미워할 수 없고
아무도 너의 보랏빛 꿈을 꺾을 수는 없지만
기억속에서 사라져 간 얼굴들을 떠올리며
누군가는 가늘하게 부서지는 햇살이 되고
누군가는 가슴 아픔도 커가는 눈물이 되어
별들도 몸을 던지는 그리운 땅에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풀뿌리로 돋아나야지
가래톳 멍울이 깊숙이 박힌 이 땅의 강물 위에
오늘은 누가 또 뜨겁게 몸을 던지는지,
풀 한포기 이름없는 네 쓸쓸한 무덤가에도
어서 돌아오라고 손짓하는 강의 울림이 커지고
저렇게 굽이굽이 홀로 깊어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저 푸른 물결 허기지게 밀려오는 소리로
다시 뜨겁게 불러보는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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